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침묵 (양장본)
베르코르 지음, 조규철 옮김 / 범우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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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마지노선을 무력화 시키고 벨기에를 돌아 프랑스를 2주 만에 굴복 시켰을 때 프랑스인들은 독일의 반칙을 저주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한 없이 슬퍼했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라인 강 저편의 독일은 야만인이었고 문화적 열등생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문명은 결코 야만에 굴복할 수 없다고 자신들을 합리화 시켰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 우월감은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었다. 독일은 승리했고 프랑스는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패배한 프랑스는 독일의 승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독일의 군화 아래 짖밟혀 있는 프랑스가 있을 뿐이었다. 독일은 끊임없이 프랑스를 달래려고 하지만 프랑스는 거절하였다. 독일은 프랑스의 키스를 받아야 인간으로 환생 할 수 있는 야수bete이기에 프랑스를 신사적으로 다루려 노력하였다. 독일의 끊임없는 구애는 프랑스를 조금 흔들리게 한다. 하지만 독일의 구애가 뜻하는 저쪽의 진실을 알게 될 때 프랑스는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독일 장교 베르너는 끊임없이 저 옛날 독일과 프랑스가 하나였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음악과 문학을 이야기 한다. 베르너는 정말로 프랑스와 독일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진실성은 침묵으로 일관하던 화자와 그의 조카 딸의 마음을 희미하게 흔들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치묵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굴복하려 할 때 베르너가 파멸하고 만다. 베르너는 독일의 정책이 자신이 믿었던 것처럼 독일과 프랑스의 진정한 협력이 아니라 프랑스의 철저한 파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을 느꼈을 때 베르너는 그 동안 자신이 주장했던 음악과 문학과 역사의 동일성이란 진실이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전초가 아니라 프랑스의 완전한 굴복을 위한 함정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베르너는 자신의 선의가 프랑스인의 파멸에 일조함을 알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것은 러시아 전선을 자원하는 것이었다. 베르너가 러시아로 가기 위해 그동안 지냈던 프랑스 인의 집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조카가 나즈막히 인사한다. 그 나즈막한 울림은 히미하지만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을 확인하는 표시인 것이다. 바다는 깊고 넓다.표면이 흔들리고 솟아오를 때도 심연 저 깊은 곳은 언제나 잔잔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 깊은 바다의 침묵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진정한 저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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