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 대한민국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리는 글
편해문 지음 / 소나무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 쯤은 읽고 내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늘 생각해 왔던 이야기들이다. 놀이가 아이들을 치유해주고 앞으로 살아갈 힘과 지혜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도나도 아이들을 억압하여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거기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고 '대 어린이 사기극'과 '대 어린이 잔혹극'에 동참하고 있다는 거다.

놀이터에 나오는 애들이 하나도 없다는 탓은 그만 하고, 나부터 애들 데리고 나가 놀라는 것이다.

단호한 의지와 뚜렷한 철학이 필요한 행위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

 

이런저런 놀이를 이끄는 사람을 본다. 한두 사람이 이끌어서는 놀이라 보기 어렵다. 그것은 레크리에이션이다. 놀이 속에 있는 모든 아이가 주인 노릇을 할 때 그것이 놀이다. 놀이라는 것은 대부분 혼자 할 수 없고 함께 한다. 잘 노는 사람은 노래방 가서 마이크 잡고 분위기를 신들린듯 이끄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시간을 가꿔주고 그 속에 자신이 공부했거나 아는 놀이를 공공의 것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흔쾌히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22-23)

 

돈이다. 세상이 돈에 미쳐가니 아이들도 돈에 미쳐간다. 결국, 일진도 돈이다. 왕따 놀이는 일진들의 소비 놀이를 떠받친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소비' 놀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까? 사지 않고는 아이들 또한 세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쇼핑 중독에 빠진 어른들의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만약 '닭장'의 닭들에게 쇼핑이 허용되었다면 그 속이 좀 더 견딜 만한 곳이 되었을지 모른다. (38)

 

갓 아기를 낳은 엄마의 전화번호를 빼내 수백만 원 하는 책과 장난감을 꼭 사야 당신 아기가 앞으로 뒤처지지 않는다고 전화를 해대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아이들 영혼은 기업 상품 마케팅의 먹이가 되었다. 소유 그 자체가 놀이의 동기와 과정과 목표가 된 이 씁쓸한 풍경은 어른들의 내면과 크게 다른지 않다. 유희왕이나 포켓몬스터 딱지를 보라. 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 모으기 위해 산다. 어쩌면 이렇게 아이들 놀이가 어른들의 욕망을 닮았단 말인가. 놀이감을 가지고 놀 때보다 놀이감을 많이 쌓아 놓거나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 옛날에는 공기놀이를 잘하거나 비석치기를 잘하거나 고무줄을 잘하는 것이 동무들 사이에서 자랑거리였는데, 지금은 오로지 무엇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가 자랑이다. (43-44)

 

아이들은 친구와 놀이로 세상을 만나야지 책이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책 말고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몸으로 먼저 만나야 한다. 어디까지나 놀고 나서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 읽는 것이 책이라는 순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너무 많은 책을 읽어 관계에 서툴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꽤 많다. 이른바 독서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의 자폐 성향은 자주 보고되고 있음을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76)

 

어려서부터 밖에서 놀면서 '놀이밥'을 꼬박꼬박 하루에 서너 시간씩 먹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2시간 이상 못 한다. 왜? 좀이 쑤시고 몸이 근질거려 못한다. 그렇지만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문 앞에서부터 빼돌렸던 아이들은 이틀을 컴퓨터 앞에 앉혀놔도 아무런 불편을 모른다. 왜냐하면, 몸이 아무런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목숨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죽은 목숨'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게임을 하다가도 좀이 쑤셔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친구라도 불러내는 '산 목숨'으로 만들 것인지는 부모와 교사인 우리한테 달려 있다. 부모는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쥐가 나면 움직이고 좀이 쑤시면 벌떡 일어나는 살아 있는 몸 말이다.

 

밖에 나갔더니 우리 아이와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아이를 밖에 내놓자. 그렇게 누군가 나와서 놀고 있다면 다른 집 부모도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올 것이다.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옆집 부모와도 손을 잡지 못하게 만드는 이 자본의 분열에 맞서는 용기가 진정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싸움 자체가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본에 가장 모질게 저항하는 길 또한 우리 어른도 아이도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만약 우리 스스로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못 놀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본에 먹힌 존재라 해도 좋다. 지금도 놀 수 없고 앞으로도 놀 수 없다면 삶은 끝나는 거다. 앞서 놀아야 이긴다고 했다. 더불어 안 사야 이긴다. 그리고 마침내 자본에 이기려면 외로워야 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지는 거다. (215-216)

 

91-92쪽에는 또 이런 글이 있다.

 

 

사주지 마시라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놀고 싶은데

아이들은 동무들끼리 놀고 싶은데

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고 싶은데

장난감을 사서 손에 쥐어주고

한꺼번에 책을 사주고

물건을 사주고 게임기를 사주고

어디를 자꾸 보내다

사지 마시라

사주지 마시라

사주면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사주면 아이들 놀이는 멈춘다

사주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구르는 돌보다 못한

값비싼 장난감부터 내다 버려야 한다

부모가 사다 준 물건을 손에 쥐는 순간

아이들의 자유는 그 속에 갇히고

아이들의 퍼덕거리던 몸짓은 잦아든다

세상은 사야 한다고 날마다 떠들어대지만

아이들은 사주지 말아야

맨손과 맨발이어야 아이들로 자란다

사지 말아야 놀이는 시작한다

뭐가 없어야 놀이는 시작한다

심심해야 놀이는 시작한다

사지 않고 사주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돈 비린내 진동하는 화폐의 세상을 사는

참된 부모는 사지 않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사지 않고 아이와 지내는 사람이다

사지 않고 아이와 노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지 않고 생활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아무 것도 사주지 말라는 얘기는 조금 지나친 듯하지만 이 땅의 부모라면 새겨 들어야 할 진심 어린 충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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