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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뎃사 파일
프레드릭 포사이드 지음 / 문조사 / 1994년 7월
평점 :
품절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현실과 허구의 접점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이런 모호함은 그 소설을 읽어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예로 용병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의 개들'이란 작품은 도입부의 나이지리아 내전임이 분명한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흑인 지도자는 나이지리아 반군의 지도자였던 오주쿠 장군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은 캣 샤농이라는 가상의 용병-이 용병 역시 당시 유명한 용병의 혼합인물이지만-이 개입함으로서 소설적 허구와 현실이 접목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포사이스의 소설은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그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소설속의 허구로 빠져버릴 위험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열렬한 지지자와 냉소자로 구분할 수 있다.
'오데사 파일' 역시 이차세계대전 이후 실제로 존재하였던 나치전범들을 도와 국외로 피신시킨 조직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이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행한 과거사 청산의 이야기도 심도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사의 청산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 일인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포사이스의 소설은 하나의 추리소설, 혹은 스파이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시대의 단면을 조명하는 고발 소설의 일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게된다.
사실 포사이스의 이런 현실적 감각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No Comebacks' 이후 문학적 감각으로 바뀌어가는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포사이스를 생각할 때 내 개인적으로는 '자칼의 날' '오데사 파일' '비아프라 이야기'-정말 이 책의 원서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전쟁의 개들' '악마의 선택' '제4의 공포'까지가 그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설이라고 보고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를 제일 좋아하지만...
사실 영국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추리소설이나 스파이 소설은 그리 낮선 세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머셋 모음이라든가 그레이엄 그린 같은 작가들 역시 추리와 스파이 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이들 작가들에게 이런 소설의 분야는 외도가 아니라 자신의 소설 세계를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용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만큼 폭이 넓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데사 파일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비틀즈의 초기 모습은 아주 상징적인 대비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뉴 프론티어라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미국을 창조하려던 젊은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그보다 더 앞으로의 세상에 영향을 끼칠 비틀즈가 탄생하는 대비는 아주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독일의 과거를 상징하는 솔로몬 타우버의 수기가 겹치면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는 극히 냉소적인 시각 역시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솔로몬 타우버의 수기는 이후 수많은 이런 류의 소설에서 숱하게 인용되는 목록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이 수기가 저자의 상상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취재를 통해 얻은 극히 사실적인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포사이스의 소설은 에르네스토 만텔이 '즐거운 살인'에서 기술했듯이 현세의 부르조아층의 욕구불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즉 포사이스의 소설은 당시 서구인들에게 하나의 무협지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만의 상상은 이래서 즐거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