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Mass Market Paperback) - 영화 '더 로드' 원작
코맥 매카시 지음 / Vintage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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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이야기는 너무나 자명하고 뻔한 결말로 흘러간다.

바라보는 것이 참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으로 겨우겨우 책장을 넘긴 것 같다.  

그건 마치 남자가 소년을 데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했던 심정과도 같다고 할까.

 

모든 것이 불타고 재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땅 위에서 그들은 바다를 찾아 나선다.

왜 세상이 죄다 불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들은 버려진 집이나 건물에서 식량을 구해야 하고, 진창에서 그을음을 걸러낸 물을 마셔야 한다.

 

절망의 상황에서 남자는 최후의 순간을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이런 상황에서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나라도 그랬겠지.  

그는 늘 권총을 들고 다녔다.

권총은 인육을 먹는 자들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방어하기 위한 무기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오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하지만 남자는 끝내 아이를 버리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라면 이 남자의 의지와 숭고한 행위를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지지와 응원으로 이 책을 내려놓지 못하였다. 

 

폐허로 변한 세상에서 인간 사냥꾼을 피해 삶을 연명해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이 주옥같은 오늘날의 현실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맥카시는 이 시대의 절망적인 상황을 종말이 닥친 세계에 빗대어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평문을 보니 작가 자신이 매우 궁핍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서 남자가 처한 극한 상황과 식량을 구하는 절박한 과정의 리얼리즘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새삼 내가 누리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들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고,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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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 생소한 단어들이 아주 많이 나오며, 형태가 변형된 단어와 사전에는 없는 단어들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들을 (찾거나) 알지 못하고 온전히 읽어 내기는 힘들다.

그건 이 낱말들이 각각 장면들의 배경과 상황, 심지어는 감정과 분위기까지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리딩레벨 4.0이라는 말만 믿고 가볍게 시작했다가는 좌절할 공산이 크다.

 

어떤 문장들은 마치 시처럼 읽히더라.

섬뜩할 정도로 탁월한 묘사와 통찰. 예를 들면,

 

벗은 남자의 뼈만 앙상한 어깨를 이런 감각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The razorous shoulder blades sawing under the pale skin. (218)

 

죽음에 가까워지는 걸 두려워하면서 하는 독백.

He is coming to steal my eyes. To seal my mouth with dirt. (261)

 

그런가 하면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들... 벙커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하는 소년을 달래며 말한다. 

This is what the good guys do. They keep trying. They dont give up. (137)  

핡, 이런 건 정말 나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책의 분위기를 몇몇 단어들로 대변한다면?  

charred, senseless, bleak, cold, desolate, birdless, leaden, gray and barren...

 

고통스럽고 음울한 비극이었지만 남자의 용기와 의지는 아름다웠다.

이 춥고 쓸쓸한 가을 날에 몹시 어울리는, 양식(style)이 뚜렷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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