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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 - 지도에 없는 나라로 떠나는 여행 안내서
산토 실로로 지음, 전지나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문화라는 것이 경제적인 척도로 이야기되는 것이라면 특히 그렇다. 이 책은 경제적인 면에서 이런 점을 완벽하게 말하고 있다. 사실 미국적인 삶은 이 세계의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는 없다. 광대한 땅과 높은 경제력은 그들의 삶을 그 어떤 국가들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는 글쓴이들의 미국적 풍요로움이 여유롭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이런 풍요로움은 텔레비전에서 일상적으로 천박하게 묘사되는 어떤 장면을 연상시킨다. 동남아시아 혹은 아프리카 문화탐방이라는 미명하에 문화적 밑바탕없이 무작정 달려가 문화는 탐방하지 않고 문화비하를 일삼는 그런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몰바니아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그 가상의 나라를 통해 자신들이 바라보는 제3세계의 모습을 혹은 동구제국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심각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웃음은 곧잘 부메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무심코 웃고 즐기는 가운데 Chikoja(중국+한국+일본을 혼합한 가상의 나라)라는 나라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때 우리들은 이런 종류의 책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을까. 아마도 대답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웃자고 만든 책에 대해서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했지만 책의 쪽수를 넘기면 넘길 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지루한 생각이 들었다면 새 책에 대한 실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각의 불변이 너무나 거스린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래 전에 김승옥 선생의 <霧津紀行>과 황석영 씨의 <三浦로 가는 길>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두 지명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었다. 하지만 이 지명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는 지명이었다. 그래서 해남과 강진 쪽으로 여행을 하면서 꼭 그 중간 어딘 가에 霧津이라는 지명이 나타날것만 같아 빠르게 지나치는 표지판을 뒤돌아보며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삼포 역시 그런 지명이었다. 무작정 경부선을 타고 한없이 내려가다 보면 그 열차역의 끝 언저리쯤에 한적한 그러나 한창 개발중인 마을이 나타나면 그곳이 삼포처럼 느껴지는 그런 지명이다. 그래서 나는 三浦와 霧津이 실제한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하지만 몰바니아란 지명에는 그런 느낌보다는 가상의 냄새만이 진하게 풍길 뿐이다. 몰바니아의 전체 지도를 보면 마치 해체되기 전의 러시아를 축소해 놓은듯하고,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불가리아와 터어키, 약간의 아랍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런 가상의 국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떤 사실감보다는 비하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라는 제목처럼 우리들은 몰바니아로 갈 수 있을까?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몰바니아는 재치만 있을 뿐 <霧津>과 <三浦>처럼 인간의 따스한 체취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재미가 이 책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배부른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