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치려는 사람이 말을 어렵게 쓴다"는 유시민의 언급은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문심조룡>의 몇몇 구절이 떠올랐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옮겨본다.

 

두독과 가구와 같은 무리들이나 유진과 반욱의 일파들은 진주를 꿰어보려 했으나 대다수는 물고기의 눈깔을 꿰는데 그쳤다. (제14장 雜文)

교훈: 물고기 눈깔이나 꿰고 앉아 있지 말자.

 

옛날에 秦나라의 처녀가 晉나라의 공자에게 시집을 갈 때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은 시녀들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그 공자는 시녀들만을 사랑하고 그 처녀는 박대했다고 한다. 또한 초나라의 상인이 정나라의 상인에게 귀한 구슬을 팔게 되어 향기 높은 계수나무로 만든 보갑에 구슬을 넣어 보냈더니, 정나라의 상인은 보갑만을 사고 그 구슬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만일 언어적 표현이 주장하는 바의 도리를 매몰시켜 가지나 잎이 자기의 뿌리를 초과해 버린다면, 그것은 진나라의 처녀나 초나라 상인의 구슬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제24장 議對)

교훈: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사색의 길이 막힌 이들은 빈약한 내용을 풍부히 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고, 쓸모없는 수식이 범람하는 이들은 언어 표현의 혼란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광범위한 학식과 폭넓은 경험은 내용의 빈곤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자양분이며 일관성과 통일성은 혼란을 치유해 주는 유일한 약처방이다. 식견이 넓고 중심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창작 구상에 반드시 도움이 있을 것이다. (제26장 神思)

교훈: 공부하고 또 공부하자. 할 얘기를 분명히 하고, 버릴 건 버리자.

 

꿩이 화려한 깃털로 치장하고 있지만 한 번에 백 걸음 정도의 거리밖에 날지 못하는 원인은 살은 쪘으나 힘이 부족한 데 있고, 매가 아름다운 깃털을 지니지는 못했어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원인은 골력이 강건하고 그 기세가 맹렬한 데 있다. 작품에 나타난 재주와 능력 역시 이러한 사정과 매우 유사하다. 만일 風과 骨은 있으되 文采가 없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 맹금과 같은 존재일 것이고, 문채는 있으되 풍과 골이 없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꿩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아마도 화려한 문채도 있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한다면 그러한 작품은 문학의 숲 속에서의 봉황이리라. (제28장 風骨)

교훈: 내용만큼이나 스타일은 중요하다. 설득의 힘은 문채에도 있다.

 

다채로운 사고의 소유자는 일반적으로 부연을 잘 하고, 논리적 재능의 소유자는 일반적으로 압축을 잘 한다. 압축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빼버려도 그 글의 사상과 내용이 줄어들지 않고, 부연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늘일수록 그 글의 사상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빼버림으로 인해 사상의 명료함에 곤란이 생기게 되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논리성 대신에 사상의 빈곤일 것이다. 그리고 수사적 부연으로 인해 언어의 중복이 야기된다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사상의 다채로움이 아니라 번잡함과 애매함일 것이다. (제32장 鎔裁)

교훈: 문장이 짧다고 다 무식한 게 아니고, 길다고 다 사기꾼은 아니다.

 

* 한 줄 요약: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어렵게 써도 된다.

 

위 인용에 사용한 번역본은 올재클래식스 <문심조룡>(2016)인데, 이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