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심하게 썩어 가던 사랑니를 빼고 원인 모를 몸살로 앓아 누웠다가 귀신을 봤다.

이를 뽑은 뒤에 점점 오한이 나서 몸을 덜덜 떨면서 방에서 혼자 잤다. 그렇게 앓아 누운 지 닷새 정도 되는 날이었다. 무언가 선득한 느낌이 들어 실눈을 떠 보니 침대 발치에 커다랗고 어두운 형상이 밑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형상은 마치 건장한 남자가 도롱이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도롱이는 짚을 엮어 갓 만든 게 아니라 만든 지 너무나 오래 되어서 짚들이 새까맣게 썩어가는, 짚과 짚 사이에는 더러운 것들까지 끼어있는, 그러니까 살아 있는 인간이 걸칠 만한 도롱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머리 위에 삿갓으로 보이는 것을 쓰고 있어서 그 밑으로 가린 얼굴에 짙은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래서 그 존재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나 혼자 앓아 누운 침대 발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고열과 오한으로 신음하면서 그것의 눈빛을 살피기 위해 뒤척였다. 누구냐, 넌? 내 이 구차한 육신을 거둬가려는 사신이냐, 아니면 이 낡은 집에서 살다가 죽은 원혼이냐.

이상하다. 이곳이 예전에 무덤 위에 지었다는 얘긴 듣지 못했는데. 혹 이삼십여 년을 내 잇몸 속에 파묻혀 겨우 머리만 내놓고 연명하다가 음식찌꺼기와 함께 썩어가던 사랑니의 영혼이냐. 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안 가던 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거스르며 그것을 겨우 노려보았고, 이내 그 음산하고도 슬픈 존재는 아무런 대답도 남기지 않은 채 자기가 올라왔던 방바닥 쪽으로 도로 가라앉으며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것이 그렇게 사라지자마자 내 몸의 오한(惡寒)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녕 나를 '사악한 추위'로 떨게 만든 악귀였나? 아니면 내 낡은 잇몸에서 떠나는 걸 아쉬워하던 동갑내기 치혼(齒魂)이었을까. 죽을 듯이 앓던 이맘때 쯤이면 가끔 그것이 생각나고, 그 썩어가는 도롱이의 감촉이 어떨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이미 한참 전에 그 음습하고 불행했던 월셋집을 떠나왔기에 도롱이 귀신을 다시 만날 방도가 없다.


- 김인선의 괴담을 읽다가 옛 생각에 젖어 쓰다. 2019.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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