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한국불교
이이화 지음 / 역사비평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 전에 김영태 선생의 <한국 불교사>를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강의 노트식 맥락 없는 정보의 나열이었던 탓도 있겠지만(의미없는 스님들의 저작 나열 같은) 역사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고, 그 시대 사상과 문화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책에서도 느끼는 바지만 이이화 선생은 민중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애정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만민의 평등과 민중들의 복지와 이익을 설파한 스님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불교사 속 인물들의 '간판'만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처세와 신념, 사상까지 이야기하기 때문에 불교라는 종교의 흐름을 통해 우리 역사를 한 번 더 훑어보는 듯했다.

저자가 사상사에 집중하지 않고 역사적 실체에 치중했다고는 하지만 필요한 곳에서는 사상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했다.

 

불교 승려나 신봉자라고 해서 모두 옳고 신성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남들은 다 욕하고 저평가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얕잡아 보거나 그 가치를 비하하지 않았다.

또 남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인물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감싸주지 않는다.

비판할 부분은 가차없이 비판하고 위대한 것은 아낌없이 위대하다고 말해야 한다.

가치와 한계를 다 말하는 것. 이것은 지식인이라면 늘 가슴에 신조로 삼고 있어야 하니까.

 

승려들은 중생과 떨어져서 수행을 하거나 국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어용승려로 활약하기도 했다.

꽤 많은 중들이 어용승려였다. 여기서 '어용'이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스님들은 시대의 큰 스승 역할을 했고, 국가에 정치적으로 많은 기여도 했기에.

가진 자들의 이익과 극락왕생만을 말하지 않고(물론 없잖아 그런 예도 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민중들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과 평등을 주장해 온 것이 불교의 미덕이 아니었던가.

일제 시대에 친일행위를 한 경우가 어용 승려의 나쁜 예일 것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권상로, 방한암은 친일 승려였으며, 송만공, 한용운은 끝까지 자존을 지킨 승려였다고 한다.

 

컴퓨터로 책 내용을 입력하고 있다.

제대로 정리하려면 인물과 사건 위주로 노트정리도 필요하다.

일전에 훑어만 봤던 <조계종사>도 다시 읽어야겠다.

 

머리가 나쁘니 손발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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