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운동 주춧돌 5
이이화 지음, 김태현 그림 / 사파리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동학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배웠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동학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왜일까?

 

1894년 가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을 길이란 걸 뻔히 알고서도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생각은 누구보다도 앞서 있었고, 또 정당했다.

전봉준이 법정의 심문에 답한 재판 기록인 <전봉준 공초>가 지금도 서울대 규장각에 남아있다고 한다.

거기 나오는 전봉준의 말은 동학농민운동이 왜 일어났는지를, 왜 정당하고 정의로운 운동인지를 알려준다.

 

동학은 과거 잘못된 세상을 고쳐 다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나선 것이라, 민중에 해독되는 탐관오리를 버히고 일반 인민이 평등적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복(私腹)을 채우고 음탕하고 삿된 일에 소비하는 국세와 공전을 거두어 의거에 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조상의 뼈다귀를 우려 행악(行惡)을 하고 여러 사람의 피땀을 긁어 제 몸을 살찌우는 자를 없애 버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람으로서 사람을 매매해 귀천이 있게 하고 공토로서 사토를 만들어 빈부가 있게 하는 것은 인도상 원리에 위반이라, 이것을 고치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며 악한 정부를 고쳐 선한 정부를 만들고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냐? 자국의 백성을 쳐 없애기 위해 외적을 불러들였나니 너희들 죄가 가장 중죄한지라. 도리어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냐? (298-299)

 

하나 더 놀라웠던 건 동학군이 행동 강령에 따라 백성들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않았던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랬다고 자화자찬한 게 아니라 타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취재한 일본 기자가 <동경일일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동학당은 술과 여자를 탐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등의 규율이 있고, 당원들은 그것을 잘 지켜 조금도 농민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왜 농민군으로 참여했냐고 묻는 자가 있으면, 정부의 잘못된 정치를 고치고 조선에 있는 외국인을 추방해 국민의 만복을 도모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한 말이 항상 실현되었다. 일찍이 고부에서 전주로 진격할 때 구경꾼들이 산을 이루어 논밭 도로들이 다 밟혀 엉망이 되는 것을 보고 단지 농작물을 상하게 하는 것을 경계해 공포를 쏘아 논밭에서 물러나게 한 것도 그 한 보기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는 잡다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에 맞는 현금을 주고 사서 상업적으로도 약간의 이익을 주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하여 백성들 사이에서는 자못 평판이 좋다. 농민군의 이런 행동 원칙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114-115)

 

전봉준이 훗날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 될 충청감사 박제순에게 보낸 편지는 너무 안타깝다.

씨알도 안 먹힐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농민군의 처지는 완전하고 철저한 비극으로 치닫는 최적의 조건 아니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람은 기강이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다. 거짓말하고 마음을 속이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일본의 도둑들이 군대를 움직여 우리 임금을 핍박하고 우리 백성을 걱정스럽게 하니 어찌 참는단 말인가? 임진왜란의 원수를 초야(시골)에 있는 필부나 어린애까지도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기억하는데, 하물며 각하는 조정의 녹을 먹는 충신이니 우리 무지렁이들보다 몇 배 더하지 않겠는가?

지금 조정 대신들은 망령되고 구차하게 자기의 안전에만 빠져서 위로는 군부를 협박하고 아래로는 인민을 속여 일본 군대와 손을 잡아 삼남의 인민들에게 원한을 불러오고 임금의 군사를 움직여 옛 임금의 힘없는 백성을 해치려 하니 진실로 무슨 의도이며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지극히 어렵겠지만 일편단심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쓸어 조선 500년의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다. 각하는 크게 뉘우쳐서 대의를 위해 함께 죽는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나. (209-210)

 

어떻든지 박제순은 죽기는 싫었겠지.

어떻게 된 게 무지렁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고 하고, 조정의 대신이란 자는 제 배때지 불리려 나라까지 팔아 먹는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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