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예술의 역사 - 고대와 중세의 패러디 이미지
샹플뢰리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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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프랑스는 제2 제정기였다. 이 당시 프랑스를 풍미하고 있던 예술 사조는 소설에서는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미술에서는 구스타프 꾸르베와 같은 레알리즘적인 작품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런 사조가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된 것은 얼마전에 처음 등장한 사진술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플로베르의 시골 하층 계급의 위선적이면서 속물적인 삶을 무자비하게 해부한 작품이나 회화작품에 사진과 같은 경향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표현한 미술 역시 그러하였다. 즉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고고학의 발전을 들 수가 있다. 당시 태동하고 있던 고고학의 열풍은 아무리 하찮은 것에서도 어떤 상징성을 찾고자하던 고고학자들의 열망이 일반인들에게도 전염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결과 전통적이면서 정통적인 예술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에까지 예술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 즉 숨어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 숨어있는 공간은 "위대한 예술이 거부한" 곳이었다. 그 외면한 곳은 신화와 일반 민중의 감정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곳이었다. 또 이 세계는 교회와 지배계급으로부터 외면당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 숨겨진 세계를 이 책은 드러내고 있다.

Caricature는 라틴어 caricare와 연관이 있다. 이 단어는 수레를 의미하는 carrus와 동사 어미인 -care가 결합된 것으로 짐을 많이 실은 수레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단어가 과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전용된 것이다. 과장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몫이었다. 고대와 중세의 벽화나 그림을 보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이 쉽게 드러난다. 지배자는 크게, 피지배자는 작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배자의 과장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지배자의 과장을 보여준다는 점이 신선하다. 피지배자의 과장은 어떠하였을 까. 피지배자가 그리는 그림은 독자적인 것이기 보다는 지배자의 주문이나 요구로 그려지거나 조각되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주문제작을 하는데 있어서 피지배자가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과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피지배자들은 그들의 과장을 아주 은밀하게 집어 넣었다는 점이다. 복잡한 그림의 한 구석에 혹은 조각의 무리 뒤 편에 아주 소심하게 새겨넣은 그림과 조각의 모습은 "저항이 숭고하고 순수해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자와 과장의 세계는 웃음으로만 넘어갈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여기에는 피지배층의 고통과 원망과 희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갈망하는 세계 혹은 고통으로 점철된 바로 그 순간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 풍자의 세계는 어쩌면 가장 진솔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표현의 비속함이나 조잡함은 사변적인 예술이라는 입맛에 맛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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