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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Shop Boys - Yes
팻 샵 보이스 (Pet Shop Boys)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현재까지 20년도 넘게 이들의 팬이므로 이 리뷰는 매우 편파적임)
Pet Shop Boys 의 West End Girls 를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이 앨범에 실린 노래들을 듣는 순간까지, 이들의 노래에 대해 느끼는 기분은 대동소이하다. 엄청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가 좋다 --> 그런데 보컬의 목소리는, 낭창낭창 아름다운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심상찮은 서늘함이 느껴진다 --> 가사를 들어보면, 역시나, 시니컬하고 똑똑한 영국 밴드로구나. 뭐 이런 순서.
이번 앨범에 대해서 레이블 담당자는 "우리가 펫 샵 보이스에 대해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딱 맞는 말이다. 앨범 재킷부터 노래 하나하나가 최고치로 시니컬하고 암울한 향기를 냈던 지난번 Fundamental 앨범의 자취는 간 데 없고, 마치 그들의 노래를 처음 듣던 시절의 분위기로 돌아간 듯하다. 그러나, 뭐랄까... 나는 이번 앨범에서 노회한 뮤지션의 '달관'을 들었다.
"감정을 느낄 줄 아는 기계인간의 목소리 같다"는 평가를 받는 닐 테넌트의 목소리는 여전한 것도 같지만, 4번째 트랙 Did you see me coming 에서 받는 느낌은 Love comes quickly 같은 비슷한 분위기의 예전 히트곡에서보다 훨씬 더 달콤해졌다. 편하게 풀어진 느낌이다. 누가누가 더 딱딱하게 서 있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던 예전 뮤직비디오에 비교하면, Did you see me coming 의 비디오 클립에선 무려 손동작으로 춤을 추기도 하니까. (흑, 하지만 나같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발견 못할 만큼 소소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다...)
가사는 여전히 좋다. 달콤한 멜로디에 실려오는 냉소적인 가사. 이게 바로 펫 샵 보이스에 대해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이니까!
권력과 부를 갖고 살 필요는 없어 / 아름다울 필요도 없어. 하지만 그럼 도움은 좀 되지 / 비벌리 힐스에 집을 사거나, 그 돈을 내줄 만한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 더 필요한 게 있지, 더 필요한 것. 그것은 사랑. - Love etc.
완벽한 나를 꿈꾸는 건, 판타지일 뿐일까 / 난 아름다운 사람처럼 살고 싶어 /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베풀고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 Beautiful People
쳇, 해석해놓으니까 이상하군.
예전 히트곡 Rent 에서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내 집세를 내주잖아." 하고 뒤통수를 치는 가사는 없지만, 20여 년을 고집스럽게 신스 팝 한우물을 파온 우직함 + 늘 이상향을 꿈꾸며 진지한 성찰을 멈추지 않은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앨범이다.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 연달아 듣고, 특히 4번 Did you see me coming 을 듣고 나서는 앉은자리에서 그냥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얇은 시폰 천을 열 겹, 스무 겹 레이어링한 듯한 부드럽고 풍성한 사운드 + 냉정하지만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비트에 오늘 저녁도 나는 넋을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