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진실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사람과 산골사람이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를 어리석다고 하지만 바다와 산에서 뜨지 않는 해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곳은 머리속일 뿐입니다.
바다와 산이라는 현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현장에 튼튼히 발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이
곧 저마다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의 관찰, 즉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치중립적 관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기는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이라는 창백한 관념성을
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168-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