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마다 듣는 수업을 마치고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다음에 간다면 평일에 갈 것 같다). 5월에 진행되었던 예매에 참여하지 못해서(그런 기간 제한이 있는지 몰랐다) 줄을 서서 현장 티켓을 샀다. 줄이 길었지만 표를 판매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줄이 금방 줄어들었다. 티켓 가격은 6000원이었고, 표에는 3000원 책 할인 쿠폰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출판사는 '현암사'와 '아포토스'(아마도 그렇다)였다. 현암사는 1945년 설립되었다가 1951년 회사명을 바꾼 아주 오래된 출판사이고, 아침달은 몇 년 전 생긴 신생출판사인데 시집을 많이 발간한다고 자주 언급됐던 것이 기억이 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현암사의 북디자인이 뭔가 다른 출판사보다 한 차원 높아 보였다. 현암사에서 메모한 책은 다음과 같다. 현암사에서 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책은 마지막에 샀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진행되는 이 글 마지막에 나온다.

 

1. 현암사

 

-신모래 <나는 무척 이야기하고 싶어요>(현암사)

 

-로이스 W. 배너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현암사)

 

 

-요슈타인 가아더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현암사) : 마케터로 보이는 직원분이 내 옆에 있던 손님에게 열렬히 추천해주는 걸 엿들은 책이다. 


2. 착각

 

  현암사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스가 아침달 출판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부스가 붙어 있었거나 출판사들이 너무 많아서 착각했던 것 같다. 도서전 글을 쓴 지 5일이 지난 6월 28일 신문 서평란을 보다가 우성준의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을 발견했다. 도서전에서 선공개한 책이라 검색해도 며칠 간 나오지 않았다. 이 소설 옆에 놓여있던 책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아포토스 출판사라고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 책들도 도서전에서 선공개했던 것일까? 여러 출판사들이 모여 있던 부스였을까? 도서전 참여 출판사 목록에 아포토스 출판사가 없는 걸 보면, 그 매대는 여러 소규모 출판사가 모여 있던 곳이거나, 아침달 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에 내준 장소라고 추측해본다. 한편, 아토포스(atopos;άτοπος)는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라고 한다. 뭔가 내가 착각하고 있는 상황과 닮아 있다. 혼잡했던 도서전에서 그 부스는 내게 아토포스로 남아 있다.

 

-우성준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아토포스) : 이 책 옆에 놓여 있던 에세이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부스의 인구밀도가 높기도 했고, 둘러볼 곳도 많아서 이 책 출판사로 검색하면 나오리라 보고 지나쳤는데, 도서전 며칠후에나 이 책이 공개됐고, 다른 책들도 아직 찾지 못했다. 

 

3. 아시아 독립출판 부스

 

  아시아 독립출판 부스는 전시 후반부에 있었고 다리가 아파서 자세히 보지는 살펴 못했다. 독립출판 부스는 작은 매대 형식으로 전시했는데, 그 앞의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아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이 외에도 전시 후반부 노르딕 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책들을 소개한 부스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 최유수 <사랑의 몽타주> (디자인 이음)

 

 -김은비 <스친 것들에 대한 기록물>(디자인 이음)

 

-강민선 <상호대차>(이후진프레스) : 저자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앨리슨 벡델 <펀홈>(움직씨) : 이 책을 독립출판 부스에서 봤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맞을 것이다. 이 책의 후속작이 몇 달 전에 나왔다.

 

-쥘 베른 <녹색광선>(frame/page) : 이 책은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녹색광선>을 보고 검색했던 적이 있는데,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는 건 몰랐다.

 

-Eden Barrena <Promise of Blooming>

 

-Hai-Hsin Huang <There is No Future> : 제목이 인상적이다.


-Yuri Hsegwa <Since I First Met You>

 

4. 국제관

  국제관은 정말 스치듯 살펴서 발견한 책은 한 권뿐이다. 두 권이긴 한데 한 권은 독일어 서적이라 읽을 수 없다. 전시를 본 건 독립출판 부스가 먼저였는데, 발견한 책이 더 적어서 국제관을 나중에 적는다.

  헝가리관에선 헝가리 전통복장을 입은 헝가리 사람들과 아이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항의 멜랑콜리>(알마) : 제발트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었다.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 IRENE DISCHE <SCHWARZ UND WEISS> : 이 책은 독일(기억상으론 그렇다)에서 북디자인상을 탄 책이라는데 표지가 정말 좋았다.

 

5. 기타 책들 : 이 중에는 신문 서평 등에서 본 책도 있었지만 메모해두었다.

 

킴벌리 아르캉, 메건 바츠케 <단위 세상을 보는 13가지 방법>

P.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김진관 <홀로서기 수업>

알렉스 벨로스, 에드먼드 해리스 <수학으로 만나는 세계>

페르닐라 스탈펠트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까?>

남영신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


박홍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 이 책의 부제가 인상적이었다(부제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부제는 '노동자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나키 유토피아'

 


6. 책 구입

  나가기 전 현암사 부스에 다시 들러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첫 문장들을 하나 하나 읽어봤다. 그중에서 <춘분 지나고까지>의 첫 문장이 가장 좋았다. "게이타로는 얼마 전부터 해온 별 성과도 없는 취직 활동과 그 분주함이 다소 지겨워졌다." 얼마 전 한 면접에서 내가 몇 개의 회사에서 떨어졌다고 말하자, 한 면접관이 'ㅇㅇ씨가 입사를 거부한 것 아니에요?'(기분 나쁘지 않았다. 과장하자면, 그는 진실을 말해주는 현자 같았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진로를 바꿨다.

  원래 <마음>이나 <그후>를 살까 했는데, 도서전에서 새로 알게 된 책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춘분 지나고까지>를 구입했다. 책과 함께 부채와 마그네틱, 엽서 등을 받았다.

 

-나쓰메 소세키 <춘분 지나고까지>(현암사)

 

7. 대담, 문학 자판기, 성심당

  책을 사고 나갈까 했는데, 전시 후반부를 너무 대충 본 것 같아서 전시장 끝에 뭐가 있는지 보러 갔다. 그곳에서 대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담 후반부 15분 정도를 들었다. 내가 들어간 때는 유진목 시인이 낭독을 마치고 시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임솔아 시인이 낭독을 했고 시에 대해 설명했다. 나머지 두 분은 문학평론가 한 분과 시인 한 분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찾아보니 안희연 시인, 아마도 강지희 평론가). 임솔아 시인은 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유진목 시인은 <젠더 허물기>의 1장 '나 자신을 잃고'의 일부를 낭독했다.

 

-유진목 <식물원>(아침달)

 

  성심당 빵을 먹어보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집으로 나를 초대해준 분들에게 전하려고, 홍차빵과 파이만주를 하나씩 샀다. 성심당에서는 책 몇 권을 출판했다고 한다. 

  문학 자판기에서 짧은 글귀, 긴 글귀 하나씩 뽑았다. 그 전에 본 자판기는 줄이 너무 길어서 못 뽑고 여기엔 줄이 없어서 바로 뽑았다. 아마도 어린이용 글이어서 줄이 없는 것 같았다.

  수많은 책 중에 내가 메모한 책은 아주 적었다.  

  지하철을 타고 지난 몇주간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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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WORD POWER made easy :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고급편 WORD POWER made easy
노먼 루이스 & 윌프레드 펑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윌북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출판사에서 원래 제목을 바꿨습니다. 고급편이 아니라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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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영국 사상가 마크 피셔는 모두 50살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둘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고학력 백인 남성이다.). 그들은 왜 자살했을까? 표면적으로는 둘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 그들 몸 안의 생물학적, 화학적 병인이 그들을 자살로 이끌었을까? 두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이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집요하게 후기 현대사회의 병폐들을 적어놓은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자본화 되어 돈을 위해 총동원되는 세계가 그들에게 계속 경보음을 울리고 머리를 두들겼던 것 같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에서 대학의 공장식 문예창작 수업에서 생산되어 맥도널드화된 문학을 지칭하는 맥스토리McStory와 맥폼McPoem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마크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연구의 실질적 내용보다 숫자로 표기되는 평가 지표 위주로 교육자를 평가하여 대학을 망가뜨리는 신자유주의 감사 시스템에 종속된 대학을 비판한다. 문학(소설가 월리스)과 학문(학자이자 교육자 피셔)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순수하게만 남을 수 없고 시대 상황에 민감히 영향을 받는다. 사회역학자 김승섭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모두 물속의 물고기라는 비유를 제시하는데, 오염된 물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병들지만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9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



  강박증을 다룬 책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저자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과대망상자와 이상행동자를 소개한다. 이 책에 관심이 간 이유는 멈출 수 없는 습관(손 물어뜯기)을 가진 내가 왜 멈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피부 뜯기’를 강박장애 증상의 하나로 진단한다. 한편, 마크 피셔에 따르면 꽤 높은 비율의 청소년과 아동이 겪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하이퍼 미디어 소비문화의 엔터테인먼트-통제 회로에 몰입한 결과”다. 강박증도 마찬가지여서 “자본의 분쇄기” 안에 들어간 인간이 신체의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강박증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2017년 청소년 우울경험률은 27.1%이다. 청소년들은 과도한 불평등과 사회안전망의 부족이 초래하는 학업 경쟁에 더해서 사용자들의 중독 증상과 함께 성장하는 디지털 기업들이 마련한 미디어 환경(끝없는 재접속을 요구하는 공간) 속에서 신체의 한계점에 내몰린다. 강박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제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5141100009. 연합뉴스, "아이들 성적경쟁 내모는 것은 문화 차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자본주의 리얼리즘』과 함께 올해 초 가장 강렬한 독서경험을 선사한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를 조심스럽게 이어간다. ‘아름다운 대상을 마주친 인간은 의식의 균형에 도달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녀의 논의는 학문적 논의에서 터부시되는 아름다움을 섬세한 글쓰기를 통해 옹호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존재의 예를 들 때 되도록이면 사람의 아름다움은 언급하지 않는다. 플라톤, 단테 등의 고전작가들의 논의를 빌릴 때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연의 아름다움(야자나무의 아름다움)을 예로 든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름다운 사람들은 광고 산업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사람의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볼 때 비난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다룬 또 다른 책 『매력 자본』의 저자 캐서린 하킴은 일레인 스캐리가 가급적 조심스레 옹호하려 했던 아름다움을 ‘돈’과 연결시키면서 위악적으로 느껴질 만큼 위험하게 논의를 진행한다. 캐서린 하킴의 주장은 ‘아름다운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남성에 비해 매력 자본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매력 자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킴에 따르면 여기에는 성매매도 포함된다)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얕은 지식으로나마 종합해보면, 인간이 조심스럽게나마 옹호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일레인 스캐리)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디스토피아(마크 피셔)를 만날 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 ‘매력 자본’(캐서린 하킴)이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속 어린이들이 고단한 석탄 노동을 이어가는 모습(무거움과 고단함)과 유튜버로 활동하여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영상을 유통시키는 오늘날 어린이의 모습(가벼움과 매끄러움)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현재 아동 노동은 제3세계로 '외주화'되었다.).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피지배자들은 알게 모르게 점점 더 자본과 자신을 동일시해왔다. 불만은 연대보다는 소비를 통해 해결된다.



  미셸 우엘벡은 경제에서 사랑에까지 투쟁 영역이 확장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감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미셸 우엘벡과 캐서린의 하킴의 논의는 여러 가지로 닮아 있지만 커다란 차이점도 있다. 캐서린 하킴은 근대적 개인주의가 촉발한 ‘매력자본’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보단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하지 말고 매력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권유한다. 미셸 우엘벡의 인물들에게 매력자본을 이용해 행복을 찾는 것은 결국엔 불가능하며, 오히려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사랑과 관련이 있지만 견고한 갑옷을 두르고 있는 근대적 개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없다. 현대인들은 연약함을 드러내기보다 무수한 장점들로 꿰맨 갑옷으로 연약함을 감춘다. 쾌락과 돈, 젊음을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우엘벡 소설의 현대적 개인들의 끝은 노화와 죽음, 파멸이다. 우엘벡의 인물들이 자유주의 휴머니즘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인간은 트랜스 휴머니즘(과학을 통한 영생불멸)을 실현하게 된다. 『소립자』와 『어느 섬의 가능성』의 트랜스 휴먼들은 인간을 벌레 보듯이 경멸한다. 우엘벡이 풍자적으로 제시하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귀결은 인간성의 부정-극복(트랜스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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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 부조리한 사회에서 생존한다는 것
폴 굿맨 지음, 한미선 옮김, 수전 손택 추천사, 케이시 넬슨 블레이크 해제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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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무의미한 역할놀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 겁주는 사회, 사회 속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청년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은 현대성 자체의 문제 때문일까 현대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일까? 사회비평가 폴 굿맨은 무기력한 청년들의 방황과 일탈의 책임을 현대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여 어중간한 사회를 만든 바보 어른들에게 돌린다.

 

작가는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세대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담았지만 이 책이 비판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1854년 출판된 <월든>에도 담겨있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나타난다. 직장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퇴사하는 청년들과 어른들이 부재하는 사회에서 패거리를 이뤄 또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학생들의 이야기는 정확히 폴 굿맨이 분석한 내용들이다. 어른들이 직급에 따른 역할놀이와 쥐 경주를 끝내고 직장에서 사회로 돌아와야 패거리를 이룬 아이들 또한 두목과 부하의 역할 놀이를 멈출 수 있다.

 

폴 굿맨은 소로와 같이 이 모든 문제들을 만든 도시로부터 벗어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는 어린아이가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장소이고 청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다. 어중간한 수준에서 타협한 현대의 혁명은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했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상태에서 끝났다. 혁명적이고 현대적인 전통을 완성해야 공동체가 부재하는 사회에서 젊은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젊은이는 태생적으로 이상주의자여서 무언가 잘못된 사회에는 제대로 합류하지 않고 낙오자가 되거나 패배감에 젖어 역할놀이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낙오자와 월급을 위해 역할을 수행하는 젊은이 모두에게 손해이다.

 

현대 사회는 낙오자와 직장 내 역할 수행자 모두를 먹여 살릴 만큼 풍요로운 사회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주는 만족감에 안주해도 될까? 폴 굿맨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치 없는 삶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는 돈을 위해 시스템 안의 역할 수행자가 되기로 타협한다. 그 대가는 영혼을 파는 것이다. 폴 굿맨은 보수주의자로서 진짜로 살아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구축해야 하는 자유와 문명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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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The Sense of an Ending (Paperback)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작
Barnes, Julian / Random House Export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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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리언 반스는 소설의 제목 The Sense of an Ending을 동명의 픽션 이론서에서 빌려왔다. 해당 비평서는 프랭크 커모드가 쓴 책이고 1965년 이뤄진 강연을 바탕으로 쓰여 1967년 초판이 나왔고 비교적 최근인 2000년에 수정판이 출간됐다. 책은 ‘peripeteia’(급격한 반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등장하는 개념)을 다룬다. 물론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도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해서 프랭크 커모드의 책을 읽고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마존에서 책 소개만 읽었는데 책의 키워드는 종말의 파국과 위기’, ‘종말에 다다른 사람의 영혼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노년에 다다른 화자 토니 웹스터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보면 노년은 결말부이다. 토니 웹스터의 회상은 결말부에 제시되는 충격적인 반전에 의해 시작되는 걸로 보인다. 김연수 소설가의 말을 빌리면 삶이라는 이야기는 계속 퇴고하는 소설처럼 끊임없이 다시 쓸 수 있다. 노년의 충격적인 사건은 화자가 자기 삶을 계속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의 독자는 자기 삶의 끝을 미리 짐작해보고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혹시 숨은 반전이 드러나서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나는 이 소설에 반전이 담겨있다는 점과 소설이 노년 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명의 비평이론서가 비극 이론서인 시학‘peripeteia’ 개념을 다뤘다는 점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반전)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노년)을 떠올렸다. 대신 다시 불완전하게도 급하게 확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오이디푸스왕뿐이어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다시 읽어보지 못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대해 언급할 게 별로 없어서 미리 말하자면, 노년의 오이디푸스는 죽음을 앞두고 평화(일종의 내려놓음)를 얻지만 토니 웹스터는 그렇지 못하다. 그는 반전 앞에서 당황스러워한다.

토니가 베로니카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정말 못 알아먹네!(You don't get it!)”이다. 토니는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고 수사관이 된 오이디푸스처럼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과 관련한 진실을 추적하지만 계속 헛다리만 짚는다. 베로니카는 뭣도 모르고 무례하기만 한 토니 앞에서 탄식한다. 나는 토니의 눈치 없음을 사회에 합류했다가 은퇴한 평범한 영국 남성의 특징으로만 읽었었는데 오이디푸스왕을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그의 죄를 알려줘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예언자를 비난하기만 한다. 또한,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진실을 알게 된 순간까지도 자기 자신의 진실을 모른 척하며 사건의 목격자들에게서 확인하려 한다. 토니와 오이디푸스 모두 합리적인 수사관을 자처하며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비합리적인 반전 앞에서 파국을 맞는다. 토니가 부러워하는 철학도(哲學徒) 에이드리언의 명료성(Clarity)은 현실 속에서 불가능하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명료성을 반박한 것처럼.

  소설에는 오이디푸스와 토니의 합리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 편의 삽화가 실려있다. 토니와 전처 마가렛의 결혼 생활 마지막 즈음 집 앞의 나무가 말썽을 일으킨다. 나무의 뿌리 때문에 집에 균열이 생겨 보험회사에서 나무를 자르라고 권유한 것이다. 나무 위에서는 비둘기가 똥을 싸서 자동차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토니는 보험회사의 관료들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조경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짜증을 부르는 수법을 쓴다. 자신이 상대하는 적인 보험회사 관료의 언어를 흉내 내는 것이다. 문의 편지에 회사 측에서 답장을 못 하면 앞서 보냈던 몇 번째 편지에서 이러저러한 사항을 찾아보라라고 다시 문의하는 식이다. 6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토니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예술가가 되지는 못하고 예술행정기관에서 일했다. 토니는 보험회사에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베로니카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오이디푸스(고대)와 토니(현대)의 차이는 이것이다. 현대인은 '명예'를 잃어버렸다. 현대 관료주의의 합리성은 명예를 잃어버린 자의 합리성, 회계사의 합리성이다. 삶은 성장하지 않고 숫자만 더해간다. 명예를 잃어버린 인간이 추구할 건 자기 보존과 안정성(안정적인 직장)뿐이다. 오이디푸스는 합리적 추적이 부른 파국 앞에서 곧바로 자기 처벌에 돌입하지만, 토니는 마음에 충격을 받고서도 삶을 변함없이 이어 나간다. 소설을 읽으면 느껴지겠지만 명예를 잃어버린 현대인 토니의 본모습은 구차한 '찌질함'이다. 그는 보험회사에도, 베로니카에게도 질척거린다. (삶의 구차함을 그대로 적는 게 산문의 특징이기도 하다.)

  명예라는 말로 삶을 이어가는 토니와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차이점도 설명할 수 있다. 명예를 잃어버린 전형적인 현대인 토니는 현대적 삶의 허위를 잊지 않고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삶을 기억하며 작은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에이드리언은 부조리한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다. 하지만 작가의 질문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시대의 소음의 주인공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정부에 협력했다. ? 예술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쇼스타코비치의 타협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쇼스타코비치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예술을 위해 굴욕적으로 타협한 그의 복잡한 심경을 생각해봐야 한다. 토니 웹스터 또한 한 명의 아이를 잉태시키고 무책임하게 자살한 에이드리언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한다. 과연 에이드리언이 종이에 적은 철학적 명료성(Clarity)과 그에 따른 자살,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기는 할까? 현실 속에 잉태한 아들의 삶이 남았는데도? 논리적인 철학 연구가 끝나도 복잡한 삶은 끝내 복잡하게 남아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명예가 없는 삶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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