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탑'이란 단편 소설이 있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그 탁월한 전투장면의 묘사와 아시아와 유럽의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상이한 시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탑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해병대는 어느 마을로 진입하여 그 마을의 상징인 탑을 지켜내라는 명령을 접수한다. 해병대원들은 어렵게 전우들을 희생시켜가며 그 탑을 지켜낸다. 전투가 끝나고 탑을 지켜냈다는 포만감이 가시기도 전에 미군 공병대가 도착한다. 그리고 전투에 방해가 되는 그 탑을 제거한다는 내용이다. 해병대원들은 탑을 지켜내면서 소대내에 잠재되어있던 병과 하사관과의 갈등이 우리들의 탑이라는 동질감으로 서서히 해소되면서 전우애로 발전한다. 그 전우애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 바로 탑을 지켜내는 과정이면서 월남인들의 탑이 전우의 피가 흘러내릴 때 마다 우리의 탑으로 변모해 간다. 그리고 그 탑을 지켜냈을 때 그 탑은 이미 월남인들의 탑이 아니라 우리의 탑, 해병대의 자랑스런 탑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우리의 탑을 파괴하는 미군 공병대의 모습은 탑이라는 존재가 하나의 물질에서 정신적인 존재로 무겁게 변모되어 감을 느끼게 된다.

독일작가 만프레드 그레고르의 '다리' 역시 황석영의 '탑'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날, 일곱명의 소년병사들이 고참병 한 명과 다리를 사수하기 위해 도착한다. 이들 일곱명은 이 다리가 존재하는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이들이 이 다리를 사수하러 온 것은 사령관의 시간벌기 작전에 희생양으로 투입된 것이었다. 사령관은 이들 일곱명이 단 5분만이라도 미군의 진격을 저지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5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5분을 저지하면 미군의 습성상 대략 2시간의 여유시간을 벌 수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일곱명의 소년병사들은 5분이 아니라 무려 하루동안 미군을 저지한다. 그러면서 소년병들은 하나 하나 희생되어 간다. 이 과정에서 소년병들은 자신들이 사수하려는 다리가 지도상의 지형에서 우리들의 다리로 서서히 변모해 간다. 소년병들이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령관은 아직도 다리가 소년병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심 놀란다. 하지만 이제 그 다리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결국 사령관은 미군이 재반격하여 다리를 점령하기 전에 폭파하기로 결정하다. 사령관은 공병대를 파견하여 다리를 폭파하려 한다. 그러자 살아남은 소년병들이 격렬하게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소년병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희생당한다. 소설은 소년병들이 하나씩 희생될 때마다 그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가가 보는 이들의 삶은 히틀러라는 괴물이 지배한 독일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의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히틀러 시대의 전형적인 맥락이 없는 삶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면서 다리를 사수하는 소년병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이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났을 때  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한 이 작은 마을의 허위와 뿌리뽑힘이 드러난다. 이들 일곱명 가운데 히틀러 시대의 삶과 다른 전통적인 독일적 삶을 살아온 소년은 한 명 뿐이다. 작가는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40년간 방랑하며 고집스런 세대를 모조리 죽이고 새로운 세대에게 가나안을 주었듯이 여기서도 히틀러시대의 인간형들은 다리를 사수하면서 하나씩 죽인다. 오직 한 명의 생존자만이 새로운 독일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근면과 성실이라는 전통적인 독일적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현재의 독일이 히틀러시대와 단절되어 있으며 사악하지 않고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런 생존자에게 가혹한 삶은 오직 자신들의 전유물인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들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어린 생존자는  침묵을 통해 항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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