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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김종철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작 도이처는 트로츠키에 관한 저서를 세 권 썼다. 첫번째가 '트로츠키, 무장한 예언자(1954)' . 두번째가 ' 트로츠키, 비무장의 예언자(1959)' 그리고 세번째가 '트로츠키, 추방당한 예언자(1962)'이다. 이 가운데 첫번째가 본 번역서이다.
사실 트로츠키만큼 많이 언급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혁명가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스탈린은 승리자, 트로츠키는 패배자라는 등식이 주는 무의식적 반응인지도 모른다.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이후 트로츠키는 스탈린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인민의 적', '배신자'라는 공식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러시아의 공산당 역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즉 레닌의 사후 후계자로 각광을 받던 그가 스탈린의 기습에 의해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이후 그의 모든 공적은 러시아 공산당 역사에서 삭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승리자인 스탈린은 트로츠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여기에는 당시 찍혔던 사진과 그림의 왜곡도 포함된다-함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이후 공산당에서 트로츠키주의자란 인민의 적이며 배반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의 역할을 차지하고서라도 트로츠키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러시아 혁명의 많은 부분을 알 수 없게 된다. 트로츠키가 숙청당한 이후 트로츠키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스탈린이 위치하게되면서 스탈린이 혁명의 구세주로 왜곡되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트로츠키가 赤軍으로 불리우는 소비에트 군대를 조직하는데 성공함으로서 러시아혁명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진정한 권력의 힘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트로츠키의 이런 시도가 좌절되었거나 실패하였다면 러시아혁명의 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기술되어야 할지 모른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반대하여 '영구혁명론'을 주장하였다. 즉 전세계의 모든 프로레타리아들이 결속하여 전세계 프로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하거나 혹은 적어도 결정적 생산력을 집중할 때까지 혁명을 영속화하자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런 논리는 일국사회주의혁명론을 주장한 스탈린과 대립하게 된다. 물론 그의 영구혁명론에도 비판의 근거는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혁명을 공산당에 의한 단독정권 확보와 중앙집권적 국유화, 계획경제의 수립 수준이 아니라 가족관계와 도덕 및 습관혁명으로까지 심화시키려한 과정은 의미있게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 사실 초기 러시아 혁명이 서유럽의 지식인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회주의혁명의 미래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 서구의 지식인들이 스탈린 일당독재가 확립된 이후 러시아를 방문한 뒤에 혁명에 대하여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트로츠키의 이런 미래적인 이론은 이후 빛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소련 공산당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로마 가톨릭이 이단에 대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하면서 자기 쇄신을 거듭함으로서 종교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라 하겠다.
사실 트로츠키를 사회주의자, 혹은 실패한 좌파로 본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가 실현하려고 한 사회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약간의 고민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는 혁명의 완결로 착취와 억압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꾼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이런 이상은 스탈린을 필두로한 현실적 권력주의자들의 눈에는 웃기는 것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이상이 있기 때문에 현재는 미래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