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 - 전예원세계문학선 309 셰익스피어 전집 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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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 사람 입이 뱉어내는 어떤 경멸이나 노여움의 말도 아름답게만 들리니. 살인의 죄는 바로 드러나지만 사랑은 숨겨두고 싶어도 빠르게 나타나니 사랑하면 오밤중도 낮이란 말인가...- 3막 1장, 올리비아   

 이 작품은 <십이야>라는 제목부터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제목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단서를 찾아갈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제목과 내용이 전혀 별개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십이야'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로 구세주가 나신 축제일을 의미하는데, '십이야'는 그 축제일의 전날 밤 아니면 그 당일밤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은 바로 십이야라는 축제일에 왕실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연극이지, 작품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제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듯 합니다. 이 작품은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시기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4대 비극이 씌여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오시노 공작과 올리비아, 바이올라가 중심을 이루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이 작품의 커다란 줄기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이 읽거나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은, 이 세사람의 사랑의 얽힘이 바이올라의 대사 -아, 시간이여, 얽히고설킨 이 일의 실마리는 네가 풀어주어야 한다- 처럼 단순히 시간이 흘러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이올라의 오빠인 세바스챤의 등장으로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해 서로 간의 사랑에 혼란이 생기고, 그러한 소동 중에 자연스럽게 바이올라(세자리오)가 남장한 여자라는 사실과 그녀가 공작을 향해 간직했던 순전한 사랑 또한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공작과 바이올라, 그리고 세바스챤과 올리비아의 사랑이 경쾌한 리듬을 타듯이 매끄럽게 맺어지는 부분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덧붙여 등장하는 집사 말볼리오의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열병과 광대 페스테가 내밷는 우리 삶을 꿰뚫는 풍자에 담긴 공감과 친근함도 이 작품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참으로 혼미스러운 사랑의 협주곡'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지닌 사랑의 색조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오시노 공작의 경우는 현실적인 사랑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이끌린 감상적인 사랑을 선보이는데,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올리비아 앞에 나서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바이올라(세자리오)를 보내며 하는 대사  -가서 거절만 당하지 말고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뵙기 전에는 발에 뿌리가 돋는 한이 있어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고 우기는 거다- 등을 보면 감정적인 적극성은 가득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아무런 거리낌없이 바이올라에게로 그의 사랑이 옮겨가는 장면에서는 감상에 젖은 공작의 사랑하는 마음의 근본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비해 바이올라의 공작에 대한 사랑은 지극히 내성적이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과거 우리의 어머니 세대가 품었던 여성적인 사랑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감상적인 공작이나 저돌적인 올리비아와는 달리 헌신적이고 깊이있는 사랑의 울림을 느끼게 만듭니다. 공작의 사랑을 매몰차게 뿌리치지만 남장한 바이올라(세자리오)를 사랑하는 올리비아의 모습에서는 한편으로는 냉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에 눈이 멀어 적극적으로 사랑을 구하는 여인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아픔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지만, 자신의 사랑은 기어이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꾸미는 직선적인 사랑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올리비아와 결혼하게 되는 세바스챤의 경우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다가온 사랑의 달콤함에 휩쓸려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두 쌍과 더불어 올리비아의 친척인 토비 경과 시녀인 마리아도 결혼을 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앞의 네 사람의 사랑이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어울리는 짝과 맺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뚜렷한 색깔이 입혀진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올리비아의 집사인 말볼리오의 올리비아에 대한 신분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짝'사랑과 그로 인해 놀림을 당하는 모습이 희극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 가져오는 가장 현실적인 냉혹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부분은 곁가지 같이 들어간 배역으로 보일 수도 있는 광데 페스테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체 높은 분들의 꿈같은 사랑놀음을 보면서 부르는 노랫가락들 -엄밀히 말하면 그속에 담긴 현실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한 풍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같은 연극 속에서는 사랑이 한없이 달콤할 수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는 꿀같던 그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니..... '..... 불행히도 마누라를 얻게되니 허풍으로 먹고 살기 다 글렀네..... 자리에 누워도.... 골치만 아프네..... (하지만) 이제는 상관도 없다. 연극은 끝났네.....'

  음악이 사랑을 가꾸는 양식이라면 계속하여다오. 신물이 날 정도로 그러면 포식해서 사랑의 식욕도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 1막 1장, 공작   

 ..... 아, 시간이여, 얽히고설킨 이 일의 실마리는 네가 풀어주어야 한다. 난 좀처럼 풀 자신이 없단 말이다. -2막 2장, 바이올라 (세자리오)  

 검은 색 나의 관 위에는/ 꽃 한 송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도 뿌리지 말라./ 친구여, 어느 친구도 따라오지 말라./ 나의 뼈가 흙속에 묻힐 때 / 한 많은 탄식을 막고/ 행여 참사랑의 연인이 내 무덤을 찾아/ 슬피 우는 일 없게/ 남모르는 곳에 묻어다오. - 2막4장, 광대 

 그 애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사랑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꽃봉오리를 벌레가 좀먹듯 상사병이 장미 빛으로 물든 두 볼을 야위게 했습니다. 몸은 수척해가고 무거운 수심에 잠겨 마치 돌로 깎아 다듬은 인내의 석상처럼 슬픔 속에서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실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남자들은 입으로만 맹세를 잘하지만 진실보다는 겉치레가 심하죠. 맹세는 거창하게 하면서도 진정이 없는 것이 남자들이 아니겠습니까? - 2막 4장, 바이올라 (세자리오)

 ..... 인간의 추악함은 바로 마음의 추악함이다. 인정머리 없는 자야 말로 병신인 인간이다. 미덕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름다운 가면을 쓴 악덕도 있다. 악마가 만들어 놓은 겉만 번드레한 빈 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 3막 4장, 안토니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지? 강물이 거꾸로 흐르고 있나? 내 정신이 돌았나? 아니면 이것이 꿈인가? 환상이여, 내 이성을 망각의 강 속에 잠기게 해 달라. 이게 꿈이라면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게 해 다오! - 4막 1장, 세바스찬  

 참으로 혹독한 마음이로다! 비정한 여인이여! 이 사람은 박정하고 냉혹한 당신의 제단에 어떤 겸허한 신자보다 더 충직한 내 영혼을 바쳐왔소! 이제 이 몸은 어떻게 하란 말씀이오? - 5막 1장, 공작 

 몇 번이고 되풀이한 것을 또 맹세하겠습니다. 이 진실한 맹세를 낮과 밤을 가르는 저 태양이 영원히 불길을 뿜듯이 저의 영혼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 5막1장, 바이올라  

 지나간 그 어린 시절엔/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아무리 장난쳐도 좋았고/ 비는 날마다 오시네. //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행패와 도둑질은 저리가/ 비는 날마다 오시네. // 하지만 불행히도 마누라를 얻게 되니 /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허풍으로 먹고 살기 다 글렀네/ 비는 날마다 오시네. // 그러나 자리에 누워도/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곤드레만드레 골치만 아프네/ 비는 날마다 오시네. // 옛날은 천지가 개벽하던 날/ 헤이호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이제는 상관도 없다 연극은 끝났네/ 우리는 날마다 박수갈채네. - 5막1장,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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