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혁명과 영웅들
엔리케 크라우세 지음, 이성형 옮김 / 까치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80년대 멕시코 修士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멕시코 혁명으로 옮겨갔다. 물론 가톨릭 수사인 그분은 멕시코 혁명을 좋게 볼 수 없는 입장이었다.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가톨릭이 얼마나 박해를 받았던가... 그럼에도 멕시코 혁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에밀리아노 자파타라는 이름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 멕시코 혁명-솔직히 혁명인지도 몰랐다-의 가장 대중적인 인물은 판쵸 빌라Villa-이 철자가 비야로 읽힌다는 것은 아주 후일에야 알았다-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것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더러운 그런지 룩에 솜브레로를 눌러쓴 도적 이상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사님은 비야보다는 자파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자파타의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자파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었다. 그만큼 80년대에 멕시코 혁명은 우리에게 낮선 화두였던 것이다.

이 책은 멕시코 혁명의 가장 중심에 서있던 일곱사람의 간단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일곱명의 이야기를 사마천의 史記처럼 기전체의 형식을 취함으로서 시간의 순서보다는 인물의 행동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일곱명의 혁명아들이 알게 모르게 역사 속에서 스쳐지나가고 만나고 결별하는 과정을 통해 멕시코 혁명의 본질과 완성 그리고 변질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각 인물에 할애하는 지면은 적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혁명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멕시코 혁명은 근 30년에 걸친 지난한 권력의 역사이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들과 교조적인 사람들이 엉켜붙어 기존의 체제를 뒤엎기도하고 다시 회귀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가는 과정의 역사이다. 물론 이런 단순하고 교과서적인 희망사항은 68년 멕시코 월드컵을 계기로 허상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 허상이 드러나기 까지 절대 다수의 민중들이 원했던 길이 무엇이었는가를 일곱명의 혁명아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봉기한 마데로서부터 헌정질서를 붕괴시키지 않기 위해 '제도혁명당'이란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제도화시킨 카르데나스에 이르는 과정은 혁명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마데로, 판쵸 비야, 에밀리아노 자파타, 알바로 오브레곤, 플루타르코 카에스Calles-철자에 주의할 것-라자로 카르데나스의 이름은 민중들이 이들 이름 앞에 '거룩한聖Saint'이란 수식어를 붙인다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지도자의 이름에 새겨진 숙명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 생각거리이다.

평생 가난을 숭상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마데로의 삶, 죽음에서 부활한 라자로의 삶과 카르데나스의 이야기, 풀르타르코 카에스란 이름 사이에 숨어있는 엘리아스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의 이미지는 혁명아들의 내면적인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게 맞물려 있다. 판쵸 비야와 에밀리아노 자파타는 항우가 제왕이 아님에도 사기의 本記에 기록된 것처럼 이들 역시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충분히 이들의 반열에 오를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들이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혁명의 심리서라고 할 수 있다. 혁명가들이 평생 안고 살아야만 했던 개인적인 콤플렉스가 어떻게 혁명의 역사에 투영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콤플렉스가 사회적인 모순과 결합되어 어떻게 변형되고 그것을 극복해가려하는 과정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혁명의 공약들은 새삼 혁명에서 지도자의 자질을 생각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만큼 짧은 개개인의 삶 속에 수많은 역사의 이미지와 상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soldadera란 혁명기의 女性戰士를 일컸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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