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동맹 독본
서동진.박소현 엮음 / 현실문화 / 2020년 6월
평점 :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수카르노, 네루, 주은래, 낫세르가 주축이 되어 미국도 소련도 아닌 세계를 대표하는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민족자결의 정신을 주창하였다.
이들의 가정 큰 성과는 1971년 10월 25일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던 국가가 중화민국을 대신해 유엔회원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것은 제3세계의 커다란 승리의 한 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반민족자결주의자를 인정한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비동맹이란 커다란 대의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비동맹은 시작부터 커다란 함정이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앞자리의 학생들은 공부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뒷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지금의 내가 결코 틀린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비동맹도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절대축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이들은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생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몸부림을 장엄하게 설명하고 있다.
1955년 한국은 사실상 이 회담에 초청을 받아야 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과 북은 초청을 받지 못했다. 대신 북한은 반둥회의 10주년이 되는 1965년 초청을 받아 한국을 외교적인 빈곤함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김일성은 '조선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 남조선 혁명에 관하여'라는 연설을 함으로써 한국 외교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당시 북한은 한국보다 GNP가 더 높았고 제3세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과연 이 지구촌에서 '비동맹'이 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16세기에 최초로 유럽에 나타난 매독이 전세계로 퍼지는 데는 대략 2년의 시간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빨랐던 셈이다. 하지만 에이즈가 처음 나타났을 때 콩고에서 스웨덴의 촌마을까지 퍼지는데는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동맹이란 어찌 보면 유토피아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공평성이다. 우리는 색깔로 혹은 빈부의 차이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 세계의 외침은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면서 모두가 가야만 할 저 먼 곳일 수 있다. 고대인들은 세상을 피라미드처럼 보았다. 피라미드의 정점은 세상의 끝이었고 그 위에 별들의 세계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정점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정점에서 다시 내려와야 하는 피라미드의 공식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비동맹은 이런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영웅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세상의 끝인 '세디르'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고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점은 데이야르 데스탱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천국'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곳은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했기에 너무도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이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