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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상황에서 무언가 잃어버리게 되고 그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인생이란 가끔 그런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씨네21 1450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인터뷰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4755



- 영화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마을회관에서 벌어지는 글램핑장 사업 설명회 시퀀스를 좋아한다. 특히 도리 유토 배우가 일갈하는 대사들이 가져다주는 울림이 있다.

하르트무트 비톰스키의 <먼지>(2007)

이시바시 에이코 음악감독 인터뷰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4756


같은 호 하스미 시게이코 평론가의 인터뷰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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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의 모양>은 인류학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읽어 보았다. 한 편 한 편의 인터뷰가 단편 소설처럼 읽힌다. 각자가 말한 '외로움의 모양'이 단편 소설 속 시적 순간처럼 기능하는 듯 했다. 그런 순간들을 읽을 때 (외로워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조금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다. 눈물 까지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의 느낌 말이다. 정말로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말한 외로움의 모양을 읽고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에서 읽고 써본 경험이 떠올랐다. 그 경험을 더 밀고 나가면 좋은 글을 쓸 습관을 들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내 외로움의 모양은 '엇갈린 화살표' 아닐까.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장은 6장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친구에게 짓궂은 말을 했다가 따돌림을 당한 경험 때문에 본인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타인 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게 모두 진심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이 그의 본심을 알고 싶었나 보다. 진짜 너를 알고 싶다고! 거부 당할까봐 좋은 사람 역할을 해보려 했는데 그게 또 진짜가 아니어서 그는 어찌할찌 혼란스러워한다. 이게 가면을 쓰고 다른 역할을 해야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과 얽히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외로움은 18세기부터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근대적 상황과 함께 시작됐다는 사실(252쪽?)과 함께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용기"(127쪽)를 내고, 먼저 작은 균열을 내서 변화를 모색해야한다(180쪽)는 저자의 조언을 기억하고 싶다.



"그림자야 너는 정녕 오늘 나한테 쏟아진 빛의 무게를 아니?" (<슬픔치약 거울크림> 79쪽)



  김혜순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이 인터뷰 책을 찾게 되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구분/없음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을 기억해두고 싶다. 이 구분이 분명 문학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독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현실을 받아 적었을 뿐인데 그게 독특한 문학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상은 본대로 적었을 뿐이라고. 식민지 상황의 독특한 현실이 그런 괴상한 글쓰기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말이었다.

  "다중적인 정체성을 갖는 것", "괴상한 것을 존중하는 것", "탈중심주의자가 되는 것"(올가 토카르추크의 말, 228쪽)

  시인이 계속 말하는 것처럼 나도 어떤 것을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감각을 잘 적어보고 싶었다.



  <아는데 모르는 나라, 일본>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일본의 기분 좋은 면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아가 아르바이트 직원도 일정 기간을 거치면 정직원이 되는 '고용 안정'"(21쪽)이라는 문장만 공책에 적었다. 한국의 이전 정권에서 많이 논란이 되었던 정책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어린 시절부터 시험보는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시험을 보지 않으면 정직원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근데 이게 정말로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다.



  로베르트 발저는 정말로 독특한 작가다. 은박지 같은 종이쪼가리에 글을 썼다는 건 이전 책에서 접해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어리석은 이야기에 나오는 알려지지 않은 지점에서 길을 잃었다" (203쪽) 어느 순간에 작가는 내용보다도 글을 쓰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그래도 좋은 말들이 많다. "모든 노력은 실현되는 것과는 무관하고, 많은 종류의 불가능성은 하나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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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에 언급된 작품들 중 일부를 정리해둔다.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끈>, <트릭>, <트러스트> (라히리가 영문 번역한 작품들)


랄라 로마노 (p. 30)

잃어버린 사랑(p.39) - 라히리가 "접목 innesto"라는 단어를 만난 책

"문을 열려고, 다르게 보려고, 나 자신을 다른 존재에 접목해보려고." (p.44)


호라티우스 <송가> (p.103)

헤밍웨이 <빗 속의 고양이> (p.104)

 

"예술의 참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 자체의 현상과 결과를 탐색하는 데 있다. ... 삶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이며 왜 지금의 우리인지에 대한 대체 버전들 사이를 기민하게 오간다." (p.106)


레퀴엠(p. 111)


이탈로 스베보(p.125) 이 작품이 언급되는 것 아니고 유일한 한국어 번역서.


코라도 알바로(p.125)

옥중수고(p.144)

톰 마세오 Niccolo Tommaseo <이탈리아어 동의어 새사전>(p.186)


이탈로 칼비노 <이탈리아 동화>(p.199)

<팔로마르> - <거북과의 대화>(p.203)


자코모 레오파르디  <잡문집>(p.196)


변신 이야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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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읽은 책 중에 내게 직접적 영향을 준 책은 세 권이다.


  1.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읽고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을 어디에서 언급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 없지만, 저자는 바둑에 대해서 소규모 전투가 모여서 큰 싸움을 이룬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철학책은 '훈고학'이 아니고 살아 있는 철학책이다. 

  이창호의 <정통 바둑>이라는 절판된 시리즈를 읽으며, 유튜브와 바둑 방송을 보고 온라인 바둑을 둬보면서 바둑을 익히고 있다. 바둑판과 바둑알도 구입했다.


2. <베르타 이슬라>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작품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발자크의 <샤베르 대령>이다. 오랫동안 실종된 사람, 만약 그가 사망 신고도 되어 있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면 그는 신원을 증명해야 한다. 이 흥미로운 상황을 다루는 <샤베르 대령>은 <베르타 이슬라>가 모티브를 가져오는 중요한 참고 자료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에서 찾는 모티브는 누군가(가령 스파이가) 자신의 신원을 감추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어떠한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질문이다. 스파이 신분을 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게, 그게 공적으로 꼭 필요한 일일 수는 있어도, 사적으로는 정당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애착 효과>의 '회피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스파이가 아니더라도) 겪는 상황이다.

  <샤베르 대령>과 다르게 <헨리 5세>는 <리처드 2세>부터 읽어야 한다. 


3.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은 올해 가장 좋았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매일 시 3편 정도 읽게 됐다. 알아들을 수 있는 시를 읽으려고 하는데 다행히도 김혜순 시인의 2000년대 전후 작품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읽는 <한 잔의 붉은 거울>은 사랑 시집이다.


4. <0원으로 사는 삶>과 관련해서 경향신문의 기사 <7만평 숲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기사를 공유하고 싶다. 

https://www.khan.co.kr/life/life-general/article/202304281600001


5. 올해 접한 인상적인 결말로 <다윈 영의 악의 기원>과 <성난 사람들 Beef>를 뽑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화해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봉합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가서 해결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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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1월 1일부터 시내버스 요금이 300원 오르면서 대중교통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인상률은 21퍼센트이다. 말이 안되는 인상률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만큼 힘이 있었다면 더 많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수도권에도 똑같이 오른다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저항할지, 그대로 관철될지 궁금하다.


  전기요금이 21퍼센트 오른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더 자원을 아껴써서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을 더 적게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다르다. 대중 교통요금이 21퍼센트 오르면 사람들이 자가용을 더 많이 몰고 다닐 것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자가용을 몰수록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대기오염도 심해진다. 대중교통은 요금과 상관 없이 같은 양의 자원을 소모한다. 사회적으로 더 적은 자원을 쓰고 대기오염도 줄이려면 대중교통 요금이 오르면 안된다. 대중요통 요금은 더 낮아져야 한다.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에 독일에서 9유로 티켓(한달 정기권)이 도입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꼭 9유로 티켓 같은 것이 도입되었으면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거나 부자증세를 하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세금을 줄이고 시민의 부담을 늘리는 이번 정부에서는 힘들다.


  시골일수록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기 힘들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하루 12대의 버스만 지난다. 한 시간에 한 대 꼴인데, 적어도 30분에 한 대는 지나야 한다. 시골 지역의 버스 이용과 관련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이 있는데 공연이 9시 이후 끝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의 막차는 공연장 근처에서 8시 40분쯤 지난다. 공연 티켓은 5천원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공연을 보려면 차를 타거나 버스가 가는 곳까지 중간 지점까지 이동해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택시비는 최근에 올라서 정확하지 않지만 만 오천원 이상이다. 이러한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글을 쓰게 되었다.


  시내버스 이용 관련해서 지엽적으로 보이지만 너무도 중요한 상황이 하나 더 있다. 지선-간선 문제이다. 나는 최근에는 가끔만 겪는 상황이지만 과거에 매일 멀리 이동해야 했을 때는 매일 겪는 일이었다. 지금 상황은 버스 하나로 줄기와 가지 모두 이동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림을 그리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텐데, 자동차 이용자들은 줄기로만 이동하지만, 버스 이용자는 가지까지 거쳐서 돌아가야 한다. 원래는 비용을 투입해서 가지로 이동할 버스를 따로 마련해야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단 이유로 시민들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 가지에는 사람이 적게 살아서 아무도 타지도 내리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가지를 없애자는 게 아니다(가지에 사는 사람들도 이동권이 있다). 그 가지를 거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난다. 속 터지는 상황이다.


* * * * *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에 대중교통을 급진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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