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에코의 즐거운 상상 2
움베르코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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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쿠스는 자신을 "존엄한 자" 즉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라틴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서명도 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이런 무지를 똑똑한 인물을 기용함으로써 보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카시오도루스였다. 카시오도루스는 야만인들을 교화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의 이런 노력은 테오도리쿠스의 딸인 아마라슨타를 교화시킬 수 있었다. 이 결과 야만인이었던 그녀는 얼마 후에 라틴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그녀는 당연히 테오도리쿠스의 후계자이며 자신의 아들인 아타나리쿠스를 말에 올라타는 것보다 우선 먼저 책상앞에 앉게하였다. 일견 카시오도루스의 노력을 빛을 보는듯이 보인다. 하지만 고트족의 친위병들과 귀족들이 왕에게 항의를 한다. "용감한 전사를 기르는데 읽고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카시오도루스는 이들의 말에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문화의 힘이 야만을 이길 날이 꼭 올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테오도리쿠스에게는 카시오도루스 외에 보에티우스라는 자문관이 하나 더 있었다. 보에티우스는 테오도리쿠스에게 시간과 천체의 움직임을 나타내보여주는 시계를 만들어 받쳤다. 테오도리쿠스는 보에티우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보에티우스는 그 편지를 자신의 동료인 카시오도루스가 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에티우스는 이들이 야만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 백년은 족히 지나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에티우스는 초조했다. 이들이 로마가 이룩해 놓은 문명을 완전히 파괴한다면 인류는 문명의 암흑속에서 고생해야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는 콘스탄티노플로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그것은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이곳 라벤나로 침공해 오도록 요청하는 반역의 서신이었다. 하지만 이 어설픈 역모는 발각이 되고 보에티우스는 사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갇힌다. 보에티우스는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기 전의 마지막 시간을 할애하여 현재 지상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허무함을 철학의 가치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선bonum summum과 대비하여 기술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자신이 <철학의 위안>이라고 이름붙인 저서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매스 미디어>라는 또 다른 야만족이 서구를 침공하였다고 경고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는 문자의 시대를 일거에 구석으로 밀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로마제국이 야만족의 말발굽 아래 찬란하게 이룩해 놓은 기존의 문명이 해체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에코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위로해 줄 그 무엇은 역시 "철학"이었던 셈이다. 현대의 매스 미디어가 아무리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철학적 사유가 그 기본적 방향은 불변이라는 점은 불변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에코는 대립쌍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사회적 감성을 보수와 진보라는 등식으로 절단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읽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책은 조만간에 사라질 유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지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사무실에서 필기도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인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의 사람들은 하나의 주장에 너무나 쉽게 몰입한다는 점이다. 그 몰입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가 분열하는데 천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다시 분열하는데는 5백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분열이 분열하는데는 1백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의 사회적 기초가 되는 원리조차도 급속한 시간 속에서 변해가고 있다. 하물며 인간 개개인의 사고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오래 전에 어떤 코메디언이 "허리가 긴개와 다리가 짧은 개가 싸우면 누가 이길것인가?"라는 우스개스런 문제를 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은 정말로 대단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힘이 센 개가 이긴다"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 질문이 내포하고 있던 오류를 생각하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코 역시 우리에게 그 코메디언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요즘과 같이 정보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정말로 나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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