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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일상 생활
자닌 오브와예 지음, 임정재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4년 12월
평점 :
어느 나라의 역사를 막론하고 고대사를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록의 散失은 예외로 하더라도 그 시공간 상의 괴리감으로 인해 더욱 그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에서는 고대사를 정확하게 규명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자국의 고대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고대사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밝히는 과정이 바로 민족의 정체성을 P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인도의 사학자인 람 샤란 샤르마는 <인도 고대사>에서 인도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유물, 주화, 금석문, 문헌자료, 외국인의 기록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유물과 함께 민족의 역사의식을 거론한다. 그러면서 샤르마 교수는 서구인들이 인도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 자신들과 같은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인도인들의 역사의식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하였다는 점을 반박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역사를 기록했지만 그리스인의 방식으로 기록하지 않았을 따름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대신 인도인들은 뿌라나라 불리우는 종교문학의 형태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유대인들도 이런 방식을 이용하여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뿌라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기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술방식은 미래시점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이 결과 뿌라나에서는 역사의 필수조건인 변화의 개념을 담을 수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인도의 종교문학으로 기록된 역사를 통해서는 '역사의 기억을 조직해서 현재를 고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를 서구식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준다는 것은 어찌보면 인도 역사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뿌라나식의 역사기술은 인도의 전체모습을 보여주는데 미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인도의 역사를 서구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절충적인 방식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인도의 역사를 헤로도투스의 방식으로 다시 서술한 것처럼 매끈하다는 점이다. 1부에서는 인도인의 총체적인 삶을 2부에서는 개인과 집단에 대해서 3부에서는 황궁과 귀족의 생활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인도의 고대 생활을 지금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저자가 인도의 고대를 연구하면서 본 인도의 문헌들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거를 미래의 시점에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도인들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종교문학적 서술로 기술된 느리고 변화감이 없는 인도의 고대사 문헌들을 재구성하면서 전체적으로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 활력은 인도가 카스트제도라는 족쇄에 감싸있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보통 우리들은 역사속의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라고 본다. 그래서 후진국을 볼 때 그들의 과거 역시 그랬을 것이란 가정을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고대인들의 삶을 읽다보면 이런 역사적 가정이 가끔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인도의 종교적, 관습적인 것들을 읽을 때면 고대와 현재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고대의 인도와 현재의 인도가 이론과 원칙과 실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