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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 행위성의 예술
C. 티 응우옌 지음, 이동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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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게임은 게임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을 미리 읽은 사람으로서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 이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모니터로 하는 게임을 다루겠구나,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보드게임을 가장 많이 다룬다. 비디오게임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체스, 클라이밍이나 농구 같은 스포츠도 다룬다.


  이 모든 게 게임인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에는 지켜야하는 선(규칙)이 있다. 그 선을 넘지 않고 행동해야한다. 게임 참여자는 게임이 가리키는 특정한 '행위'를 탐험한다. 여러 가지 게임들은 그 게임만의 독특한 규칙으로 게임 참여자에게 여러가지 행위성을 체험해보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은 '행위성의 라이브러리(저장소)'이다. 저자는 각 게임의 독특한 행위성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게임 예시로 설명한다. ('행위성의 라이브러리'는 '사회성의 라이브러리'라는 개념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책에 나온 게임 중 관심이 갔던 보드게임:


  수화(Sign) by Kathryn Hymes, Hakan Seyalioglu // p.10

  모던아트(1992) by Reiner Knizia // p.182

  루트(Root: A Game  of Woodland Might and Right) // p.277


  관심이 갔던 게임들을 직접 해보고 어떤 행위성을 경험할 수 있는지 적어보았다면 더 좋은 독후감이 됐겠다. 각 게임 옆에 적어놓은 페이지를 읽어보면 저자가 직접 게임을 해보고 어떤 행위성이 경험했는지 알려준다. '수화'라는 게임은 책 전반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서 꼭 해보고 싶다.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게임이 아닌가 싶다.


  여러가지 게임으로 여러가지 행위성에 참여해보려면 한 가지 게임에 중독적으로 빠져드는 게 좋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바둑이나 체스 같이 끝없이 수준이 올라가는 게임에 길게 빠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게임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이 책에서도 중독성 게임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중간에 짧게 한번, 그리고 맨 마지막 장 즈음에서 길게 다루어진다.


  중독성 게임은 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나타난다. 저자는 이러한 게임 디자인에 반대한다. 중독성 온라인 게임은 '디자인 트랩'(책 제목. 이 책에서 언급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이 나온다)을 게임 속에 적용한다. 게임 디자인으로 유저에게 덫을 놓는다. 이건 심리적 덫이기도 하다. 


  한국 온라인 게임이 세계에서 가장 잘 구현하는 특징이다. '유희적 루프(ludic loop)'(p.147)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출석 보상 시스템(매일 게임에 접속하면 보상을 준다. 매일 게임 속에서 어떤 퀘스트를 깨거나 몇마리의 몬스터를 잡으면 보상을 준다), 확률형 도박 시스템(유저는 과금을 해서 도박을 하는데, 작은 확률로 아이템이 업그레이드 된다)은 주로 온라인 RPG 게임에 적용된다. 

  

  RPG 게임이 아니더라도, 가령 온라인 FPS 게임이더라도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랭크 시스템'이 적용된다. 유저는 그 게임 자체가 중독적이지 않고 심지어 미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더라도 '점수' 올리기라는 '가치 명료성'이 뚜렷한 세계에 중독될 수 있다. 책의 중요 개념으로 표현하면, '분투형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이더라도 랭크 시스템은 '성취형 플레이'를 강제한다. 결말이 없는 온라인 게임에서는 과금 유도를 위한 디자인 트랩이 있다. 중독성 게임은 유저의 '행위성'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세상의 '게임화' 또한 저자가 경계하는 부분이다. 이 내용은 책 마지막에 나오는데 지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말들이다. 가령 운동 어플리케이션이 게임적 요소를 도입했다고 해보자. 어플에서 달력이 나오고 '만보' 이상 걷거나 어떤 운동 세트를 완료하면 보상을 얻는다. 이게 운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운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인간적 요소들을 놓칠 지도 모른다. 회사의 성과 시스템, 학교의 학점 시스템, 수능 제도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의 참여자이기에 당연하게도) 학점이나 수능 점수를 높이느라 점수 받기 쉬운 과목을 듣고 교육적 가치를 놓친다.


  이러한 게임의 부정적 요소들이 책에서 길게 다루어 지지는 않는다. 책에서는 다양한 게임을 예시로 들면서 해당 게임이 어떤 행위성을 드러내는지 주목한다.


 저자는 모더니즘 예술이 해당 예술의 형식적 가치에 주목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을 옹호한다. 가령 게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비평하거나 게임이 세계를 얼마나 잘 '재현'(예술 비평에서 리얼리즘이 떠오르는) 하는지에 주목하는 게임 비평의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게임 자체의 형식적 특징은 아니라고, 다양한 게임들이 제시하는 행위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그게 아주 설득력이 있다. 이야기나 세계의 재현은 다른 예술 형식들이 더 잘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살펴본 가장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하나는 한겨레에 연재되는 음식 만화에서 작가가 가족들과 다양한 음식점을 찾는 모습. 다른 하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배우자와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 게임의 경험은 굉장하다. 강렬하고 흡인력 있으며 좌절을 맛보게 하지만 또 놀랍도록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내면의 특별한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목표에 일시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바로 이 몰입이 게임의 특정 규칙들과 결합되면 아주 진한 실천적 경험에 도달한다. 「수화」를 플레이하는 것은 곧 언어를 발명하고 의미를 수립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완전히 빠져보는 것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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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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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모신 하미드가 파키스탄 출신이어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는 제목을 읽으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테러를 저지를지 말지 주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소설이 처음에 다루는 근본주의자는 이슬람교와 상관이 없다. 찬게즈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프리스턴 대학의 모든 수업에서 A학점 이상만 받고 졸업한 수재이다. 그는 뉴욕의 언더우드 샘슨이라는 감정회사에 분석가로 취업한다.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언더우드 샘슨의 제1원칙이다. 근본적인 것은 숫자로 표현된다. 분석가 찬게즈는 컨설팅을 요청한 회사의 자잘한 것들, “지방질을 제거해서 건전한 재정상태를 도모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정리하거나 다른 회사에 외주를 준다. 찬게즈와 동료들은 미국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필리핀, 칠레 등 다양한 국가에 있는 회사를 분석하고 컨설팅해준다.


전무이사 짐은 채용 면접 자리에서 찬게즈의 굶주린 모습에 좋은 점수를 줘 채용을 결정한다. 찬게즈는 왜 굶주렸는가? 파키스탄에 있는 찬게즈의 집안은 대대로 전문직에 종사한 괜찮은 집안이었다. 하지만 전문직 종사자의 수입이 과거와 달리 시원찮아 졌고 과거의 영광은 상인 계급에 내줬다. 찬게즈는 아직 가난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부자도 아닌 문턱에 걸쳐 있는 형편이다. 언더우드 샘슨은 신입사원에게 8만 달러의 연봉을 약속한다. 전무이사 짐은 자신도 젊은 시절 가난을 겪었기에 찬게즈의 굶주림을 알아본다. 문턱 이쪽에 있다가 저쪽으로 넘어간다는 비유는 소설 속 다른 장면들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찬게즈는 언더우드 샘슨에 채용이 확정된 후 프리스턴 동창들과 떠난 여행에서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에리카는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찬게즈에게 마음을 열지만 몇 년 전에 죽은 첫사랑 크리스를 잊지 못한다. 크리스는 에리카가 내면에서 만날 수 있는 과거이고, 찬게즈는 에리카가 바깥에서 마주치는 현재이다. 찬게즈에게 상류층 백인 에리카와의 사랑은 그의 가치를 보증해준다. 언더우드 샘슨의 신입사원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기에 별문제가 없었다면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에리카와의 관계도 잘 진전되었을지도 모른다. 찬게즈는 필리핀의 음반회사를 평가하러 떠난 출장지에서 9.11 테러 소식을 듣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과거로 회귀한다. 귀국길에 오른 찬게즈는 외국인 심사대에서 추가 심사를 받아야 해서 동료들과 따로 귀가한다. 찬게즈는 그동안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져도 언더우드 샘슨의 분석가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미국인처럼 행동해왔는데 9.11 테러 이후엔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에 묶이게 된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은 코즈모폴리턴적인 분위기가 사라졌고, 미국과 이슬람은 다른 부족이 되었다. 미군의 중동 주둔 이후 파키스탄은 인도와 긴장 관계가 심해진다. 찬게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파키스탄에 일시 귀국한다. 찬게즈는 오랜만에 찾은 집안이 낙후되어 있다고 느낀 자신이 미국인의 시선으로 집안을 둘러보고 있음에 놀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귀국 중에 기른 수염을 미국에 돌아가서도 깎지 않는다. 회사 동료들은 찬게즈의 수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수군거린다.


에리카가 찬게즈 앞에서도 크리스를 잊지 못하자, 찬게즈는 자신이 크리스라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미국인처럼 행동하며 회사 생활을 이어온 것처럼, 에리카와의 관계에서도 중심을 잃고 다른 사람인 척한 것이다. 미국 사회가 과거로 회귀한 것처럼, 에리카도 내면의 크리스와 더 많이 대화를 나누며 과거로 돌아간다. 에리카는 크리스의 죽음 이후 겪은 정신질환이 9.11 테러 이후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 후 그녀는 실종된다.


찬게즈는 칠레의 출판사를 분석하러 간 출장지에서 자신이 더 이상 분석가 업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미국인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 그는 회사를 그만둔다. “근대적인 예리체리로 사는 걸 멈춘다. 숫자와 이익만 보지 않도록 베일을 걷고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찬게즈는 이 모든 이야기를 고향의 식당에서 만난 한 미국인에게 들려준다. “진짜 군인처럼 말하는 이 미국인에겐 매 시각 전화가 온다. 무슨 전화일까? 식당 안 수염을 기른 낯선 남자는 왜 미국인을 계속 경계하는가? 미국인이 식당의 웨이터를 위협적이라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 찬게즈는 왜 오늘이 조금은 중요한 밤이라고 말할까? 찬게즈가 말하는 곧 벌어질 가장 살벌한 일은 무엇일까? 숙소로 돌아가는 미국인와 찬게즈를 따라오는 듯한 저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는 걸까? 식당의 웨이터는 왜 미국인의 숙소 앞까지 따라온 걸까? 이 모든 오싹한신호는 찬게즈가 또 다른 근본주의자가 됐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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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지음 / 개마고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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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사태처럼 유한책임 주식회사가 일으켰지만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비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금융과 주식회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주식회사에서 일하고 회사의 제품을 구매한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 문제나 양극화 문제도 은행과 회사가 설립된 17~8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법과 제도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신탁법은 영국 지주계급이 영지를 왕에게 빌리지 않고 직접 소유하려고 13세기부터 투쟁을 이어오다 17세기 말 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제정되었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는 신탁법에서 처음 나타난다. 영국의 귀족은 왕에게 토지를 빌려 영주 역할을 하다 사망하면 왕에게 토지를 되돌려 줘야 했다. 영국 귀족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권리를 물려주기 위해 제3자에게 땅을 양도하면서도 땅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다. 왕은 귀족이 죽어도 제3자에게 양도된 땅을 찾아올 수 없게 된다.  (고대 로마와 서구 근대의 공통점=배타적 재산권->제국주의->노예제. 차이점=서구 근대가 재산권과 계약권을 이종 교배한 점.)


저자는 17세기 영국 금세공업자들이 시작한 은행업’(2현대 금융의 기원’),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의 유한책임제도’(1주식회사의 본질’),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법 레포(환매조건부채권)’머니마켓펀드’(4‘21세기 국제금융위기의 본질’)에서도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는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저자는 또한 17세기 영국 명예혁명으로 도입된 대의제에서도 정치가들이 국민에게서 주권을 빌린 채무자이면서 주권을 독점하는 재산권자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1684차일드사에서 발행한 은행권[아직 남아 있다니 책에 사진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표지 디자인에 일러스트 형태로 활용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이나 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의 판결문, 1855년부터 도입된 회사법에 대한 당시 학술지 편집자의 의견,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 부외 금융 시스템의 모형 등을 분석하면서 현대 금융업의 본질을 추적한다. 그중에서도 2003내국세 세무청 대 레이어드 그룹 공공유한회사소송의 판결문은 주식회사의 본질을 정확히 정의한다. “[주식은] 계약권들의 다발 그 이상이다. () 이 권리들은 순수한 계약권이 아니다. 그것들은 회사의 자산에 대한 재산권은 아니지만, 회사에 대한 재산권이다.” 주식회사의 대주주는 1855~1862년에 도입된 회사법과 일련의 법원 판결(1837블라이 대 브렌트소송사건 등)로 의결권과 인사권 등 회사의 재산권을 누리면서도 문제가 생길 때는 채권형태의 주식보유자로서 책임을 면제받는다. 저자는 대주주가 책임이 적은 만큼 의결권이나 인사권 등의 권한도 내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와 금융업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근대적 인격 개념순환적 자아 관념으로 대체해야 한다(7로크의 인격-재산의 존재론’). 철학사에서 니체나 화이트헤드에 의해 극복된 근대적 인격 개념은 은행업이나 회사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더 높은 이자로 빌려줘서 수익을 얻지만 '뱅크런'으로 파산할 위험 또한 얻는다. 영국 금세공업자들은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하는 걸 막으려고 영원히 죽지 않는 안정적 채무자 국가에 돈을 빌려준다(국채 발행). 국가가 은행에 돈을 빌릴 만큼 자금이 필요했던 이유는 근대의 팽창 정책으로 전쟁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은행에 빌린 돈과 그 이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저자는 왕이 죽거나 한 세대가 지나면 기존의 채무가 사라졌던 근대 이전처럼,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근대적 채무의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6장에서 소개되는 기본자산제에서는 기본소득제사회적 지분제도와 다르게 개인이 채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어도 자산을 약탈당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유를 지키고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노동하지 않으려면 일정 정도의 자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나 경영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기본자산제를 활용하면 개인이 협동조합에 자산을 출자해 회사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회사의 직원들이 주인이 되어 회사의 대표를 뽑고 직접 책임진다면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책임지지 않는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줄 기본자산은 사회적 상속(자식 한 명 당 4억 이상 상속 금지)으로 마련된다. 저자는 플라톤의 법률이나 신라 시대의 정전제에서 기본자산제의 원형을 찾되 오늘날의 실정에 맡도록 제도를 보완해 설득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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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 부조리한 사회에서 생존한다는 것
폴 굿맨 지음, 한미선 옮김, 수전 손택 추천사, 케이시 넬슨 블레이크 해제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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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무의미한 역할놀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 겁주는 사회, 사회 속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청년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은 현대성 자체의 문제 때문일까 현대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일까? 사회비평가 폴 굿맨은 무기력한 청년들의 방황과 일탈의 책임을 현대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여 어중간한 사회를 만든 바보 어른들에게 돌린다.

 

작가는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세대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담았지만 이 책이 비판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1854년 출판된 <월든>에도 담겨있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나타난다. 직장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퇴사하는 청년들과 어른들이 부재하는 사회에서 패거리를 이뤄 또래 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학생들의 이야기는 정확히 폴 굿맨이 분석한 내용들이다. 어른들이 직급에 따른 역할놀이와 쥐 경주를 끝내고 직장에서 사회로 돌아와야 패거리를 이룬 아이들 또한 두목과 부하의 역할 놀이를 멈출 수 있다.

 

폴 굿맨은 소로와 같이 이 모든 문제들을 만든 도시로부터 벗어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는 어린아이가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장소이고 청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다. 어중간한 수준에서 타협한 현대의 혁명은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했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상태에서 끝났다. 혁명적이고 현대적인 전통을 완성해야 공동체가 부재하는 사회에서 젊은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젊은이는 태생적으로 이상주의자여서 무언가 잘못된 사회에는 제대로 합류하지 않고 낙오자가 되거나 패배감에 젖어 역할놀이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낙오자와 월급을 위해 역할을 수행하는 젊은이 모두에게 손해이다.

 

현대 사회는 낙오자와 직장 내 역할 수행자 모두를 먹여 살릴 만큼 풍요로운 사회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주는 만족감에 안주해도 될까? 폴 굿맨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가치 없는 삶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는 돈을 위해 시스템 안의 역할 수행자가 되기로 타협한다. 그 대가는 영혼을 파는 것이다. 폴 굿맨은 보수주의자로서 진짜로 살아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구축해야 하는 자유와 문명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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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The Sense of an Ending (Paperback)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작
Barnes, Julian / Random House Export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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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는 소설의 제목 The Sense of an Ending을 동명의 픽션 이론서에서 빌려왔다. 해당 비평서는 프랭크 커모드가 쓴 책이고 1965년 이뤄진 강연을 바탕으로 쓰여 1967년 초판이 나왔고 비교적 최근인 2000년에 수정판이 출간됐다. 책은 ‘peripeteia’(급격한 반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등장하는 개념)을 다룬다. 물론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도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해서 프랭크 커모드의 책을 읽고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마존에서 책 소개만 읽었는데 책의 키워드는 종말의 파국과 위기’, ‘종말에 다다른 사람의 영혼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노년에 다다른 화자 토니 웹스터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보면 노년은 결말부이다. 토니 웹스터의 회상은 결말부에 제시되는 충격적인 반전에 의해 시작되는 걸로 보인다. 김연수 소설가의 말을 빌리면 삶이라는 이야기는 계속 퇴고하는 소설처럼 끊임없이 다시 쓸 수 있다. 노년의 충격적인 사건은 화자가 자기 삶을 계속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의 독자는 자기 삶의 끝을 미리 짐작해보고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혹시 숨은 반전이 드러나서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나는 이 소설에 반전이 담겨있다는 점과 소설이 노년 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명의 비평이론서가 비극 이론서인 시학‘peripeteia’ 개념을 다뤘다는 점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반전)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노년)을 떠올렸다. 대신 다시 불완전하게도 급하게 확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오이디푸스왕뿐이어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다시 읽어보지 못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대해 언급할 게 별로 없어서 미리 말하자면, 노년의 오이디푸스는 죽음을 앞두고 평화(일종의 내려놓음)를 얻지만 토니 웹스터는 그렇지 못하다. 그는 반전 앞에서 당황스러워한다.

토니가 베로니카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정말 못 알아먹네!(You don't get it!)”이다. 토니는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고 수사관이 된 오이디푸스처럼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과 관련한 진실을 추적하지만 계속 헛다리만 짚는다. 베로니카는 뭣도 모르고 무례하기만 한 토니 앞에서 탄식한다. 나는 토니의 눈치 없음을 사회에 합류했다가 은퇴한 평범한 영국 남성의 특징으로만 읽었었는데 오이디푸스왕을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그의 죄를 알려줘도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예언자를 비난하기만 한다. 또한,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진실을 알게 된 순간까지도 자기 자신의 진실을 모른 척하며 사건의 목격자들에게서 확인하려 한다. 토니와 오이디푸스 모두 합리적인 수사관을 자처하며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비합리적인 반전 앞에서 파국을 맞는다. 토니가 부러워하는 철학도(哲學徒) 에이드리언의 명료성(Clarity)은 현실 속에서 불가능하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명료성을 반박한 것처럼.

  소설에는 오이디푸스와 토니의 합리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 편의 삽화가 실려있다. 토니와 전처 마가렛의 결혼 생활 마지막 즈음 집 앞의 나무가 말썽을 일으킨다. 나무의 뿌리 때문에 집에 균열이 생겨 보험회사에서 나무를 자르라고 권유한 것이다. 나무 위에서는 비둘기가 똥을 싸서 자동차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토니는 보험회사의 관료들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조경사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짜증을 부르는 수법을 쓴다. 자신이 상대하는 적인 보험회사 관료의 언어를 흉내 내는 것이다. 문의 편지에 회사 측에서 답장을 못 하면 앞서 보냈던 몇 번째 편지에서 이러저러한 사항을 찾아보라라고 다시 문의하는 식이다. 6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토니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예술가가 되지는 못하고 예술행정기관에서 일했다. 토니는 보험회사에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베로니카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오이디푸스(고대)와 토니(현대)의 차이는 이것이다. 현대인은 '명예'를 잃어버렸다. 현대 관료주의의 합리성은 명예를 잃어버린 자의 합리성, 회계사의 합리성이다. 삶은 성장하지 않고 숫자만 더해간다. 명예를 잃어버린 인간이 추구할 건 자기 보존과 안정성(안정적인 직장)뿐이다. 오이디푸스는 합리적 추적이 부른 파국 앞에서 곧바로 자기 처벌에 돌입하지만, 토니는 마음에 충격을 받고서도 삶을 변함없이 이어 나간다. 소설을 읽으면 느껴지겠지만 명예를 잃어버린 현대인 토니의 본모습은 구차한 '찌질함'이다. 그는 보험회사에도, 베로니카에게도 질척거린다. (삶의 구차함을 그대로 적는 게 산문의 특징이기도 하다.)

  명예라는 말로 삶을 이어가는 토니와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차이점도 설명할 수 있다. 명예를 잃어버린 전형적인 현대인 토니는 현대적 삶의 허위를 잊지 않고 자살한 에이드리언의 삶을 기억하며 작은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에이드리언은 부조리한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다. 하지만 작가의 질문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시대의 소음의 주인공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정부에 협력했다. ? 예술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쇼스타코비치의 타협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쇼스타코비치의 협력이 없었다면 그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예술을 위해 굴욕적으로 타협한 그의 복잡한 심경을 생각해봐야 한다. 토니 웹스터 또한 한 명의 아이를 잉태시키고 무책임하게 자살한 에이드리언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한다. 과연 에이드리언이 종이에 적은 철학적 명료성(Clarity)과 그에 따른 자살,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기는 할까? 현실 속에 잉태한 아들의 삶이 남았는데도? 논리적인 철학 연구가 끝나도 복잡한 삶은 끝내 복잡하게 남아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명예가 없는 삶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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