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사신이 돌쇠에게 손을 들어 원을 그려보이자 돌쇠는 서슴없이 손을 들어 네모를 그려 보였다. 이에 중국사신은 놀라....>

깊이에의 강요를 읽다보면 이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깊이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가 떠오른다. '파는 사람이 경쟁하면 가격은 내려갑니다'라는 카피의 반대편에는 '사는 사람이 경쟁하면 가격이 올라갑니다'라는 사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깊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여기서 쥐스킨트가 다루는 세계는 착각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체스의 고수와 도전자는 그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고수는 언제나 인습에 젖어있다. 그에게 있어서 체스판의 첫 수는 언제나 똑같은 것이다. 첫 수는 어쩌면 관습이면서 관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전자에게 있어서 그 관례와 관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도전자가 던진 아무것도 아닌 수에 고수는 머리를 쥐어짜야만 하는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인습과 관습은 손잡이가 안에만 달린 문과 같은 것이다. 밖에서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문을 부술수밖에 없다. 문을 부수지 않고 열 수 있는 길은 안에서 여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안에서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이 있어야만 한다. 쥐스킨트는 그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만을 냉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강요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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