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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ㅣ 신화 종교 상징 총서 10
폴 벤느 지음, 김운비 옮김 / 이학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참 독특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그리스인들 자신은 신화를 믿었을까?'하고 물어 본다. 그러면서 그는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를 관통한 언어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의 역사, 정치, 경제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언어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 언어를 통해 판단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언어와 대화를 통해 긍정할 것이 있으면 긍정하고 부정할 것이 있으면 스스로 논거를 대보라는 식이다. 그렇다보니 이 책은 우리들에게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옛날에 이러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영향으로 이러할 것이다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시대에 발언했던 말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들의 신화'를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하나의 그림이 생각난다. 한국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손이 악수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 밀가루 부대. 이른바 PL480호(잉여농산물법 480호)가 그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480호의 원조를 벗어난 시기는 세계 은행의 차관 졸업국이 된 1995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은 지금의 세대들에게 하나의 신화로 보여질 것이다.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 이런류의 신화는 70년대(공산당이 싫어요), 80년대(탁 치니 억하면서 죽었다), 90년대(IMF 음모론), 00년대(386의 신화)를 거치면서 나타났다 사라졌고 혹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게임을 통해 신화의 진실 혹은 허구를 밝혀내려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한 허구일 수 없다는 점이다. 허구성이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현실과 허구의 차이는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차이는 우리 안에 있으며 주관적으로 누가 거기서 허구를 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폴 벤느는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00년대에 들어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의 대립은 과거를 보는 관점에 대한 대립이란 점이다. 즉 폴 벤느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신화에 대한 진실과 허구를 밝혀내려는 것이란 점이다. 이 대립은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라는 데서 우리는 역사를 신화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사실 허구는 진실의 대립항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의 부산물인 것이다. 또한 신화는 일종의 정보이지 하늘의 계시나 신비한 비밀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화란 정보를 통해 얻는 견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며, 그 견문이 적용되는 분야는 논쟁이나 경험적 작업에 해당하는 지식분야라는 점이다.
모든 지식은 이해관계적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진실과 이해관계는 같은 것의 다른 두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실천하는 행위는 자기가 행하는 것을 사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해관계가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신화는 믿고 안믿고의 관계를 떠나서 나와 너, 우리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합의되는 것이 아닐까.
** 구판의 두 분 서평도 읽어보시면 더 많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