<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알라딘 인문/사회/과학 신간평가단 9기 첫 페이퍼 작성입니다. 지난 3월 신간들을 보니 미처 알지못했던 흥미로운 책이 많았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1.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알라딘 책소개: 영국과 미국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미국 아마존 “이 달의 책” 선정작. 빌 브라이슨의 최신작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과학 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사회사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이 세계와 만물에 관한 파노라마식 서술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현미경을 가지고 인간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의 일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며 그것에 숨겨진 역사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사생활의 역사에 관한 거의 모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담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지난 10년간의 최대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로 만들었던 빌 브라이슨 특유의 박학다식,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위트, 세련된 문장, 탁월한 이야기 실력을 다시 한번 선보이는 이 책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역사를 서술한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재미있고 유익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 실제 원제는 <At Home>인데 번역서 제목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책입니다.  

 

2. 러닝 

 알라딘 책소개: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민속학자인 토르 고타스가 달리기를 주제로 쓴 문화사 책. 방대한 자료를 바탕 삼아 역사적 사실과 신화, 전설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달리기의 역사를 면밀히 추적한 이 책은 풍부한 사례와 명쾌한 문장으로 문화사 읽기 특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권좌를 지키기 위해 달려야 했던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매력적인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팩, 인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울트라마라톤, 인종을 초월해 사랑받은 제시 오언스, 나이키 브랜드의 탄생 비화, 도핑으로 몰락한 '단거리의 여왕' 매리언 존스까지, 달리기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은 넓고도 다채롭다. 

== 달리기라는 주제로도 이리 멋진 책 한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달리기에 담긴 역사 문화적 의미를 읽는다.....

 

 

3. 아름다운 수학 1 : 기본편 

 알라딘 책소개: 골치아픈 수학 공식을 몰라도 수학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학적 아이디어와 증명, 정리들을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아름다운 수학적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를 '무언증명'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무언증명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학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도 상세히 소개해 학생들은 물론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1부에서는 수학적인 아이디어(증명, 개념, 연산 등)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다룬 다음 그 구체적인 응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복잡한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칠판과 분필, 손으로 그린 OHP 용지, 컴퓨터 프로그램 등으로 쉽게 만들어 이용할 수 있다. 2부는 수학적 그림의 간략한 역사를 설명한 다음, 시각적인 사고의 발전과 교실에서의 시각화를 위한 실제적인 접근방법, 특히 그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물의 역할을 보편적인 교육적 관점에서 다룬다. 마지막 3부 ‘도전문제를 위한 힌트와 풀이’에서는 1부에 있는 모든 도전문제에 대한 힌트나 해답을 담았다. 

== 재미있는 수학, 이렇게 말하면 눈을 흘길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관심이 가는 분야입니다. 깊게 공부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학이라는 학문이 담고 있는 매력은 색다른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요?

 

 4. 속도에서 깊이로  

 알라딘 책소개: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워스의 저서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바쁘다. 바빠! 쉴 새 없이 바빠!’ 라고 말하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디지털 네트워크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그는 이를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점차 우리의 사고는 외부 지향적이 되며, 내면을 살피는 대신 바깥 세상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클릭 몇 번으로 온 세상을 살펴볼 수 있으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누군가 내 소식을 기다릴 것만 같고 빨리 답장해야만 할 것 같다.

저자는 과거로 돌아가 일곱 철학자들의 통찰을 빌려온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을 만들었다. 세상과의 거리를 고민한 플라톤, 햄릿에게 생각하는 도구를 쥐어준 셰익스피어, 삶의 질서를 창조한 벤저민 프랭클린, 월든 숲으로 간 소로 등 이들 일곱 철학자들의 옛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세상과의 모든 연결된 것에서 잠시 벗어나 멈추고, 호흡하고, 생각하라. 이제 속도가 아닌 깊이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 책은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법에 관한 책이다.  

== 스마트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는 책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속도를 즐기는 이 시대에 우리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마저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를 삶을 가꾸기 위한 제안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습니다. 

 

5.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해도 

 알라딘 책소개: 100여 장의 고지도와 해도를 통해 세계관과 세계 역사의 흐름을 고찰한 역사서. 100장의 해도를 통해 대항해 시대 대발견과 변혁의 파노라마를 만날 수 있다. 세계는 평평한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라는 사실, 아프리카 대륙 아래에 항로가 있다는 사실, 서반구에는 신대륙이 있고 남반구에는 미지의 대륙이 있다는 사실 등이 어떻게 밝혀져 왔는가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또한 향료와 황금, 흑인 노예무역으로 말미암은 숱한 해전과 식민지 쟁탈, 이주민의 개척 과정, 그리고 다양한 해상 활동과 수많은 탐험가의 피와 땀으로 오늘날의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지도를 통해 하나하나 알려준다. 이 책에 소개된 해도들은 인류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해도를 살펴보는 것은 지도로 만든 세계사를 읽는 것과 같다. 

== 지도와 시계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그러한 것이 없던 시대를 살지 못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삶에 시계가 시간적인 개념에, 그리고 지도가 공간적인 영역에 혁신을 몰고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해도를 통해 그러한 혁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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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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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기록 가운데 없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그의 작품들과 연관시키는 서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인간을 그의 작품들과 연관시키는 서류이다. 셰익스피어 학자 조너선 베이크가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의 생전 또는 그의 사후 200년 동안에는 그가 그 희곡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말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p201 

 셰익스피어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뿐이다. 역사를 아무리 들추어봐도 옥스퍼드 백작이나 말로, 또는 베이컨의 지인들 가운데 그런 말을 흘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증거라고 할 만한 것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큰 문학 사기 사건을 그 범죄가 저질러지고 400년이 지난 후에 들춰낸 반셰익스피어파 열성분자들의 비상한 재주는 치하해야 마땅할 것이다. -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p213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의 마지막 장 '이색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의 실제 작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실제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후보로 오른 사람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해 옥스퍼드 백작, 크리스토퍼 말로, 펨브로크 백작부인 메리 시드니 등 50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빌 브라이슨은 앞의 인용구에서처럼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얼토당토 않음에 대한 비난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비난한 반셰익스피어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이커니언(Baconian)의 시각을 담은 책인데,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이 아니라 당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저술한 실제 작가이고, 그 작품들 안에 다양한 방법으로 암호를 숨겨놓았다고 주장하는 다소 황당 -실제로 이 책을 읽은 것은 베이컨 저작설의 정당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자 한 것이니 이리 표현합니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덧붙여 베이컨이 엘리자베스 여왕과 레스터 백작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고, 에식스 백작은 또다른 엘리자베스의 사생아라는 주장도 담고 있는데, 실제 베이컨이나 에식스 백작 등에 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한 입장에서 가타부타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주장이 주류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냉소를 받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Shakespeare Code이고 우리말 제목은 <셰익스피어는 없다>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통해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그가 썼다고 주장하는 문학작품들의 실제 저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건데 정말 셰익스피어는 눈을 씻고 찾아보다도 보이질 않습니다. 오로지 베이컨이 그 많은 작품들을 썼다는 일방적인 주장-실제로 그것을 뒷받침 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서도 다루질 않았습니다-을 내놓고서 증명하지 않은 그 주장을 근거로 베이컨 저작설을 단정하여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라고 한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아무런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는 셰익스피어가 없다는 사실을 제목에서 고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제목도 The Shakespeare Code가 아닌 The Bacon Code라고 쓰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일텐데, 저자가 용감하게 그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스런 생각을 지울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은 결코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이컨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사실이라기보다는 음습한 구석에서 몇몇 사람이 피운 의심의 싹이 인간의 불신 또는 교활함과 만나 부풀려진 이야기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골 출신에 글자도 모르는 부모-셰익스피어의 아버지가 지금으로 하면 시장급의 직책을 역임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다분히 의도적인 왜곡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음-를 둔 셰익스피어는 결코 그런 작품을 쓸 위인이 못된다고 우기면서도,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사생아이긴 하지만 왕족이었고 고급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베이컨은 당대를 뛰어넘어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사람보다도 출중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우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함도 함께 담겨 있는 이야기..... 

 굳이 품절된 이 책을 중고로 사서 읽고자 했던 것은 도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베이컨 저작설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이 책이 인용하고 있는 베이컨의 숨겨진 암호를 풀었다는 사람들의 책을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1564년에서 1616년을 살았던 인물이고, 이 책이 담고 있는 셰익스피어-베이컨 설의 연보에서 셰익스피어가 원작자가 아니라는 첫 주장은 그의 사후 100여년이 지난 1728년이었고, 프랜시스 베이컨을 원저작자로 심도있게 다룬 것이 셰익스피어 사후 200여년이 지난 1857년 델리아 베이컨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그녀의 일생이 진지한 작가라고 말하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암호 해독법으로 베이컨 저작설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동일한 방법으로 셰익스피어 저작설을 지지하는 암호를 밝혀낸 사람도 있다는 점, 니체나 마크 트웨인의 경우는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책의 근저에 깔린 베이컨 저작설의 허술한 면들이 더 부각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애써 베이컨 저작설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마지막 장을 진지하게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책은 제목이 멋지기(?)는 하지만, 제목에 낚여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읽을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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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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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네 건달들은 그 정도에서 그칠 인간들이 아니어서 아Q를 놀리다가 결국 때리기까지 했다. 아Q는 형식적으로는 졌다. 동네 건달들은 아Q의 누런 변발을 틀어쥐고는 벽에다 네다섯 번 소리가 날 정도로 찧고 나서야 아주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을 느꼈다.   아Q는 잠시 서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들놈에게 맞은 셈이네. 요즘 세상은 정말 개판이라니까.....' 그리고 나서 그도 아주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이 되어 돌아갔다. ..... 버러지라고 해도 동네 건달들은 놔주지 않았고 가까운 담벼락에다 머리를 대여섯 번 짓찧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승리했다는 듯이 떠났다. 이번에야말로 아Q를 제대로 혼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 초도 못되어 아Q 역시 만족해하며 떠났다. 그는 스스로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데에는 자기가 첫째가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더구나 '스스로를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데에는'이라는 말을 제외하면,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말만 남으니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도 첫째가는 사람이 아닌가? "네깟 것들이 무엇이라고 감히?" 

 불굴의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민초..... 이 사람은 자신의 근본 -제대로 된 성이나 이름, 출신지등-이 알려지지도 않은, 딱히 직업이 없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날품을 파는, 그리고 마땅한 거처가 없어 동네 사당에 몸을 의탁해 사는 '아Q'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눈에 보일 때, 일감이 있어 그의 손길이 필요할 때 잠시 생각할 뿐, 자신들의 일상에서는 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존재감도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딱히 내세울게 없으며, 건달들에게 시시때때로 얻어맞는 초라한 민초라지만 그 나름의 세상을 편히 살아가는 비법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승리법..... 앞에서 언급한 그 누구에게도 지지않고 자신을 승리자로 이끌수 있는 '위대한(?)'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그는 적어도 자신에게는 '대단한(?)' 존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의 초반부는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아Q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개인사적인 서술이 이어집니다. 

 마을에서의 초라한 실패를 뒤로하고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아Q는 스스로를 승리자로 만족해하였겠지만 - 소리없이 사라졌던 아Q가 다시 마을에 나타난 시점에서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Q로 대표되는 민초가 사회적인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에 자신을 추스리던 정신승리법을 극복하고 정말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과 함께 사회적인 격변의 중심에 자기 기만에 빠져있던 아Q가 내던져지고 시험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에서 혁명당의 모습을 보았던  아Q가 처음부터 혁명을 갈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혁명은 반란이고 반란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혁명에 부정적이었지만, 혁명이라는 말이 자오 나리를 비롯한 있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을 보고는 '혁명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 버리자'고 생각하고서는 자신으로부터 생성된 알맹이가 없는 타인의 혁명에 동참하고자 나섭니다. 이 민초에게 혁명이라는 것은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녀석들을 하둥대게 만드는 힘이 있는 도구라는 사실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원하는 여자를 소유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인식될 뿐, 그 이상의 내적 사고와 외적 행동의 발전이나 변화의 싹은 눈을 씻고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혁명의 공간은 아Q의 입장에서는 갈아엎어야 할 대상이었던, 물질을 소유했다고 또는 더 많이 배웠다고 으시대던 이들이 다시 모양만 바꿔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기에, 그가 그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혁명의 깃발을 내세우든지 이미 펼쳐진 혁명의 공간에서 자리를 다시 꿰차고 앉은 이들에게 굽신거리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 줄것을 부탁하는 것일터인데, 아Q가 혁명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후자의 길을 택하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혁명은 그리 진행되었지만, 그 공간에서도 약자로서 남아있는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변화마저도 이끌어내지 못한 무능한 아Q를 위한 배려는 남아있지 않고, 그의 삶이 혁명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혁명의 공간 안에서도 힘없는 씁쓸한 희생자로 끝나고 맙니다.  

 이 소설이 중국의 신해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씌여졌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민초를 상징하는 아Q의 모습과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에 대한 작가의 기록은 실제 역사적인 사건이라던 신해혁명의 왜곡된 모습에 대한 작가의 절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Q처럼 많은 이들에게 혁명이 단순한 주인 바꾸기, 권력자 교체라는 의미에서 이해되었지만 실제로 혁명이 추구해야 할 것은 그러한 단순한 것이 아니고, 실제 혁명에서는 그러한 단순한 권력 교체마저 이루어지 못하고 겉모양만 약간 바꾸었을 뿐이라는 것이 그러한 절망감 속에 담긴 저자의 인식인 것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사회적인 흐름속에서 아Q와 같은 민중이 그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제 소설속에서 기득권자들이나 그 권속들이 직책만 바꿔서 혁명의 주체로서 뻔뻔하게 앞장 선 것과 달리, 흐름이 바뀌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중들에게 권력이 넘어가 기존의 권력자들이 쫓겨나고 새판이 짜였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혁명의 열매를 누리는 주체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그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그 혁명을 이끄는 주체들의 정신이 어찌 개조되었고, 그러한 정신과 사상의 개조가 사회에 어떤 근본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사실이다. 이 소설과 달리 아Q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혁명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서 그가 말하던대로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뻐기며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 이상을 이룰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라기보다는 권력이 바뀐 것 뿐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인식이 혁명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신승리법으로 무장한 위대한 민초 아Q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다른 의미로는 민중들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던 위대한 혁명에 대해 과감하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때의 혁명은, 아Q라는 덜떨어진 사람이 처형되는 것을 볼려고 다리품을 팔며 헛고생만 하다가 끝난, 그리고 처형의 방법으로는 총살보다는 목을 치는 것이 더 볼거리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정도를 담고 있는 빛바랜 기억일 뿐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작가가 보기에는 혁명에 들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보일 뿐이라고 외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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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전쟁 : 넥스트 비즈니스 - 미래를 설계할 핵심코드와 충격적인 일터 경쟁 시나리오
진 마이스터 & 캐리 윌리어드 지음, 김정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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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을 비롯한 미래학 서적들이 등장하고 실제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보통신 사회가 도래했을 때, 미래학은 우리에게 미래의 삶에 대한 많은 암시를 주고 갈 곳을 가르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가 쌓이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그 변화에 동참하면서 더 크고 가속도가 붙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예측하고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이 무모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침반 역할을 하는 지식이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감히 나서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다양한 지식의 융합과 더블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이 다루는 직장과 기업이라는 영역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분야에서의 10년 후 미래를 말하려고 달려든 두 저자는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와 지식에 대한 자신감 만이 아니라, 책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한가하게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변화라는 단어를 일상에 달고 살며, 생존하기 위해서 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속담 속의 10년이 2-3년의 기간이라고 해야하지 않을는지..... 물론 현대에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게 10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대의 대세는 이미 가속화되는 변화 속에 휩쓸려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10년후에 우리가 일할 직장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우리가 그러한 직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생존할 것인지, 그리고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인재들을 확보하고 조화롭게 유지할 것인지 등에 대한 현재의 분석을 기초로 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핵심적인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그리고 기업에게는 우수한 인재를 적시적소에 확보하기 위한 분석과 예측을 제공한다고 하겠습니다.  

 1부 '일터 전쟁의 서막'에서는 2020년 일터를 구성할 다섯 세대-전통 세대, 베이비붐 세대, X세대, 새천년 세대, 2020년대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들이 이룰 2020년 일터의 핵심 키워드 10가지-급변하는 인구통계, 지식경제, 인력 이동의 세계화, 디지털화, 모바일 커버리지 확대, 접속 문화, 참여와 협력, 소셜 러닝, 사회적 책임 경영, 새천년 세대 출현-를 통해 현재 일터의 변화와 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 '일터 방어전'에서는 각 세대에 대한 설문조사, 지도자들과의 대화, 직장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개발된 <일터 참여 2020 모델>을 통해 2020년 일터에 통용될 기본 원리 -협력, 진실성, 개인화, 혁신, 사회적 접속-와 여러 세대가 이런 기본 원리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실행 영역 -소셜 리쿠루팅, 고도 접속, 소셜 러닝, 가속화된 리더십의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부 '2020년 일터 전쟁 시나리오'에서는 2020년대 일터에 대한 20가지 예측을 통해 '유동적이고, 다양한 연령과 민족이 있고, 유연하고, 협동적이고, 기동력 있고, 세계적이고, 고도로 접속되어'있을 2020년 일터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그 일터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과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미래의 직장 구성원이 될 각 세대에 대한 조사, 미래 직장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과의 인터뷰 및 이 분야의 지도자들과의 대화, 현재 변화의 주된 원천이 되는 블로그 등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소셜 미디어와 네트워크, 모바일 혁명과 세계화 등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들이 말한 예측의 일부는 10년 후가 아닌 수년 뒤에 우리 일터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우리의 직장에 불어닥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나아갈 곳을 딱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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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야 - 전예원세계문학선 309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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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 사람 입이 뱉어내는 어떤 경멸이나 노여움의 말도 아름답게만 들리니. 살인의 죄는 바로 드러나지만 사랑은 숨겨두고 싶어도 빠르게 나타나니 사랑하면 오밤중도 낮이란 말인가...- 3막 1장, 올리비아   

 이 작품은 <십이야>라는 제목부터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제목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단서를 찾아갈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제목과 내용이 전혀 별개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십이야'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로 구세주가 나신 축제일을 의미하는데, '십이야'는 그 축제일의 전날 밤 아니면 그 당일밤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은 바로 십이야라는 축제일에 왕실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연극이지, 작품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제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듯 합니다. 이 작품은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시기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4대 비극이 씌여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오시노 공작과 올리비아, 바이올라가 중심을 이루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이 작품의 커다란 줄기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이 읽거나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은, 이 세사람의 사랑의 얽힘이 바이올라의 대사 -아, 시간이여, 얽히고설킨 이 일의 실마리는 네가 풀어주어야 한다- 처럼 단순히 시간이 흘러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이올라의 오빠인 세바스챤의 등장으로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해 서로 간의 사랑에 혼란이 생기고, 그러한 소동 중에 자연스럽게 바이올라(세자리오)가 남장한 여자라는 사실과 그녀가 공작을 향해 간직했던 순전한 사랑 또한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공작과 바이올라, 그리고 세바스챤과 올리비아의 사랑이 경쾌한 리듬을 타듯이 매끄럽게 맺어지는 부분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덧붙여 등장하는 집사 말볼리오의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열병과 광대 페스테가 내밷는 우리 삶을 꿰뚫는 풍자에 담긴 공감과 친근함도 이 작품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참으로 혼미스러운 사랑의 협주곡'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지닌 사랑의 색조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오시노 공작의 경우는 현실적인 사랑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이끌린 감상적인 사랑을 선보이는데,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올리비아 앞에 나서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바이올라(세자리오)를 보내며 하는 대사  -가서 거절만 당하지 말고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뵙기 전에는 발에 뿌리가 돋는 한이 있어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고 우기는 거다- 등을 보면 감정적인 적극성은 가득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아무런 거리낌없이 바이올라에게로 그의 사랑이 옮겨가는 장면에서는 감상에 젖은 공작의 사랑하는 마음의 근본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비해 바이올라의 공작에 대한 사랑은 지극히 내성적이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과거 우리의 어머니 세대가 품었던 여성적인 사랑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감상적인 공작이나 저돌적인 올리비아와는 달리 헌신적이고 깊이있는 사랑의 울림을 느끼게 만듭니다. 공작의 사랑을 매몰차게 뿌리치지만 남장한 바이올라(세자리오)를 사랑하는 올리비아의 모습에서는 한편으로는 냉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에 눈이 멀어 적극적으로 사랑을 구하는 여인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아픔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지만, 자신의 사랑은 기어이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꾸미는 직선적인 사랑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올리비아와 결혼하게 되는 세바스챤의 경우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다가온 사랑의 달콤함에 휩쓸려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두 쌍과 더불어 올리비아의 친척인 토비 경과 시녀인 마리아도 결혼을 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앞의 네 사람의 사랑이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어울리는 짝과 맺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뚜렷한 색깔이 입혀진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올리비아의 집사인 말볼리오의 올리비아에 대한 신분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짝'사랑과 그로 인해 놀림을 당하는 모습이 희극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 가져오는 가장 현실적인 냉혹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부분은 곁가지 같이 들어간 배역으로 보일 수도 있는 광데 페스테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체 높은 분들의 꿈같은 사랑놀음을 보면서 부르는 노랫가락들 -엄밀히 말하면 그속에 담긴 현실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한 풍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같은 연극 속에서는 사랑이 한없이 달콤할 수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는 꿀같던 그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니..... '..... 불행히도 마누라를 얻게되니 허풍으로 먹고 살기 다 글렀네..... 자리에 누워도.... 골치만 아프네..... (하지만) 이제는 상관도 없다. 연극은 끝났네.....'

  음악이 사랑을 가꾸는 양식이라면 계속하여다오. 신물이 날 정도로 그러면 포식해서 사랑의 식욕도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 1막 1장, 공작   

 ..... 아, 시간이여, 얽히고설킨 이 일의 실마리는 네가 풀어주어야 한다. 난 좀처럼 풀 자신이 없단 말이다. -2막 2장, 바이올라 (세자리오)  

 검은 색 나의 관 위에는/ 꽃 한 송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도 뿌리지 말라./ 친구여, 어느 친구도 따라오지 말라./ 나의 뼈가 흙속에 묻힐 때 / 한 많은 탄식을 막고/ 행여 참사랑의 연인이 내 무덤을 찾아/ 슬피 우는 일 없게/ 남모르는 곳에 묻어다오. - 2막4장, 광대 

 그 애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사랑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꽃봉오리를 벌레가 좀먹듯 상사병이 장미 빛으로 물든 두 볼을 야위게 했습니다. 몸은 수척해가고 무거운 수심에 잠겨 마치 돌로 깎아 다듬은 인내의 석상처럼 슬픔 속에서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남자들은 입으로만 맹세를 잘하지만 진실보다는 겉치레가 심하죠. 맹세는 거창하게 하면서도 진정이 없는 것이 남자들이 아니겠습니까? - 2막 4장, 바이올라 (세자리오)

 ..... 인간의 추악함은 바로 마음의 추악함이다. 인정머리 없는 자야 말로 병신인 인간이다. 미덕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름다운 가면을 쓴 악덕도 있다. 악마가 만들어 놓은 겉만 번드레한 빈 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 3막 4장, 안토니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지? 강물이 거꾸로 흐르고 있나? 내 정신이 돌았나? 아니면 이것이 꿈인가? 환상이여, 내 이성을 망각의 강 속에 잠기게 해 달라. 이게 꿈이라면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게 해 다오! - 4막 1장, 세바스찬  

 참으로 혹독한 마음이로다! 비정한 여인이여! 이 사람은 박정하고 냉혹한 당신의 제단에 어떤 겸허한 신자보다 더 충직한 내 영혼을 바쳐왔소! 이제 이 몸은 어떻게 하란 말씀이오? - 5막 1장, 공작 

 몇 번이고 되풀이한 것을 또 맹세하겠습니다. 이 진실한 맹세를 낮과 밤을 가르는 저 태양이 영원히 불길을 뿜듯이 저의 영혼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 5막1장, 바이올라  

 지나간 그 어린 시절엔/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아무리 장난쳐도 좋았고/ 비는 날마다 오시네. //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행패와 도둑질은 저리가/ 비는 날마다 오시네. // 하지만 불행히도 마누라를 얻게 되니 /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허풍으로 먹고 살기 다 글렀네/ 비는 날마다 오시네. // 그러나 자리에 누워도/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곤드레만드레 골치만 아프네/ 비는 날마다 오시네. // 옛날은 천지가 개벽하던 날/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이제는 상관도 없다 연극은 끝났네/ 우리는 날마다 박수갈채네. - 5막1장,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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