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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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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재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난독증 증상이 있어서 책을 자연스레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창하게 독서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독서 과정 중에 우뇌를 좀 더 많이 사용한다. 우뇌 발달은 패턴 인식이나 수학적 사고, 예술적 천재성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글자 인식에 문제를 겪는 난독증과 글자 해독은 잘하지만 어린 시절 훈련이 부족하여 독서 유창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구분해야 할 것 같다.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은 전자에 속한다. (독서 유창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모두 우뇌가 좀 더 발달하는 걸까?) 

  난독증 증상은 독서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노력의 의해 가능한 인간적인 행위임을 알려준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책 읽기가 없었다면 인류는 '발명'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독서가 인간의 문화로 정착한 지는 몇천 년밖에 안 됐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으로 독서 문화가 꽃피운 시기로 뛰어난 알파벳이 발전한 고대 그리스를 드는데, 이 시기에도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암송으로 전승되었으며 소크라테스는 문헌에 비해 구어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아니, 그는 문헌 교육을 아예 없앨 것을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정당화'가 된 '참인 명제'를 '진리'로 간주했는데, 홀로 읽는 문헌에서는 명제를 충분히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보았고, 질문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구어를 통한 철학/철학교육이 문헌 교육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너무나 짜릿한 대화를 선사하여 제자들에게 '연인'으로 기억된 소크라테스를 상기하자). 
  하지만,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설명한 아름다운 철학적 주장들을 '대화편'에서 충실히 '기록'했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서양 학문에 토대를 놓았다. 물론 문헌을 통해서. 저자에 따르면, 숙련된 독서가는 사색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정당화'를 이룰 수 있다. 숙련된 독서가는 빠르게 문자를 읽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글의 내용을 끊임없이 사색하고 정당화한다. 또한, 글쓰기는 내면적 대화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는 변화하며 글은 기술되는 동안 끊임없이 정당화된다.

  다분히 인간적인 행위인 독서가 삐걱대지 않고 이어지려면 유년 시절 부모의 책 읽어주기부터 아직은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독자인 아이/청소년의 독서 몰입 경험(보통은 생후 2천 일부터 독서 능력을 갖춘다고 한다)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르익지 않았다고 표현했지만, 저 유년 시절은 가장 아름답고 살아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기이다(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아이들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로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라는 말이 장애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라는 걸 기억한다면, 난독증이나 독서 유창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또한 그것이 자기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결합 되어 생긴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멀리한(?) 소크라테스처럼 책 읽기가 어려운 흥미로운 독자들 또한 어느 분야에서 뜨거운 '연인'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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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생각한다 -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 / 사월의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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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번역 출간된 책 중 가장 중요한 책이 될 것 같다. 몇세기간 이어져온 인간 중심적 사고의 흐름이 변하고 있고, 그걸 인지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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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 사람 사이의 모든 것들은 정말로 부서지기 쉬워 보였고 나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나쁜 긴장감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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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에 번역 연습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첫 번째 책은 저번달에 모두 읽은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이다. 올해 읽은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소설이었다(몇 권 더 있지만, 읽는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문장도 많았는데, 번역하는 문장들은 공책에 적었던 문장들로만 한정한다. 구입한 책이라 밑줄을 많이 긋기도 했다. 좋은데 너무 길어서 적지 못한 문장도 아주 많다. 필립 로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심연을 건너는 듯한 문장들'(인터뷰)이 많은 소설이다. 내 짧은 소설관으로 그의 소설을 설명하자면, 필립 로스는 모더니즘 물을 먹은 역사 소설가다. 그래서 그의 역사 소설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매혹적이다. 번역본(문학동네)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번역에 대한 비판이 있는 걸 보면, 번역자가 호흡이 긴 문장을 번역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주황색 책(빈티지 출판사)이라, 쪽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p. 37

How can one say, "No, this isn't a part of life," since it always is? The contaminant of sex, the redeeming corruption that de-idealizes the species and keeps us everlastingly mindful of the matter we are.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두고 어떻게, "아니야, 이건 삶의 일부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인간 종(種)을 이상에서 끌어내리고 끝도 없이 우리 자신의 물질성을 상기시키는 되살아나는 부패, 섹스의 전염성.


p. 39

Everyone know  you're

sexually exploiting an 

abused, illiterate

woman half your

age.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학대 받아왔으며, 문맹인

당신 나이의 절반쯤 되는 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요. 


p. 107

But to be no longer circumscribed and defined by his father was like finding that all the clocks wherever he looked had stopped, and all the watches, and that there was no way of knowing what time it was.

하지만 더이상 아버지에 의해 구획 지어지고 규정되지 않는 것은 마치 그가 바라보는 모든 시계들이, 손목시계까지도 모두 멈춰버려서, 몇시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번역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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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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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겪은 사람들에게 체르노빌은 ‘의식의 재난’이었다. 현실을 붙잡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참고할 과거가 없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장’을 말했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사고를 직접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비극 이후에도 체르노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존에 느끼던 감정과 알고 있던 지식은 쓸모없어졌다. 소방대원의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만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사랑과 죽음이 동일시된다. 경고를 무릅 쓰고 남편을 간호하던 아내는 출산 후 네 시간 만에 아이를 잃는다.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합쳐진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체르노빌의 자연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곳의 곡식과 가축은 방사선 덩어리이다. 앞으로 몇 만 년은 그럴 것이다. 체르노빌을 떠나지 않거나 소개(疏開)된 이후에 되돌아온 사람들은 그 곡식과 가축을 먹는다.


“그냥 불이에요, 불. 걱정할 거 없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고르바초프의 말이다. 최악의 재난 앞에서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속인다. 방사능 측정기가 측량 한계를 넘어섰는데도, 농장 사무실에는 모든 곡식과 채소를 먹어도 된다는 광고가 지역 방사선 전문가의 서명과 함께 걸려 있다. 설비 설치를 위해 방문한 독일인들은 안전장비를 제공받지 못하자 떠난다. 별다른 조치 없이 체르노빌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그들을 흉본다. “우리가 소비에트 영웅을 직접 선보이겠습니다.”, “우리가 소비에트를 보여주겠습니다.” ‘나’가 아닌 ‘우리’로 표현되는 정신이 소련의 정신이라고 한 인터뷰이가 말한다. 정부에 항상 속고 있다고 생각하며, 과학자도 의사도 믿지 않지만 스스로 무엇을 하지도 않는 체념의 정신. 많은 인터뷰이가 이러한 운명론을 러시아 민족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관료제의 사슬 속에서 개인은 ‘관료가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렇게 구호물자들이 체르노빌 밖으로 팔려나간다.


체르노빌은 죽어가는 시스템의 종말을 앞당겼다. 폭발 이후 더 살기 좋아졌다고 몇몇 주민들은 말한다. 버려진 땅 체르노빌에선 정부와 관료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없지만 자연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한 군인은 군대 상사가 죽도록 싫어 체르노빌 원자로 옆에 토굴을 파 1년을 살다 붙잡힌다. 벨라루스의 첫 번째 시민단체 <체르노빌 아이들에게> 재단 대표이자 국회의원인 한 인터뷰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체르노빌이 우리를 해방시켰다. 덕분에 자유를 배웠다.’라고 말한다. 러시아적 운명론에서 벗어난 것이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정치를 만든다.


이 책의 부제는 ‘미래의 연대기’이다. 작가는 체르노빌을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우리가 체르노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텅 빈 집과 도로, 죽은 전깃줄로만 남은 체르노빌이 정말로 인류의 미래가 될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언급한다. 체르노빌은 소련의 전체주의(의 비효율성)가 초래한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만난 훗카이도의 토마리 원전 직원들은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가 “우리가 일하는 원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토마리 원전 직원은 일본의 원전이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인 9.0 지진에 훗쿠시마 원전들은 무너졌다. 작가는 인류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기술’, ‘진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회의(懷疑)를 일으키는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기록한 이유다.

 

(2017년 여름 서평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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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0-24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서워서 한 번에 다 못 읽고 나눠 읽은 책이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에요

hanasi 2017-11-12 03:32   좋아요 0 | URL
저도 시간이 되면 나중에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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