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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 피귀르 미틱 총서 2
리즈 앙드리 책임편집, 박아르마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4월
평점 :
로빈슨 크루소에게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Crusoe는 어찌보면 Cruisado와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크루이사도는 '십자군'이란 의미이다. 로빈슨은 야만에 대한 문명의 십자군이었을까? 18세기 유럽인들의 이데올로기가 로빈슨이란 인물을 통해 하나의 '신화'로 윤색되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식민주의는 19세기의 서구인들에게 하나의 영감을 불러있으켰다. 로빈슨은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유럽의 이상 혹은 종교. 정치적인 바램을 창시한 입법자와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빈스 크루소의 이야기가 출판되자 이 책은 급속히 서구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섬에 고립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로빈슨의 모습은 서구인들이 하나의 모델로 생각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인들이 로빈슨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가 태어난 나라와 두 개의 물방울처럼 꼭 닮은 제2의 조국을 섬에 재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인들이 로빈슨에게서 예언자 요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세속적인 로빈슨은 난파되어 섬에 도착한 직후 '소명'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것은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철저하게 정화된 것처럼 로빈슨 역시 난파선에서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로빈슨은 요나와 같이 속죄의 과정을 밟으며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 신성화된 혹은 사유화된 섬은 철저하게 유럽식으로 개조된다. 로빈슨은 섬을 외적으로 변화시킴으로 자신이 떠나온 사회와 최대한으로 가깝게 하려한다. 그러면서 로빈슨은 섬이란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맞춤으로서 자신이 변화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무인도의 역설을 통해 로빈슨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인간화의 첫단계를 수행하는 것이다.
로빈슨이 수행하는 인간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섬을 하나의 정원으로 꾸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국식 정원은 자연친화적이기보다는 철저하게 자연을 극복하는 것으로 꾸며진다. 로빈슨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거주지 주변에 조성한 것은 청교도적 전통에 입각한 정원이란 점이다. 여기서 정원은 철저하게 에덴동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로빈슨은 에덴동산의 개척자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조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 아담과 이브를 존재하게 하였다. 이 둘은 창조자의 모상이라는 점이다. 즉 이들 인간을 통해 창조주의 사업이 지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빈슨의 경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난 방드르디-프라이데이-는 로빈슨의 모상이라기 보다는 그의 삶의 와중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러기에 식인종인 원주민에게 방드르디-금요일-란 이름을 붙인 것은 그 날의 기념과 비슷한 것이다. 즉 방드르디는 존재가 아니라 기념으로 그의 옆에 있는 것이다.
이런 로빈슨의 신화는 미셀 투르니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다. 현대 세계는 더 이상 무인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무인도는 고립과 고독이라는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 섬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둘러쌓인 섬이다. 투르니에는 이런 현재의 섬으로 독일의 터키인, 미국의 멕시코인,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의 예를 든다. 이들은 독일, 미국, 프랑스에 살면서도 결코 독일인이 미국인이 프랑스인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언제까지나 터키인이고 멕시칸이며 불법 이민자일 뿐이다. 이들이 바로 존재가 아니라 기념으로 존재하는 현대의 방드르디인 것이다. 그러기에 현대의 로빈슨은 어떤 물질적 장소에 가지 않더라도 언제고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