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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 유다는 예수라는 인간을 따라 다니며 그를 혁명가로 생각하였다. 예수 벤 요셉이라는 사람을 유다는 '체 예수'로 생각하였다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예수를 배반함으로서 그의 신통력을 확인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매를 맞으며 침묵하는 무력한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따라 다닌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믿으며 죽었다. 반면 한 인간은 그를 세번이나 배반했지만 그의 존재를 진실로 확신한 인물이었다. 그는 불타는 로마를 벗어나 화급하게 도망치던 순간 한 사람이 불타는 로마로 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지금 도망치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네번째 배반의 유혹을 벗어나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빙점을 읽으면 이렇게 두 가지의 신념이 교차하게 된다. 성경으로 읽어서 알게된 이론적인 사랑과 실천적인 사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아주 원초적인 말을 막연히 수행하고자하는 이론적인 인간 쓰찌구치 게이조의 인간적 오만은 우리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의 차이점은 과정의 두려움에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겠지만 맞는 순간이 두려운 것이지 맞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론은 그 과정의 두려움보다는 맞는 두려움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을 실천하려는 의사 쓰찌구치 게이조는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 과정의 두려움을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정말로 원수를 사랑했다기 보다는 원수를 길렀을 뿐인 것이다.
가정이란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는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다져진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사랑과 신뢰라는 두 축이 작동하는 순간 가정은 원활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랑과 신뢰는 부부의 결합에 의해 유지되는 불안한 것이라는 점이다. 흔히 부부간을 "無寸"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와 아들 간은 1촌, 형제 간은 2촌이지만 남편과 아내는 촌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그만큼 부부 사이의 관계는 신뢰와 사랑이라는 무형에 의해 존재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부가 헤어지면 남이 되는 것이다. 그 신뢰와 사랑이 붕괴된 지점에 남게 되는 것은 불신과 증오인 것이다. 그 불신과 증오의 감정은 누구의 몫이 될까.
제목의 "氷点" 또한 상징적이다. 우리는 수학시간에 기원전과 기원후를 배울 때 이런 식으로 배웠다. 기원전 100년, 99년, 98년... 3년, 2년, 1년, 기원후 1년, 2년, 3년.... 하지만 온도계의 경우는 아주 다르다. 영상 10도, 9도, 8도... 2도, 1도, 0도, 영하 1도, 2도, 3도... 역사에는 0년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온도에는 0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양수와 음수에서도 중간에 0은 존재한다. 하지만 0은 양수도 음수도 아닌 존재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경계선일 뿐이다. 역사에는 경계선이 없다. 그것은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타당할 듯 싶다. 하지만 감정에는 경계선이 존재하는 법이다. 바로 그 경계선이 빙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