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hakraba님의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

성낙주 선생님, 안녕하세요. 돌궐입니다.
우선 제 리뷰에 대해 선생님의 자세한 입장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견에 대해 몇 가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강희정 선생님의 석굴암 관련 연구가 `90년대말부터 이어`왔다고 쓴 건 제 실수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2007년 출간된 미술사논문집 『시각문화의 전통과 해석』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처럼 연대가 명시되는 중요한 사항을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쓴 것은 완전히 제 잘못이며 이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논점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2007년과 2008년에 연이어 나온 `석굴암 재발견` 관련 강희정 선생의 논문들은 기본적으로 석굴암을 바라보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처럼 강교수님의 글들이 ˝일본 학자들이 ‘조선미술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정착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재구성하는˝ 연구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논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 즉 석굴암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과 해석에 대한 매우 혁신적인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던 강희정 선생의 글들이 2009년 이후 발표하신 성낙주 선생님의 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선생님께선 두 분의 연구가 서로 아무런 영향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작성되었고, 결과적으로 ‘상보적’ 관계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1999년에 『인물과 사상』에 쓰신 「강우방 관장은 석굴암의 현실을 직시하라」라는 글에서 선생님께서는 이미 ‘햇살 콤플렉스’라는 낱말을 쓰셨기 때문에 ‘석굴암의 햇살신화’라는 관점은 이 때 시작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강희정 선생의 연구와 성낙주 선생님의 연구가 <일제가 바라본 석굴암>이라는 거의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는 『석굴암, 법정에 서다』 서두 부분에서 강 선생의 글들은 기존의 주요 연구 성과로 반드시 언급되고 넘어갔어야 합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언급되고 말 정도의 논문이었다면 차라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두 분의 글들 사이의 영향 관계 여부와 관계가 없는, 학술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선생님께서 강희정 교수의 발표에 질의자로 참여하신 적이 있었다고 하셨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굳이 또 다른 예를 들자면 2001년 『동악미술사학』에 선생님께서 쓰신 논문 「歸納推理에 의한 石窟庵과 佛國寺 관련 문헌사료의 연구」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석굴암) 관련 사료들과 기존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충실하고 공정하게 제시하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지적한 것이며 선생님께서 강희정 교수님의 연구 주제와 내용이 선생님의 연구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 점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다루는 내용과 표현, 방법에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석굴암에 반영된 `식민사관`을 연구하는 기본적 접근 방향은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제가 원형돔 철거론 운운한 부분입니다.

선학들이 전실을 철거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이는 잘못된 것이고 이 전실이 없어지면 마치 석굴암의 모든 부분에 피해를 줄 것처럼 설명하셨습니다. 개방구조로 인정했던 학자들과 유네스코에서 전각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던 것에 대해 ‘지붕과 출입문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는 평범한 상식에 비춰보면’(282쪽)이란 표현을 써서 전각의 유무 문제가 갑자기 지붕의 유무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원형돔과 사천왕이 새겨진 비도 안쪽으로는 원형 지붕이 멀쩡히 남아 있는데 왜 지붕이 없는 집이 되나요?

그뿐 아니라 앞에서도 총독부에서 전실 공간을 노천상태로 열어둔 점을 ‘‘집’의 기본이 지붕이라고 할 때, 이러한 조치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되는 일이었다’(138쪽)고 비판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전실과 그 지붕이 갑자기 석굴암의 지붕인 것처럼 표현하신 겁니다. 걸러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겠지만 이후 이어지는 석굴암 피해 상황들에 대한 서술은 마치 그 모두가 전실의 지붕이 없어서 일어난 것처럼 독자들의 판단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집’이란 글이 일정 부분 수사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뉘앙스를 지닌 것으로 해석하기 쉬운 문장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의 지붕은 원형돔이지 전실의 지붕이 아닙니다. 전실의 지붕은 그야말로 전실의 지붕일 뿐입니다. 석굴암 원형논쟁의 중심에 왜 자꾸 전실이 언급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원형돔을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학계에서 전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건 선생님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실이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 합리적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하며, 없었다고 주장하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실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조각상들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실은 없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전실은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숭례문에 화재 방지 스프링클러와 CCTV가 없었다면 화재가 나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숭례문이 불타서 전소된 것을 보면 이 시스템들이 있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스프링클러와 CCTV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허망합니다.

당시의 여러 기사를 찾아보니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소화기만 8대 있었다고 합니다. CCTV는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들을 제대로만 갖춰 놓으면 숭례문이 안전했을까요? 도움은 됐을지 몰라도 토지보상금을 못 받아 억울하여 악에 받친 또 다른 노인이 나타난다면 그마저도 완전한 대책이 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숭례문이 불탄 것을 철저한 훼손방지 대책 없이 공개한 정부와 전 서울시장, 야간 경비 인력 한 명 배치하지 않은 문화재청과, 문화재 소방 방법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소방청, 누구나 알 수 있는 ‘랜드마크’로써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보존과 관리 문제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인근 시민과 상인들의 탓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지 아니면 토지보상금을 못 받아 억울한 어떤 사람과 스프링클러 및 화재경보기 탓으로 보는 것이 합당한지는 평범한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될 것입니다.
전실 존재의 여부와 석굴암 조각상 보존 사이, 그리고 숭례문 스프링클러-CCTV 시스템과 화재방지 사이에는 ‘상관관계’는 있어도 ‘인과관계’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실 원형 문제는 우선 팔부중상과 금강역사상 면석으로 구성된 전실이 석굴암 창건 때부터 현 상태로 계획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강우방 선생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팔부중상이 원안 설계에 들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있습니다. 전실의 원안 설계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팔부중상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들이 지금처럼 계획되고 조각되었을 거라는 근거가 현재의 상황에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석굴암 창건주는 팔부중상이 서로 4상씩 짝지어서 마주 보도록 설계했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합니다. 이들 여덟 상들이 두세 종류의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는 사실은 더더욱 전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의심해야 하고, 그 끝에서 의심이 걷히게 되면 그 때 거기서 새로운 이론과 가설들을 세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이런 궁금증과 관련해서 많은 시사점을 준 아래 두 저술이 있습니다.

신형준, 「석굴암의 수학적 비례미, 과연 존재하나」, 『한국고대사에 대한 반역』(조선일보사, 2004), 113-219쪽.
허형욱, 「석굴암 관련 조선후기 문헌기록의 검토」, 『신라문물연구』 5(국립경주박물관, 2011), 26-46쪽.

이 논문들을 보고 나면 현재 선생님을 포함한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석굴암의 원형(圓形) 주실과 방형 전실의 수학적 비례관계뿐만 아니라 석굴암 창건시의 원형(原形)의 ‘실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학계에서 이런 글들에 대한 언급이나 반론이 전혀 없는 것인지 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학술 서적에 대한 듣기 좋은 비평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판 정신이 없는 맹종은 학문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 저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외람된 비판을 했던 것은 그만큼 선생님의 연구와 이 책의 성과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라딘에 서툴게 휘갈긴 제 서평이 혹시 나중에 이 책의 개정판이라도 나온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자에게 직접 글을 받게 되어 매우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에 관한 ‘좀더 자세하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여러 가지 석굴암 문제 논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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