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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화 버리기
최경원 지음 / 현디자인연구소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선정작을 모아 둔 곳에서 발견한 책이다. 감은사탑, 달항아리, 고구려 철갑옷, 독락당, 석굴암 다섯 가지 문화재를 분석하여 우리 문화의 탁월한 구조와 형식미, 정신성과 조형이념, 실용성과 기능은 물론 역사성까지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문화 버리기’라는 제목은 사실 책의 내용에 잘 부합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한국문화가 무엇인지 그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2장에서 기존 학자들이 내놓은 한국문화에 대한 담론, 이를테면 ‘막걸리 맛’이나 ‘못 느끼면 말을 말자’ 따위 밑도 끝도 없는 애매한 감상은 이제 그만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막연한 감상으로 우리 문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영 탐탁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두루뭉술한 ‘감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해석을 통해 한국문화를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또 한국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열망과 글에 활용된 폭 넓은 지식들도 인상적이다. 뜬구름 잡는 인상비평이 아니라 철저한 형식 분석과 다양한 시각 자료를 동원해서 해당 유물들을 검토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사용된 자료나 그림들은 그동안 미술사 저술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많다. 다섯 개 꼭지마다 우리 유물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서양의 미술품과 유물들이 비교되고 있다. 범위와 종류도 다양해서 회화나 조각은 물론 고대와 현대의 건축물, 산업 공예품과 디자인 제품까지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학술 논문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논지를 거리낌 없이 제대로 펼쳐내었다. 학계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겠지만, 그래서 더 편하고 자유롭게 주장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 조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주장들이 학계에서 회자되는 이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소장학자들이 이 책의 논지와 비슷한 주장들을 펴왔고, 저자는 이 연구성과들을 잘 정리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서 일반 대중들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말하자면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연결해주는 중간 필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디자인연구소에서 펴낸 책이어서 그런지 편집 형태도 독특하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나오는 각종 화려한 도면과 훌륭한 도판들도 책 ‘보는’ 즐거움을 준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미술사 서적들에 견주면 꽤 파격적이다. 책의 인상을 굳이 표현하자면 뭐랄까, 디자인 잡지에 연재된 고미술 관련 칼럼을 모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먼저 감은사탑을 다룬 1장에서 질서와 불규칙의 조화, 상승감과 안정감, 육중함과 날렵함의 공존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디자이너답게 탑의 형태를 분석하여 설명한다. 탑에 보이는 짜임새 있는 비례와 엄격한 구조를 ‘화엄’이나 ‘화쟁’사상과 연결하여 해석하였는데, 심정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치밀한 논증은 아닌 것 같다. 탑을 화엄종의 사상이나 철학만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뒷산의 ‘불규칙한 선의 곡선이 규칙적인 탑의 외형을 절묘하게 타면서 흐르고 있다’(56) 같은 문장은 개인적인 감상을 현상에 투영하여 해석한 것이다. 또 ‘감은사지에서는 탑이라는 인공물과 자연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58)는 것은 저자가 비판하던 선학들의 말투와 비슷하다.
달항아리 설명을 읽으며 정말 많이 놀랐는데, 내가 늘 주장하듯 '달항아리를 제대로 보려면 손으로 돌려가면서 보고, 그럴 처지가 아니면 돌면서 보라’는 정확한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독립 전시장 속의 달항아리를 한 바퀴 돌아가면서 보면 그 윤곽선이 아주 미묘하게 변화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운동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찌그러진 형태’를 굳이 피카소의 회화에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찌그러짐이 분명히 의도한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형이상학(성리학, 태극도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어느 성리학자가 태극도설에 입각해서 도공들에게 ‘둥그렇되 조금 찌그러진 항아리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는 명확한 문증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일단 이것은 도공들의 창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공들은 달항아리를 만들었고, 그 중 몇몇이 수요가 있자 좀 더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수요층을 쥐락펴락까지는 아니어도 이런저런 제품들을 만들어 '제시'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요에 소속된 장인들은 잘못 구운 공납품이 되돌아오면 다시 만들어야 했고 늘 주어진 할당량을 제작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했다. 수요층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전통이나 규범에 따라 만든 것 외에는) 그저 만들어진 상품 가운데에서 ‘선택’했을 뿐이다. 19세기에 달항아리 제작 방식을 계승하여 제작된 이른바 '고구마형' 항아리는 주로 민요에서 제작되었는데, 이런 유물들의 수요자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한 뒤에야 달항아리 계열의 용도불명 백자가 지니는 가치를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달항아리에 담긴 '사상'에 대해 그 무엇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군가 금사리 항아리들을 '선택'하여 '수요'한 것까지는 분명하지만 그것에 성리학이나 태극도설 같은 ‘의미부여’까지 했는지는 증거가 없다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에 와서야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다. 논거가 부족하면 불완전한 가설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엘리트들은 가끔 보면 자기네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미술사에서 후원자와 주문자 연구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후원자와 주문자들이 직접 도구를 들고 재료와 씨름해 가면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은 아니다.
3장에서 고구려 철갑옷은 공예가 아니라 디자인이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전쟁에 쓰였던 물건이므로 신속한 제작과 기능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청자가 대량 생산되었다고 해서 이것도 역시 ‘기능’이 강조되는 현대적 개념의 디자인에 부합하는 유물이라는 설명은 무리가 있다. 청자와 같은 도자공예품이 어느 정도 대량 생산 요소가 있다고는 해도 완전히 기능성만 추구하지는 않았다. 단적으로 청자의 ‘무늬’는 아무런 실용적 기능이 없다. ‘비색’이라 부르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이라는 말에 너무 논리가 묻힌 것 같은 인상이다.
경주 독락당과 낙수장(Falling water)을 비교하여 서술한 4장에서는 기시감이 들었다. 독락당에 관한 김봉렬 선생의 논조에다 디자이너의 감각을 덧보태 더 이상 한국 건축은 초라한 건축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선조들은 건물의 크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념적 건축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건축에서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문증들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도 건축주의 생각과 이상이 설계에 직접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이 4장을 읽으면서 이라크의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그 괴상한 건물을 건축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도, 그렇다고 역사성이 있는 것도 아닌 그 뜬금없는 외형에 참 어이가 없었는데, 과연!
석굴암이 국제적 양식의 건축과 조각을 보여주고 있고, 12당척을 기본으로 해서 √2의 비례가 반영된 구조라는 건 꽤 오래 전에 규명되었다. √2라니까 생각났는데, 최근에는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구도 속에도 매우 엄격한 수학적 비례가 사용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함께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석굴암의 돔 구조가 로마에서 유래한 건축이라고는 하지만 만들어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그 구축법이 독특한 팔뚝돌을 이용한 매우 독창적인 공법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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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본 전통 문화 교양서로서 충분한 미덕을 갖추었고 곳곳에 번뜩이는 직관과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꼭지 정도는 숨가쁘게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다만 기존 학설에서 인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들은 본문에서 논저자의 이름만 슬쩍 언급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각주나 미주로 명확한 출처표시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요즘 교양서들 보면 참고 도서 생략하고 입 씻는 게 유행인 것 같은데, 각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끝에 참고 문헌을 덧붙이지 않은 것은 무척 아쉽다. 참고 문헌 챙겨 적는다고 해서 저자를 깎아내리는 독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관심 있게 읽은 독자들은 더 찾아 읽을 목록을 알려주어서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