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당시 기록 가운데 없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그의 작품들과 연관시키는 서류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인간을 그의 작품들과 연관시키는 서류이다. 셰익스피어 학자 조너선 베이크가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의 생전 또는 그의 사후 200년 동안에는 그가 그 희곡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말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p201 

 셰익스피어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뿐이다. 역사를 아무리 들추어봐도 옥스퍼드 백작이나 말로, 또는 베이컨의 지인들 가운데 그런 말을 흘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증거라고 할 만한 것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큰 문학 사기 사건을 그 범죄가 저질러지고 400년이 지난 후에 들춰낸 반셰익스피어파 열성분자들의 비상한 재주는 치하해야 마땅할 것이다. -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p213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의 마지막 장 '이색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의 실제 작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실제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후보로 오른 사람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해 옥스퍼드 백작, 크리스토퍼 말로, 펨브로크 백작부인 메리 시드니 등 50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빌 브라이슨은 앞의 인용구에서처럼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얼토당토 않음에 대한 비난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비난한 반셰익스피어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이커니언(Baconian)의 시각을 담은 책인데,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이 아니라 당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저술한 실제 작가이고, 그 작품들 안에 다양한 방법으로 암호를 숨겨놓았다고 주장하는 다소 황당 -실제로 이 책을 읽은 것은 베이컨 저작설의 정당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자 한 것이니 이리 표현합니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덧붙여 베이컨이 엘리자베스 여왕과 레스터 백작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고, 에식스 백작은 또다른 엘리자베스의 사생아라는 주장도 담고 있는데, 실제 베이컨이나 에식스 백작 등에 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한 입장에서 가타부타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주장이 주류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냉소를 받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Shakespeare Code이고 우리말 제목은 <셰익스피어는 없다>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통해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그가 썼다고 주장하는 문학작품들의 실제 저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건데 정말 셰익스피어는 눈을 씻고 찾아보다도 보이질 않습니다. 오로지 베이컨이 그 많은 작품들을 썼다는 일방적인 주장-실제로 그것을 뒷받침 할 만한 증거는 어디에서도 다루질 않았습니다-을 내놓고서 증명하지 않은 그 주장을 근거로 베이컨 저작설을 단정하여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라고 한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아무런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는 셰익스피어가 없다는 사실을 제목에서 고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제목도 The Shakespeare Code가 아닌 The Bacon Code라고 쓰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일텐데, 저자가 용감하게 그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스런 생각을 지울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은 결코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베이컨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사실이라기보다는 음습한 구석에서 몇몇 사람이 피운 의심의 싹이 인간의 불신 또는 교활함과 만나 부풀려진 이야기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골 출신에 글자도 모르는 부모-셰익스피어의 아버지가 지금으로 하면 시장급의 직책을 역임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다분히 의도적인 왜곡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음-를 둔 셰익스피어는 결코 그런 작품을 쓸 위인이 못된다고 우기면서도,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사생아이긴 하지만 왕족이었고 고급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베이컨은 당대를 뛰어넘어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사람보다도 출중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우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함도 함께 담겨 있는 이야기..... 

 굳이 품절된 이 책을 중고로 사서 읽고자 했던 것은 도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베이컨 저작설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이 책이 인용하고 있는 베이컨의 숨겨진 암호를 풀었다는 사람들의 책을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1564년에서 1616년을 살았던 인물이고, 이 책이 담고 있는 셰익스피어-베이컨 설의 연보에서 셰익스피어가 원작자가 아니라는 첫 주장은 그의 사후 100여년이 지난 1728년이었고, 프랜시스 베이컨을 원저작자로 심도있게 다룬 것이 셰익스피어 사후 200여년이 지난 1857년 델리아 베이컨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그녀의 일생이 진지한 작가라고 말하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암호 해독법으로 베이컨 저작설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동일한 방법으로 셰익스피어 저작설을 지지하는 암호를 밝혀낸 사람도 있다는 점, 니체나 마크 트웨인의 경우는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책의 근저에 깔린 베이컨 저작설의 허술한 면들이 더 부각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애써 베이컨 저작설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마지막 장을 진지하게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책은 제목이 멋지기(?)는 하지만, 제목에 낚여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읽을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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