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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당나귀
아풀레이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시와사회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조셉 켐벨은 아시아와 유럽의 접점을 이란으로 상정하였다. 켐벨은 이란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로 삼았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신화의 패턴에 따른 구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런 구분은 이란을 통과한 유럽의 신화가 인도를 거치면서 아시아적으로 변화하고, 반대로 아시아의 신화가 인도를 거쳐 이란에 닿음으로서 유럽화되는 것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한 학설로 이해될 수 있다. 켐벨은 중간지대인 인도를 아시아로 잡았다는데서 학자로서의 깊이와 넓이의 탁월함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황금당나귀>라는 작품을 읽다보면 유럽의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의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황금당나귀는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같은 형식의 이야기이다. 다만 여기서는 신이 인간의 세계로 내려오기 위하여 선택한 변신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의 세계로 떨어지는 변신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이 인간으로 인간이 짐승으로 변신하는 것은 등급의 하락이라는데서는 일치할 수 있지만 말이다.
사실 역사 속에서 개인이 집단을 눌러 이긴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개인의 역사는 집단의 역사에 비하면 일천한 역사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황금당나귀는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이한 작품이라 할 수있다. 전체가 개인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시절에 한 사나이가 당나귀로 변하게된다. 이것은 그 당시의 생활관습으로 보았을 때 사회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죽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이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당나귀로 변모한 사나이는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된다. 그 경험의 내부적인 모습은 인간의 사고이지만 외적인 경험은 당나귀라는 차이에서 오는 모순은 어쩌면 개인과 집단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금당나귀는 분명 유럽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인도를 거쳐 아시아로 건너오면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변모하였다. 황금당나귀의 아시아판은 무엇일까? 게으른 사나이가 소 혹은 말로 변하여 죽도록 고생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짐승으로 변한 사나이는 그 고생을 면하기 위해 파를 먹고 죽으려 하지만 그 죽음은 다시 인간으로 변하게하는 하나의 장치였다는 사실이다. 황금당나귀가 신의 뜻에
따른 인간의 굴곡진 모습이라면 동양의 이야기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응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