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류뚱도 안나오고, 추추나 강노루도 시원찮아서 메이저리그 보는 게 시들시들하다.

게다가 다저스도 졌고 레인저스도 졌으니 그 김빠진 경기를 볼 맛이 안 나더라.

이럴 때 생각나는, 아니 메이저리그 야구를 볼 때마다 가끔 떠오르곤 하는 시가 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질척이는 골목의 비린내만이 아니다

너절한 욕지거리와 싸움질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깊은 가난만이 아니다

좀체 걷히지 않는 어둠만이 아니다

 

팔월이 오면 우리는 들떠오지만

삐꺽이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아니면 소줏집 통걸상에서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어느

김빠진 야구경기에 주먹을 부르쥐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라 핏대를 올리고

후진국경제학자의 허풍에 덩달아 흥분하지만

이것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쓸개 빠진 헛웃음만이 아니다

겁에 질려 야윈 두 주먹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난장만이 아니다

하늘까지 덮은 저 어둠만이 아니다

 

- 신경림, 『농무』, 창비, 92-93쪽.

 

시인은 무얼 그렇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했던걸까. 요즘도 참 부끄러운 게 많은 시절이긴 하지만 저 시절의 부끄러움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도대체 역사 속에서 인간은 단 한 순간이라도 부끄러워할 만한 게 없었을 때가 있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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