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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기극 - 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이야기
한스 트랙슬러 지음, 정창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감추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동화에 나오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백설공주'에서 언뜻 드러나는 아이의 유기,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감금의 문제가 그렇다. 물론 이 외에도 동화 속을 산책하다 보면 수많은 잔인한 일들이 언어의 순화를 통해 은폐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동화의 시작을 알리는 '옛날 옛적에...'라는 관용구가 사실은 은폐의 가장 손쉬운 도구라는 점이다. 모든 진실은 이 관용구를 거치게 되면 사실성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옛날 옛적에...'라는 관용구의 뒷편에 뭍혀있는 진실 찾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 진실 찾기의 대상으로 유명한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을 선택한다.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뒷편에 감추어진 진실을 차례 차례 접근해 가며 폭로한다. 그 결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부셔버린다.
저자는 이 고정관념을 부수기 위해 역사적인 실체와 고고학적 사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의 접근방식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형제가 동화의 내용을 채록할 시기에도 이야기에 대한 진실성은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진실이 왜곡. 변형된 것은 그림 형제가 채록한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뭍혀버린 진실은 그림 동화 속의 내용을 말 그대로 동화로 머물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림 형제가 채록한 이야기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사소한 진실을 남겨두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즉 그림 형제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무시해도 될 성질의 것이었지만 후대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들어가는 열쇠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원 제목은 'Die Wahrheit uber Hansel und Gretel'이다. 번역서의 '황홀한 사기극'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번역제목과 원서의 제목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원서의 제목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저 편에 있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면, 번역서의 제목은 그림 형제의 의도를 이야기하고 있는것 처럼 보여진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우리들에게 고정관념이 붕괴되는 그 지점을 보여준다. 바로 사고의 '그라운드 제로'를는알려준다. 이곳은 과거의 모든 기억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 공허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동화 고고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그라운드 제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