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정복사
JURI SEMJIONOW / 경북대학교출판부 / 1992년 9월
평점 :
절판


시베리아의 영구동토대에서는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동토의 땅에 짧은 여름이 오면 지표가 2미터 깊이까지 녹기  때문에 고층건물처럼 덩치가 큰 건물을 지으려면 커다란 콘크리트기둥을 수없이 박아 놓고 1년을 기다렸다가 그 위에 건물을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얼고 녹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건물이 가라앉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얼음과 추위만이 가득차있는 시베리아는 무한한 자원으로 인해 일찍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풍부한 모피로 그다음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 땅은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자연의 거칠음 때문에 개발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삶의 조건이 가혹한 땅으로 이주를 결심하는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사람들을 이 동토의 땅으로 보냈던 것이다. 이른바 '정치범'이라고 불리운 죄수 집단들이 이 혹한의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치범들이 시베리아 개발에 투입되면서 이 지역은 과외의 소득을 얻게 되는데 당시의 가장 급진적이며 반항적인 사상이 이 동토지대에 유입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유럽인들의 문명생활-상대적인 것이지만-이 따라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시베리아는 가장 추운 지대이면서 사상적으로는 가장 뜨거운 지대였고 문화적으로는 부드러운 곳이었다.

 시베리아의 개발은 러시아가 처한 정치적상황의 산물이었다. 일찍부터 러시아는 대양으로 진출하기위한 부동항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위해 부단한 남진정책을 고수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발트해와 흑해라는 한정된 지역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이들 바다는 손쉽게 봉쇄당할 수 있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러시아는 이 결과 서쪽과 남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들에게 남은 곳은 동쪽이었다. 이 험난한 부동항을 얻기 위한 개척의 역사가 바로 시베리아 개발사인 것이다. 그러기에 시베리아 개발에는 낭만적인 개척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자비함과 눈물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 도착하여 얼지 않은 항구를 발견하였을 때 그들은 이곳을 동방의 정복자-블라디보스톡-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땅이란 사실이다. 면적만도 미 대륙과 맞먹는 이 땅덩어리에 고작 2천5백만의 인구가 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개발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을 한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베리아 개발의 주역인 코사크와 정치범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시베리아의 원주민은 아메리카의 인디안과같은 조연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책을 읽어가면 시베리아가 단순히 '자원의 보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베리아는 절대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일부를 허용-이를 개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할 뿐이란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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