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의 등장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5
피터 브라운 지음, 이종경 옮김 / 새물결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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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중반 브레멘의 아담Adam von Bremen이 유명한 "북유럽 선교사"를 발표할 때까지 스웨덴의 가믈라 웁살라Gamla Uppsala의 이교사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저항의 거점으로 남아있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과정이 신의 섭리에 의해 성공적으로 전파된 것만은 아니라는 뚜렷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1세기경에는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종교로 자리를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사실 유럽의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할 때 우리들은 로마를 중심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그 시각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유럽 선교의 역사는 로마보다는 그 주변부의 역할이 더 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유산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는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성을 가져야만 했다. 보편적Catholic이란 단어가 그 종교의 대명사가 되기 위해서는 억압과 정복이 아니라 조화가 필요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서유럽에 도달했을 때 그 지역은 이교의 판테온이었다.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사제들이 각기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자신들만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역시 수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런 그리스도교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제국의 종교로 공인을 받으면서 부터였다. 하지만 피터 브라운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무시할 필요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314년 제국의 종교로 공인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대규모의 박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종교로서 공인을 받았지만 유일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서 서로마제국이 이민족의 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함으로서 서유럽에서 그리스도교는 동로마제국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였다. 이 결과 로마는 제국의 2등급 도시로 전락하면서 로마에 자리잡은 그리스도교는 상대적인 열세를 면치못하였다.  게다가 제국의 황제들은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격렬하게 발생하고 있던 교리적인 문제를 이용하여 종교를 적절히 통제함으로서 그리스도교 역시 다른 여타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종교로 입지가 축소될 소지가 다분하였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은 이런 종교적 교리의 차이점을 해소하기 위해 황제의 명으로 공의회를 개최하여 제국이 종교의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였다. 사실 이때까지 교회의 중심은 로마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로마는 격렬하게 저항하였고 7세기 경에는 동로마제국과는 별개의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 그리스도교는 비잔틴 세계와 라틴 세계로 양분되어 경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이외의 세력으로 이슬람이 등장함으로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고대 로마제국의 흔적이 일소되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소아시아와 팔레스티나 그리고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함으로서 이 지역은 1세기도 지나기 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 결과 그리스도교 세계는 더욱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결과 그리스도교 세계는 동쪽과 북쪽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려 노력하게 되면서 북유럽과 동유럽이 그리스도교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지역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수도사들이었다. 수도원의 시발은 사실 이집트와 중동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험악한 사막 지형은 은수자들의 고향이었다. 이들 수도사들은 자신들을 과감하게 포기하여 신에게 받침으로서 외형적인 종교에 커다란 영감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초세기 그리스도교의 숨은 보석이었다.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교는 더욱 풍부한 유산을 교회내로 수용할 수 있었다. 사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세계는 엄청난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슬람이 대두하기 전까지 그리스도교는 옛 로마제국 지역의 대부분과 초원의 길을 따라 점점이 분포한 오아시스 도시들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대부분이 이단으로 몰린 아리우스교파였지만-가 산재하였다. 이 공동체의 종착지는 중국의 장안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공동체는 이슬람의 대두와 성상파괴논쟁으로 야기된 라틴교회와 비잔틴교회의 분열로 인해 붕괴되고 만다.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가 상실한 지역-이슬람화된 지역과 초원의 길 지역-은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 이 결과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종교로 축소되게 되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10세기경 북유럽과 슬라브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때까지 다양한 지역적 전통을 흡수하면서 유럽적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시기에 라틴교회는 로마적 전통과 새로 선교한 지역의 게르만적 특성이 혼합되어 중세 특유의 교회제도를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동로마제국이 추구한 정교일치의 제국이 아니라 신의 우위성을 추구하는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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