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신화 1
조철수 지음 / 서해문집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원전 3200년경에 두 강 사이-메소포타미아-에서 설형문자를 사용한 문명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수메르 문명이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진흙 덩어리에 첨필로 눌러 찍는 방식으로 문자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변형시키지 못하도록 불에 굽거나 말려 보관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손실될 뻔했던 수많은 기록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자를 해독함으로서 지금으로부터 5천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들을 우리들은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수메르문명의 기록인 점토판들이 발견되기 이전에 이 시대를 규정하는 유일한 기록은 구약성서였다. 하지만 성서는 역사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종교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는데는 많은 부차적인 자료가 필요하였다. 그런데 수메르의 점토판이 발견됨으로서 오히려 구약의 빈약한 기록의 많은 부분을 채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수메르 점토판에서 발견된 30여편의 신화와 15편의 영웅전, 그리고 5백여편에 달하는 찬양시와 수십편의 잠언집, 30여편의 우화 등은 그 시대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그 지역과 주변지역의 문화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수메르 문명의 영향은 당대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를 거쳐 이들이 점령한 힛타이트, 우가리트, 히브리와 고대 그리스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고대 그리스에 이르는 지역-이 지역이 당시에 곧 세계였다-에 수메르의 신화가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수메르의 신화는 다신교적인 색채가 아주 강하였다. 이들의 신화에 보면 신이란 <신들>로 표현될 만큼 자연의 고유한 특성이 각각의 신들에게 인격으로 부여됨으로서 자연스럽게 다신교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이후 수메르 제국을 이어받는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서도 불변하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은 정복자의 토착신이 차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의 신으로 혼합되어 부족의 신에서 지역의 신으로 그리고 제국의 신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메르적인 신의 성격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민족은 그리스였다. 이들은 수메르적인 신의 세계를 그대로 올림포스라는 곳에서 창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 역시 수메르의 신화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런 다신교적인 영향에서 오직 히브리 민족만이 비껴나갔다. 히브리 민족은 다신교 대신 일신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신의 문제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사실 구약 성서의 앞부분을 보면 히브리인들이 주변 세계의 신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이를 어떻게 자신들의 성격에 맞는 일신교적 유일신으로 변형시켰는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은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신과의 직접적인 계약을 통해 선택된 민족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 결과 수메르적인 다신교는 히브리인들에게 유일신적 일신교로 바뀌게 되었다. 히브리인들의 이런 변형은 당시의 세계에서는 아주 희귀한 예였을 뿐이다.

그리고 수메르 문명으로 시작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명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들의 언어라는 점이다. 우리들은 이들의 언어를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번역된 것을 영어나 다른 언어를 통해 중역한 것을 읽어왔던 것이 그간의 실정이었다. 이런 중역의 문제는 메소포타미아적인 사고와 그리스적인 사고가 아주 상이하다는데 있는 것이다.

이들의 동사는 언제나 움직임이나 작용을 표현한다. 우리에게 <들에 나무가 서있다>라는 표현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다. 하지만 서있는 것이 일어섬이나 혹은 자리를 취한 종료나 끝 또는 그 결과라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이들에게 고정된 존재는 언제나 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서있다라는 동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의 혹은 정지상태로 넘어가는 동작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런 여러가지 고정점의 변화로 인해 수메르 신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신화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욱 세심한 고찰이 있어야만 한다. 즉 단어 하나 하나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해의 폭보다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설명의 폭이 굉장히 넓게 포진되는 것이다.

수메르 신화를 읽어가면서 단순히 이들 신화가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라는 단순한 이해보다 이들의 사고방식이 이후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메르 신화는 읽어볼 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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