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려라! - 뇌가 휴식하고 재정비하는 바로 그 시간
신동원 지음 / 센추리원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스마트폰의 폐해가 점점 심각해지는 요즘 사람들에게 적절한 책인 거 같다.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머리를 비워라, 모니터가 아니라 사람의 눈을 봐라, 접속이 아닌 접촉을 해라,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고, 하이퍼링크가 가득한 웹페이지 말고 불필요한 자극이 없는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뇌와 인간심리를 연구하는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라 과학적 근거를 들어가며 왜 우리는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한가를 말한다.

1부와 2부가 거의 핵심이고, 3부에는 뇌의 시냅스 단련 문제, 몰입, 전두엽의 기능 등 뇌의 긍정적 사용법을 언급한다.

4부는 인간관계와 잡념을 비울 수 있는 생활 습관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는데 정신 없이 사는 현대인들에겐 매우 적절한 충고들이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

이제 그 누구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사색을 즐기거나,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대신 스마트폰 창을 통해 더 많은 사람, 더 큰 세상과의 접속을 선택한다. 덕분에 굳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스마트폰과 대화하고, 스마트폰과 영화를 보고, 스마트폰과 게임을 하는 등 혼자 있어도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정보들만 가득하다. (1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프레임과 인식, 경험과 욕구에 따라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논리나 이성보다 인정과 배려에 기초한 공감이 훨씬 중요하다. (74)

세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을 찾은 엄마가 있었다. 동갑내기 옆집 아이는 벌써 한문과 영어를 배우는데 자기 아들은 말이 너무 늦는 게 아니냐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늦은 편이었다. 검사 결과 두뇌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엄마와 아이의 평소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모자를 놀이방으로 안내했다. 신기한 장난감이 가득 찬 방에 들어서자 아이는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방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장난감을 집어들었다.

"이 빨간 자동차는 뭐지? 이렇게 하면 앞으로 가네. 신기하지 않아? 한번 해봐."

"여기 원격 비행기도 있네. 엄마가 움직여줄까?"

엄마는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장난감을 들이댔다. 그러자 호기심이 가득했던 아이의 얼굴은 짜증으로 뒤덮이더니 갑자기 모든 것을 거부한 채 바닥에 엎드려버렸다.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발현된 것이다. 나는 그제야 멀쩡한 아이의 언어 능력이 왜 또래에 비해 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 개그 코너의 유행어처럼 자극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85-86)

사람들은 연일 새로운, 더 새로운 스마트폰을 기다리며 그것이 가진 첨단 기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스마트한 피조물은 바로 인간의 두뇌다. (88)

책이 가진 네 가지 힘

첫째, 책은 정보의 우선순위를 제공해준다. 웹페이지에는 모든 정보가 무작위로 나와 있다. 만약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를 검색하면, 의사인 나조차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좋은 책을 사서 읽으면 ADHD에 대해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치료법을 알 수 있다.

둘째, 쓸모없는 정보를 미리 걸러준다. 방금 말했듯이 인터넷에는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그중에는 유용한 정보도 있지만 전혀 필요하지 않거나 엉터리 정보도 많다. 요즘 의사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인터넷에서 찾은 지식을 정답처럼 여기는 환자를 대하는 일이다.

책에는 정제된 좋은 지식이 가득 차 있다.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된 고전들은 더욱 그렇다.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 차 있으므로 쓸모없는 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뇌를 혹사시킬 필요가 없다.

셋째, 불필요한 자극이 없다. 웹 페이지에는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가득한 내용이 돌아다닌다. 요즘에는 움직이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런 자극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인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뇌의 과부하를 불러온다. 하지만 선형적인Linear 읽기는 그저 책의 안내대로 따라 읽으면 되기 때문에 내용에 몰두하고 내적 성찰을 할 여유가 많아진다.

넷째, 독자의 관심사 혹은 지식 수준에 따라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처음 런던에 갔을 때 가지고 간 몇 장의 지도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런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지도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당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면 내 혼란스러움은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한국판 구글에 런던을 치면 무려 20억 개가 넘는 검색 결과가 뜬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런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키워드를 좁혀보면 어떨까?

런던이 아닌 런던 여행을 검색하면 나오는 페이지 수가 3,500여 개가 된다. 이것 역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억"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헉헉거리고 있느니 런던 초보자인 내 눈높이에 맞춘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한 여행서 한 권을 사서 읽는 것이 낫다. 시간은 물론이고 감정적·육체적 에너지 낭비도 줄어들 것이다. (122-124)

시냅스 형성에 힘을 기울여라

"습관이 만들어질 때는 눈에 안 보이는 실과 같지만 그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그 끈이 차츰 강화되고, 거기에 또 한 가닥씩 더해지면 마침내 굵은 밧줄이 된다. 습관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의 소설가 오리슨 스웨트 마든의 말이다. 19세기에 살던 사람이 두뇌의 메커니즘을 이토록 정확히 표현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흔히들 "습관은 의지의 문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행동이 변했다는 것은 단순하게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시냅스가 생성되어 두뇌 구조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신의 습관을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의식에 가까운 비언어적 기억, 비선언적 기억에 저장된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강제적 습관으로 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가느다란 실이 한 가닥씩 더해져 굵은 밧줄이 되듯 꾸준한 노력으로 반복된 학습만이 우리의 습관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행복한 표정으로 성취감을 맛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라. (168-169)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의 화학과 교수였던 멘델레예프 교수는 63개의 원소를 정렬할 일련의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원자량과 특성에 대해 진이 빠지도록 연구에 몰두했던 그가 지쳐 잠든 어느 날 모두의 예상대로 꿈을 꿨다. 그 꿈 속에서 모든 원소가 조건에 맞게 정렬된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원소주기율표다. (174)

멍 때리지 못할 거면 잠이라도 제대로 자란 말이다.

나도 언젠가 퍼자다가 꿈 속에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은 적이 있지 않은가.

인간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손해를 감수하며 타인에게 협조하는 것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올 장기적 보상을 염두에 둔 행위다.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대가를 바라고 오늘 선행을 하는 거라고 말하면 조금 치사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인간의 뇌에는 그런 장치가 숨겨져 있다.

18세기 후반에 조현병(정신분열증), 우울증, 간질 등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분노나 충동을 참지 못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불어 자신의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 생각하지 못하는 심각한 도덕 불감증을 드러냈다. 한 가지 예로 수술에 들어가기 전 환자한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당신이 친구에게 빌린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가장 먼저 친구에게 사정을 말한 뒤 미안하다고 사과해야겠죠. 그리고 같은 가방을 사주거나 돈으로 보상해야죠."

그런데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나서 동일한 질문을 하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온다.

"뭘 어떻게 해요. 다른 가방을 빌리면 되지." (195)

약간 밀도가 떨어지고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꼭지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필독할 만하다.

지금도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일을 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에 시도때도 없이 눈과 손이 가는 사람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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