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어룸 > 내맘대로 어워드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옵니까~^^

2005년을 보낸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사실은 할일이 없어서) 제맘대로 어워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와아~~~!!! >ㅂ<)/


(어이~어이~ 맨앞 오른쪽의 뚱한 아저씨, 호응해주기싫음 뒤로가시덩가!!)

작년에 읽은 책은 모두 246권 (숫자에 너무 놀라지들 마삼...소문에 의하면 로맨스소설만 아흔 다섯권이었다고....^^;;;;;;;;;;;)

분권된 책은 한권씩 쳤구요, 대신 만화책은 한질을 한권으로 쳤숨당^^ 읽는데 오래걸리는 원서도 한권으로 쳤으니 대충 맞는 숫자라고 봅니다(ㅋㅋ몇권 읽지도않은 주제에!)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ㅂ^

 

최고로 맘에 들었던

"The Mill on the Floss"

작년에 읽은 첫번째 책인데, 두고두고 많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시대적배경은 오래전이지만 지금의 시대에도 충분히 이해되는 점들이 많아서, 여성으로써 인간으로써 사회와 나와 가족 등 여러가지 관점으로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답니다.
(네~네~ 선물해주신 분에대한 호감도가 크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겠숨당!! 호호호~^m^)

 

최고의 번역

최고의 번역은 단연 칼에 지다가 차지하였습니다!! 양윤옥님의 감칠맛나는 번역이 아사다 지로님의 글과 잘 어울려져서 입에 착착 달라붙는 멋진 책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더랬는지는 이제 말하기도 지겹슴당....TㅂT

 

악의 번역

중역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독자들을 인내의 시험에 들게하였던, 작자나 주인공 이전에 역자의 내면을 먼저 이해해야 소설의 이해가 가능했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차지했습니다!! ^^;;;;

 

최고로 불쌍한 주인공

'내눈에는 악마가'의 주인공 아서 존슨씨를 뽑겠습니다. 시종일관 소심하고 초조불안한 성격으로 답답함을 자아내더니, 노인의 몸으로 흠씬 두들겨 맞기까지하는 등 최후까지 불쌍한 모습이었으나, 다른 캐릭터들의 호감은 물론이고 심지어 읽는 사람의 동정심조차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쯧!

 

최고로 뻔뻔한 작가

그의 소설에 나오는 쭉빵+지적인 여인들은 모두 이 나이들고 배나온 모스경감에게 빠져든다......이유도 모른채....!!!(저도 빠져들었음을 인정하렵니다^^;;;;;;;)

 

최고의 오리무중

사요나라 갱들이여 두번을 읽어도 당췌 이해 불가능했음을 고백합니다...죄송합니다 무식해서...TㅂT

 

고의 만화

어둠속의 목소리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 이제서야 친구한테 빌려봤답니다. 그림이 너무 과거지향적이라 잠시 망설였었는데 의외로 참 재밌더군요...음...이런 만화 좋아해요^^ 주인공이라고 다 착한 순딩이는 아니고 나쁜 인간은 그 응분의 댓가를 받는!! (그니깐 결국 권선징악이란 얘기를....)

 

 

 

 

 

최고의 추리소설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가 역시 넘버원!! >ㅂ<)b '추리'소설이 이렇게도 따땃~하고 감성넘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해줬다죠!!

그런데...'기린의 눈물'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로구나...ㅠ.ㅠ 

 

최고로 로맨틱한

그 이름은 동경만경. '열대어' 이후 요시다슈이치란 작가에 대해 눈썹을 찌푸리며 곱씹어보고 있던 중에, 금某님의 적극추천에 귀가 얇아져 읽은 책. 사랑에 빠져버리고 싶어지게 만든다고나 할까요...마지막 장면을 읽고 있으면 진짜로 눈앞에 동경만이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최고의 로맨스소설

A Gypsy at Almack's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통통하지만 똑똑하고 목소리 고운 아가씨와 '난 늙었으...'라고 되내이면서 이 아가씨랑 재치의 수준이나 대화가 너무 잘 맞아서 좋아하는 자신을 나무라는 아저씨(? 삼십대초반이었던것으로 기억) 사랑이야기인데 어찌나 귀엽던지요!! 몇달만에 만난 연인이 느무나 반가워 서로를 안으려고 도도도~ 달려가다가....꿍!! 서로의 이마를 들이받으며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지요^^ 

 

그밖에...

 

술술 넘어가는구나

속도와 흡입력이 끝내줍디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일단 다 읽어버려야된다는...!!

번역이 좀만 자연스러웠다면 더 좋았을듯한 아쉬움은 있지만, 무지 재밌게 읽었답니다^^

 

 

냐하핫~ 귀엽구나!!

억지스럽지않고 자연스럽게, 작가가 어려서가 아니라 캐릭터가 사랑스러워서 사랑스러운 책이랍니다^^ 이뻐요이뻐.... 

 

 

이 악물어라

참말로 길고 긴 분량만큼 징하게도 재미가 없었던...그리하여 순수하게, 참으로 순수하게, 오로지 '오기'만으로 읽었답니다!! 

제 메모에 '이 악물어라'라고 써있군요...아마도 작가의 안면에 강한 충격을 주고 싶었던듯....--a

 

뭐니?????

봄날의 원작인 '별의 금화'....하아.....참말이지 별 하나도 아깝더이다....정말 뭐니????????

 

죽었으~

베르베르, 너 죽었으!!!!!!!!!!!!!! >.,<

(그래도 다행히 책만 읽고 영환 못봤어요...)

 

그리고 끝으로

최고의 남자주인공은...

플로스 강가의 필립씨, 모스경감님, 실버피그의 디디우스 팔코씨, 디미티아줌마 시리즈의 빌씨, 내 슬픈 창녀의 추억의 서글픈 언덕씨 이 다섯사람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필립 씨는 제 취향에는 너무 다소곳하시다는 이유로 실격,

팔코 씨는 제 취향에는 너무 뺀질댄다는 이유로 실격, (어쩌란거냐!!!)

빌 씨는 아직 시리즈 초반이라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실격,

그리하여 남은...아니, 남으'신' 두 '분'  중

두구두구두구....

네, 서글픈 언덕씨랑은 언어소통이 힘들것같다는 이유로 모스경감님이 당첨(?)되셨습니다!!!!!!!!!!!!!!!!!!! >ㅂ<)/ 축하드립니다!!!!!! (그러게 위의 글은 복선이었다는...^^;;;;;;;;;;;;;)

 

이로써 내맘대로 어워드를 마치겠습니다!!!! 읽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삼~!!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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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 2005년,흑백TV가 추천하는 올해의 책.

    <시>

박진성의 ‘목숨’은 참으로 사람을 짠하게 했던 진정성이 담겨져 있는 시집이었다.타인과의 병적 동일시를 통한 정신분열 가능성,이란 진단을 받고 ‘알프라졸람’과 ‘바리움’이라는 항우울제에 기대어 살아가는 시인의 삶.그가 쓰는 시는,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자의 어떤 절박한 몸짓 같았다.윤재철의 어느 시구절처럼 ‘생은 아름다울지라도,피 흘리는 꽃일거라고 생각했다’는,그 말이 어울리는..참으로 처절하게 아픈,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시집이었다.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는 기존의 시 문법으론 읽히지 않는,매우 독특한 시 범주에 들어가는 시집이다.극단적인 학대와 폭력,의미없는 말의 지껄임의 연속 등을 통해,새로운 형식적 시도를 하고 있다.그래서 실은,쉽게 읽히지 않으나 기존의 관습과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창적인 시도가 의미있었다 평가하고 싶다.

 

 

 

 문지시선 300호 기념시집인 ‘쨍한 사랑 노래’는,일단 역사적인 하나의 기록으로서 의미가 있다.시의 위기,시가 읽히지 않는 사회로 접어든 요즘이지만 순수문학을 대변하는 시선이 300호를 넘어섰다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다.시집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는데,사랑을 테마로 각 시집에서 발췌한 시들은 언제 읽어도 참 좋다.그리고 덤으로 주었던 기념노트는,기억에 남는 나만의 시들로 한편씩 채워나가고 있다.

 

 

<소설>

 

 윤대녕의 ‘호랑이는 어디로 갔나’ 는 윤대녕 소설의 터닝포인트가 될,의미있는 소설이었다.그동안 자의반,타의반 침묵으로 일관했던 사회에 대한 시선을 의미있게 드러낸 것이,작가 본인으로서나 팬의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주인공들이 머문 풍경들을 바로 눈앞에 펼쳐놓은 듯한 생생한 묘사,그리고 각종 물고기들에 대한 상식과 요리법,덤으로 제주에서 생활했을 작가의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상상해 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김숨의 '투견'은 무채색이다.하나같이 어둡고 음습하고 무섭기까지 한,잔혹함이 스며있다.근데 이상하게도 그 불편함이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고,어떤 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면,독특한 매력이지 않겠는가? 그녀의 소설은 진지하고 또한 정교하다.몽환적 현실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현실의 실상을 더욱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독특함은,아마도 김숨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아,그리고 김숨은 소설가 김도언과 한 방을 쓴다고 한다.

 

 

 

일본의 젊은 청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은 가벼움이 판치는 요즘 소설 경향에서 참으로 이채로운 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진지한 작가의 새 소설이다.역시나 진지한 한국작가 김연수와의 대담속에 숨어있는,그의 생각이 참 좋다.


“근대문학이 죽었다는 것과 소설이 죽었다는 것은 다르다.후자는 소설 장르 자체의 무효를 선언하는 것이고, 앞의 말은 근대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소설이 죽었다’는 말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 가령 종이를 열 번 떨어뜨릴 때 그 모습은 매번 서로 다르다. 그것이 현대 사회 내의 미묘한 차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 내의 흔들림과 잡음 등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것은 소설로써만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만만치 않은 가격과 분량이지만,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요즘 소설은 읽을게 없다,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인문.사회>

 

 흰 것의 어긋난 욕망! ‘일상의 파시즘’부터 ‘대중 독재’ 논쟁에 이르기까지 ‘파시즘’이란 말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파시즘의 고목아래 아직도 살아남은 파시즘의 잔뿌리들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그럼에도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외피만을 더듬고 있었을 뿐,감추어진 속내는 사실 알 수 없었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파시즘의 정확한 속내를 알게 해주는 전문적이면서도 쉬운,잘 쓰여진 책이다.파시즘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파시즘이 취하는 겉모습에는 한계가 없다,곧,파시즘의 변신(형태상으론)은 무죄!

 

 한 비판적인,그리고 실천적인 지식인의 삶을 뒤돌아보며,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의 단면단면들과 해후하는 것은,그 시대를 몸소 겪지 않은 사람으로서 일종의 예의이다.강준만의 말을 빌리자면 ‘리영희가 원한 세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의 책들은 계속 읽혀져야 한다.그런 세상이 누구의 피와 땀 덕분에 오게 됐는지 그것도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 대량 학살 이후 리영희 교수가 구속됐을 때,프랑스의 유력지 <르몽드>는 그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큰 스승)이라고 묘사했다 한다.큰 스승과의 조우,분명 의미있는 것이리라.젊은 분들이 더 많이 읽게 되기를 바래본다.

 

<사진.산문>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운명과 대결해 싸우고 있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다.사진속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내게 걸어와 눈물 흘린다.나는 허리를 굽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서러운 인생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비록 단 한 장의 사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작가.그의 사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한 그릇의 국밥같은 책.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아주 반길만한 이 책.김화영 선생께서 진행하시고 엮으셔서 그런지 일단,신뢰가 간다.면면들도 다 관심이 가는 작가였고,그들의 솔직담백한 문학과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곶감 빼먹듯 내가 특히 관심가는 작가쌍을 중심으로,그들의 일기장을 훔쳐보듯,조금은 관음증적이게 몰래 천천히 읽어냈던 기억이 슬금슬금 떠오른다.

 

 

<스포츠.생태>

 

올 한해 박지성과 이영표의 경기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박터지는 스코어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그리고 프리미어리그를 조금 더 즐겁게,재미있게 볼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이 책,상당히 실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 책.축구매니아라면 놓쳐서는 안될 책.피자 한 판 값으로 유럽축구를,알고 즐기며 볼 수 있다.

 

 

 편하게 편하게만..에 길들여지면,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인간의 근원적 가치는 묻혀버리고 방법론적인 기술진화에만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뜨거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따끔한 경고장,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최후통첩에 다름 아니다.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나와 그것(I-it) 이 아니라 나와 너(I-thou)의 범주로 끌어와야만 하는,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소중한 책이다.

 

<교양>

 

올 한해 강준만 교수의 컨셉은,아마도 ‘교양의 대중화’ 가 아니었을까.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사전 시리즈와 한국논쟁 100,이 책들만 읽어낸다 하더라도 올 한해 독서를 갈무리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폭넓은 지식들을 한곳에서 아우를 수 있게 해주었다.물론 조금 더 깊게 관심을 가지고픈 분야는 노력을 덧붙여야 한다.볼테르가 말했듯이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방어하겠다”는 열린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힘,교양과 논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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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1초,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



최근 "단 1초라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일들" , "1초의 신비" , "1초라는 시간" 이란 제목으로 네티즌들에게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사진 게시물이 있습니다.

극히 짧은 한 순간 '1초'라는 시간의 길이는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1초 사이에 일어 나는 일들을….

지구와 우주, 생명체 속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미지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67년, 국제 도량형 총회는 세슘 원자가 91억 9천 2백 63만 1천 7백 7십번 진동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1초라고 정의했다고 합니다. 재채기 때 터져 나오는 침이 공기저항이 없을 때 100m를 날아가는 시간, 벌이 살아 남기 위한 날개짓을 200번하는 시간이 짧고도 긴 1초라는 시간입니다.

이 이미지는 9월 5일, EBS교육방송의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에서 방영된 "1초"를 캡쳐한 것이었습니다. ( ▶ "1초" 동영상 보러가기)



▲ 세슘 원자가 91억 9천 2백 63만 1천 7백 7십번 진동하는 시간



▲ 투수를 떠난 공이 배트에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



▲ 인간의 주먹이 1톤의 충격량을 만들어 내는 시간



▲ 재채기 때 터져 나오는 침이 공기저항이 없을 때 100m를 날아가는 시간



▲ 총구를 떠난 총알이 900m를 날아가 표적을 관통하는 시간






▲ 대지를 적시는 비 420톤



▲ 빗방울을 피하기 위한 달팽이의 달리기 1Cm



▲ 벌의 살기위한 날개짓 200번



▲ 두꺼비의 혀가 지렁이를 낚아채는 시간



▲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 486억Kw



▲ 새로운 생명의 탄샌 2.4명



▲ 1.3대의 승용차와 4.2대의 텔레비전이 만들어지고

5,700리터의 탄산음료와 51톤의 시멘트가 소모되며

22명의 여행자들이 국경을 넘는 시간



▲ 79개의 별이 사라지는 우주



▲ 우주의 시간 150억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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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끊이지 않는 황우석 관련 논란을 지켜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과연 희생자인가, 아니면 협잡꾼인가? MBC는 과연 진실을 보도한 것일까, 아니면 특종 보도를 욕심내다가 잘못 "낚인" 것일까? 피디수첩 보도에 발끈한 네티즌들이 MBC를 "방법"한 것은 잘한 일일까, 아니면 지나칠 일일까? 여기다가 이제는 연구원 모씨가 이렇게 말했다, 혹은 안 했다는 공방이 이어지고, 국과수에서 방송사에 연락을 했다, 안 했다는 식으로 증언의 진위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때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옷 로비 사건"의 재탕을 보는 기분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그때 "옷 로비 사건"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야무야 되어 버린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벌어진 사건은 "하나"인데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한 세 여자인지, 네 여자인지가 나란히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하느님께 맹세한다"고 우겼으니, 오죽하면 당시 질의하던 국회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 "어째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하느님까지 들먹이며 하는 말들이 이렇게 다르냐"고 책망을 했을까. (물론 이들 모두 "진실"을 말했을 수는 있다. 즉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부분적인 진실"만을 말이다. 그러니 분명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니, 거뜬히 하느님을 들먹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슨 <라쇼몽>도 아니고 말이다. 어쩌면 황우석 논란 역시 이처럼, 그러니까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공연히 시간만 질질 끌면서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큰 부담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어째서 꼭 이렇게 "중대한 사건"은 그 실상이나 진실을 찾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허깨비 놀음처럼 말이다.

처음 난자 기증 여부에 대한 황우석의 발표가 있고 나서, 일군의 "용감한" 여성들이 나서서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후원회를 결성하고, 또 연구소 측에 기증 신청을 하는 여성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난자"는 "여성"의 신체 일부인데, 어째서인지 황우석의 연구에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쏘옥 빠져버리고 "난자"만 언급되는 듯하다. 과연 여성이 아닌 남성의 고환에서 어떤 생식 관련 물질이나 조직을 추출해야 했다고 하면,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생성되지는 않고 수량이 몇 개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라면, 과연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지원자로 몰릴까? 솔직히 나로선 여기서 어떤 남녀차별의 흔적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노벨상 감"이라는 황우석의 연구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로 인해, 이 사회가 "여성"들을 향해 난자를 기증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과연 여성계는 이 사건, 즉 여성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난자를 "가져가라"며 나서는 상황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집사람 말이, 몇 년 전에 여자대학 앞에서 "도너 모집"을 한다면서 예쁘고, 똑똑하고, 날씬하고, 젊은 여대생의 난자 하나에 수천만 원씩을 주고 구입해서, "불임"인 부부에게 시험관아기 용으로 되파는 사례가 있어서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황우석은 비록 "연구 목적"이긴 하지만 난자 하나에 겨우 150만원씩(하루 일당 10만원씩으로 쳐서, 15일 동안 호르몬 주사를 맞는 비용이라던가)을 줬고, 이제는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으니 그야말로 행운아가 아닌가. "어쩌면 황우석의 가장 큰 업적은 그건지도 몰라." 집사람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직거래를 통해 가격의 거품을 뺌으로써 난자 가격을 합리화시킨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가격 파괴라고나 할까."

집사람이 이렇게 시니컬하게 나온 까닭은, 자기 자신도 한 사람의 여성이면서, 또한 유독 매월 그 달거리의 고통으로 인해 녹초가 되고 마는 상당수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힘든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야말로 주기가 들쭉날쭉 불규칙해지고 소식이 없어서 애를 먹는 차에, 전국 방방곡곡에 인심 후하게도 "난자 가져가라"고 온몸을 던지는 여성들이 있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 자라는 것이다. "과연 그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여성의 몸이 민감하다는 사실은 나도 결혼 후에야 알았지만, 솔직히 그런 사실을 지금도 종종 망각하곤 한다. 즉 내가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집사람이 나보다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나보다 피곤을 더 쉽게 느낀다는 사실을, 나보다 더 깜짝깜짝 잘 놀라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는 것이다. 특히 남성의 몸에서 생성되는 정자와는 달리, 여성의 몸에서 생성되는 난자의 개수가 평생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지난 번 나탈리 앤지어의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춘기에 접어들면 여자들은 모두 난자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꼴로 배출하고, 그러다가 50대에 이르러 폐경기에 접어들면 모두 "이제 그만" 하고 뚝 끊겨버리는 줄 알았다. 즉 어떤 "유효기간"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유효갯수"가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난자 채취라는 것이 달랑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주사를 통해 여러 개를 "미리 끌어내어" 쓰는 것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더욱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각자의 "난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 어떤 사람에겐 2000개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겐 1000개일 수도 있을 거다 --- 과연 지금 당장 다섯 개, 혹은 10개를 끄집어내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물론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헌혈하듯 "난자 판매"를 하는 사람의 경우도 앤지어의 책에는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특이한 (병원 의사들도 모두 놀라워한) 경우일 뿐이다. 솔직히 묻고 싶다.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에게 말이다. 그들은 과연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을까? 아니, 과연 자신의 "몸"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은 해보고 나서 난자 기증을 결심한 것일까? 이건 단순히 애국적이고 반애국적이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제아무리 "난자 기증"이 단순히 "좋은 일"처럼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공익이고 국익이고 간에 자기 자신의 몸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인가? 나라면 내 마누라가 난자고 나발이고 기증하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막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단순한 공명심, 혹은 공익의식으로 인해 개인이 입은 피해는 어느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의 남편이나 애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난자 기증이니, 황우석 지지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장애인"이 많았다는 사실은 이 논란에 좀 더 복잡한 맥락을 제공하는 듯하다. 황우석의 시도가 처음 대서특필되었을 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를 한 사람은 장애인들이었을 것이다. 즉 크리스토퍼 리브나 강원래 같은 장애인도 황우석의 연구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유난히 부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나마, 황우석의 연구가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려면 상당한 시간이 더 걸려야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정작 황우석의 연구팀에 속한 사람들도 최소한 수십 년은 걸려야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끝을 애써 흐리고 있다. 물론 정작 황우석 자신은 사방팔방 돌아다니면서 10년 후니, 뭐니 하면서 그런 핑크빛 꿈을 심어주느라 여념이 없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장애인들은 당장 여기에 공명하여 황우석을 구세주처럼 받들어 모시게 된 모양인데, 솔직히 여기에는 거품이 없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문득 보건부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타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상정하면서 장애인의 보건 문제를 이유로 들고 나섰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즉 장애인들이 양치질 하기가 힘들어서 치아 보건에 문제가 있으니, 이 기회에 온 나라 수돗물에 불소를 타면 장애인들에게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소탐대실이고,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그러나 이를 비난하면 자칫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한다"는 식으로 엉뚱한 비난을 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 황우석 문제가 딱 그렇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 과정이 윤리적으로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 하나만 해도 지금까지의 사건은 분명히 커다란 오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황우석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노벨상 유력 수상자"란 타이틀과 함께 "장애인들의 희망"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 황우석을 비판하려다 보면 졸지에 "국익에 반대'하고 "장애인들의 희망을 꺾는" 무뢰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다보니 정말로 필요한 비판조차도 못 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품는 "완치"를 향한 꿈은 솔직히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언젠가 이른바 "복제인간"을 지지한다는 어느 미국 여성이 자신의 죽은 딸을 복제인간으로 되살리고 싶어서 체세포 일부를 여지껏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 인터뷰에서, 그야말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것과도 비슷하다. 과연 그 체세포를 복제해 만든 "딸"이 자신의 죽은 "딸"과 같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는 걸까? 생긴 건 비슷하더라도, 과연 그 새로운 아이가 옛날 그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결국 과거의 한 존재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새로운 아이는 어떤 기분이 들까? 물론 현재 줄기세포를 만들어 장애인을 돕자는 것에까지 이와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품는 "완치"에의 꿈은, 어딘가 인간 모두에게 동일한 "무병장수"에의 욕망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고통 없이 오래 산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겐 좋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삶을 단순히 그 길이로만 측정할 수 있을까? 최근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으면서, 거기서 신들이 인간들을 가리켜 "죽을 목숨의 인간"이라고 지칭하는 문구가 계속 나오는 걸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죽는다는 것, 분명히 그 한계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여기서 굳이 아시모프의 <200살이 된 사나이>에서 로봇 앤드류가 인간으로 "인정" 받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나, 톨킨의 <실마릴리온>에서 죽음이야말로 일루바타르가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어떤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시된 상황에서, 즉 앞으로 실현이 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다들 지나친 낙관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언젠가 혹시 난치병에 걸리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하면 그야말로 "욕심"을 부려서라도 "완치"를 꿈꿀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체념하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돈이 있다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명을 일분 일초라도 더 연장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것이 현대 의학이니 말이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아직 요원한 "기적의 치료제" 개발보다도, 당장 장애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런저런 편의시설을 마련하고, 일반인들의 편견이나 좀 교정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초가삼간에 불 지르는 것보다는 더 쉬운 "빈대잡기"가 아닐까.

미국 CBS의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론카이트가 은퇴한 후,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댄 래더다. 다혈질에다 사고뭉치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거물급 방송인으로 인기를 누린 그가 지난 미국 대선 직후에 방송에서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바로 오보 때문이었다. 그가 진행하던 <60분> (지금 피디수첩과 유사한 포맷의 시사 프로그램이다.)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병역 비리에 대한 보도가 나갔는데, 알고 보니 CBS측에서 진짜라고 믿었던 증거자료와 그 제보자 모두가 허위로 밝혀진 것이다. 평소에 부시를 싫어했던 래더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시의 재선을 막을 절호의 기회라고 해서 무리하면서까지 방송을 밀어붙였는데, 결과는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어지간한 사건 같았으면 사과방송으로 끝났겠지만, 이번 경우엔 아무리 사고뭉치였던 래더 (그는 언젠가 방송 도중에 갑자기 자리를 비워버리는 대형사고를 치고 나서도 여전히 자리를 유지한 바 있었다.) 라도 불명예퇴진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피디수첩 보도를 접하고 나서 문득 이 사건이 생각났다. 물론 아직 황우석과 피디수첩 중, 어떤 쪽이 옳다 그르다고 최종 판정이 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방송사의 지나친 "시청률 경쟁"이나 "특종 경쟁"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또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언론의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든다. 애초에 황우석이 나왔을 때 그를 "노벨상 감"이며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부추긴 것이 바로 언론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냄비 언론에 길들여진 냄비 여론이, 그 여세를 몰아 금방 식어버린 냄비 언론을 심판한 꼴이 되었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하고, 또 불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피디수첩을 욕하고, MBC를 비난하고, 나아가 거기 광고를 주는 광고주들을 향해서도 협박을 서슴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언론이 만들어낸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황우석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위자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위인이 되어버린 것도 언론 보도가 아니었던가. 언론이 황우석을 불사신으로 만들어내고, 이제 그 불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리어 매도당하는 실정이다. 솔직히 언론보도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과연 황우석의 연구에 대해 알았겠는가? 한편으로 지금 황우석을 "사랑"하고 MBC를 "증오"한다고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은 과연 황우석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MBC에 대해서는 또 "무엇"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것일까? 아마 황우석의 연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MBC가 걸고 넘어진 문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는 이른바 "네티즌"들의 MBC 비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MBC의 보도에서 어떤어떤 부분이 오류였고, 문제였고, 잘못이었다고 조목조목 지적하는 경우보다는 무조건 "한국 놈들은 남 잘 되는 꼴을 못 본다."느니, "우리끼리 싸워서 미국에만 이익이다"느니, 해서 무조건 MBC를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라도, 황우석이 정말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잘못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할까? 어쩌면 그때 가서는 "망할 놈의 MBC 때문에 산통 다 깨졌다." "치사하게 같은 한국 사람끼리 다 까발리냐"고 또 다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 특히 네티즌들이 언론이나 공권력을 불신하게 된 것도 결국 언론이나 공권력 그 자체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권력형 비리 사건이나 의혹이 있을 때에도 그걸 끝까지 파헤치기는커냥, 중간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덮어버리고 마니 국민들의 불신이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개똥녀 사건처럼 네티즌이 직접 "나서서" 사회악을 "방법"하는 것처럼 일종의 "사이버 린치"가 유행하는 것 아닌가. 언론이 정말 제 기능을 다 한다면, 검찰이 정말 제 기능을 다 해서 모든 의혹을 규명하고, 모든 범죄를 정당하게 처벌한다면, 과연 시도 때도 없이 들먹여지는 "엑스파일 이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이번 MBC에 대한 "방법"을 가만히 보면, 이전에 조선일보를 향한 비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매체가 "절대악"을 구현할 수는 없다. 논조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한 매체를 전부 매도할 수는 없다.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해서, 한 방송사나 신문사에서 처음부터 끝가지 "거짓 일색"으로 포장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딴지 총수는 해외의 전문 싸이비 언론인 타블로이드 신문을 가리켜 "자신들이 쓴 기사에 한 단어라도 '진실'이 있다면 전원 자폭할 태세가 된 전문가들"이라 극찬한 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문가들'이니 가능한 것이리라.) 솔직히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이 도를 지나친 감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MBC 반대 운동과 촛불집회 역시 마찬가지 감이 없지 않다. 그야말로 <그것이 알고 싶다>나 <피디수첩>에서 무슨 사이비종교나 대형교회의 비리를 파헤치고 나서, 거기 신자들이 떼로 몰려와 항의하는 소동과 다를 게 뭐겠는가? 황우석이 무슨 사이비종교도 아닌데 말이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너는 가슴도 없냐?"고 비난을 받을 때마다, "나는 머리로 생각하지, 가슴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대꾸했다던 진중권의 말이 요즘 들어 새삼 명언이라고 느껴진다. 황우석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에도, 황우석 논란이 비등하는 때에도, "머리로 생각한" 사람은 그야말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들 황우석을 "너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그렇기 때문에 황우석을 "너무 쉽게" 우상화했다. 맞는 말이다. 황우석은 지금 누가 보아도 "우상숭배" 당하고 있다.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는 가수나 배우를 쫓아다니는 빠순이들만 욕할 게 아니다. 이쯤 되면 전 국민이 황우석 빠순이, 빠돌이들이 된 상황이니, 욕을 먹어도 싸다. 그야말로 "황우석을 욕하는 사람은 모두 우리의 적"이라는 파시즘적 논리다. 그야말로 홍위병적 발상이다. (홍위병이라는 말, 이문열이 유행시켜서 좌파 쪽에선 이 말을 무지 싫어하는데, 솔직히 이문열이 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쓸만한 비유이긴 하다. 즉 그야말로 "우리의 적에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곧 우리의 적"이라든가, "모택동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적"이라는 식의 단순논리야말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의 전매특허였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시민운동" 등에서 주로 사용했던 "항의전화"나 "촛불집회" 등의 수단이 이러한 "우상숭배식 논리"와 맞닥트리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파급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놀랐다. 아직 진위 여부도 확실히 가려지지 않은 채에서 이렇게 큰 여론몰이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정답"을 갖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황우석이 자신들의 우성이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과학자이니 결코 "틀릴 수가 없다"고 낙관하는 것일까?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믿는 것은 반드시 맞고, 내가 믿는 것에 남이 이의를 제기하면 결코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지나친 발상은 아닐까?

그나저나,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솔직히 이젠 좀 지겨워질 때도 되었다. 황우석 측은 이미 난자매매 건으로 인해 명성이 크게 실추된 상황이고, MBC 역시 지나치게 성급하게 군 까닭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니, 양쪽 모두 앞으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터이다. 과연 황우석의 연구는 엉터리였을까? 여기서 문득 이전에도 몇 번인가 한국 과학자들이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고 성급히 발표했다가, 머지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서 개망신한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내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건 이른바 "상온 핵반응" 실험인가를 서울대에서 사상 최초로 성공했다는 뉴스였다.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곧 밝혀졌지만.) 그러니 황우석의 실험에 어떤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의혹은 하루속히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황우석의 지나친 언론플레이로 인해 그에 대해 약간의 반감과 의혹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언젠가 민노당의 국정감사 자료 제출에 그가 발끈하며 "민노당 때문에 연구를 할 수 없다"고 발언한 걸 보고 "과연 이 사람이 과학자 맞긴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민노당 지지자도 아니지만, 글쎄, 지금 하는 연구를 민노당에서 중단시킨 것도 아니고, 자료를 제출하며 의혹을 제기하는 것뿐인데, 어째서 거기서 그런 발언이 나와야 하는가? 과학자의 입에서 나오기엔 어울리지 않은 지극히 "정치적"인 발언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도 황우석 본인은 여기저기 행사에 얼굴을 들이밀며, 심지어 무슨 복제소로 만든 설렁탕을 배식해주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연구"보다는 이런저런 "이벤트"로 더 잘 나가는 과학자에겐 좀 어울리지 않은 발언이 아닌가.

물론 MBC가 틀렸을 수도 있다. 즉 황우석은 아인슈타인 못지 않은 훌륭한 과학자이고,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눈이 멀고 마음이 못되어서 그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깎아내리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MBC는 그야말로 가슴을 치며 반성해야 마지않을 것이다. 나 역시 잠시나마 그를 의혹의 눈초리로 본 것을 겸하하게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의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면 어째서 황우석의 태도가 그토록 불분명했는지, 그리고 실제로 난자 채취 등에 있어서 그야말로 "엄벙덤벙"하게 넘어가는 헛점이 왜 그리 많았는지 하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만약 이 사건이 별 것 아닌 일로,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황우석은 오히려 MBC나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일로 인해 이후 이와 비슷한 실험이나 연구가 있을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구원의 난자 기증이며, 그중 한 사람이 변심을 해서 방송국에 제보를 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어쩌면 한국 특유의 교수와 학생, 혹은 연구원 간의 불평등한 위계질서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가 난자 하나 달라고 하면, 누가 감히 거절하겠는가? 교수가 입 다물라고 하면, 누가 감히 싫다고 하겠는가? 아직까지도 전근대적인 권위의식이 판치는 캠퍼스나 연구소에서, 이런 비리와 비윤리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러니 황우석의 연구가 정말 유효하고 위대한 것으로 판명나더라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구자나 국민 모두가 좀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즉 국익도 좋고 공익도 좋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연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도 아니고, 국익을 위해 언론은 입 다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연구나 국익의 와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자는 말이다. 요즘은 뭐든지 "근대 논의"가 유행인데, 그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근대화"는 각 사람의 "정신의 근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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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10만명 돌파 이벤트입니다(조금 수정함)

 

 

 

 

이제 곧, 제 방문객 숫자가 10만명을 돌파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 알라딘 서재질을 한 거라고 말하는 저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여러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이벤트, 그것도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벤트로

최근에 모은 적립금을 풀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제가 현재 일주일째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렵죠?

힌트를 드리면 제목은 한글이 다섯글자고

두권짜리입니다.

그리고 외국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그래도 어렵죠? 맞추는 게 말도 안되죠?^^ 그래도 전 정답이 많을까봐 걱정입니다. 여러분이 또 한 추리 하잖습니까?

 

정답이 세분을 넘을 땐 그분들을 대상으로 추가 문제를 내겠습니다.

 

다행히 정답이 없을 경우엔 한글자라도 많이 포함된 분을 1등으로 꼽겠습니다. 맞춘 글자수가 같을 때는 앞에 있는 글자를 맞춘 분이 당첨, 그것도 똑같을 경우엔 남자보단 여자, 같은 여자분일 때는 나이가 많은 분을 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예시) 제가 읽는 책의 제목이 ‘헬리코박터’라고 한다면

아영엄마님: ‘수박이좋아’--> ‘박’ 한글자

깍두기님: ‘돼지코 서민’--> 역시 ‘코’ 한글자.

네무코님: ‘ 왕 헬리콥터’--> ‘헬리’ 두글자.

물만두님: ‘코주부 열전’--> ‘코’ 한글자


이 경우 네무코님 1등이고 ‘코’가 ‘박’보다 앞에 있으니까 아영엄마님 탈락, ‘코’를 맞춘 물만두님과 깍두기님 중 연세가 많으신 깍두기님이 2등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죠?


응모기한은 다음주 월요일(14일) 자정까지 하겠구요, 정답은 서재 주인보기로 응모해 주십

 

시오. 일인당 기회는 한번이지만, 발표 전까지는 수정 하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쓴 걸 그분 답으로 하겠습니다.


상품내역: 

1등은 4만원 상당의 책.

 

2등은 3만원 상당의 책을 드리겠습니다.


제 서재를 사랑해 주신 것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마태우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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