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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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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야누스, 키메라, 캔타우로스, 쌍두독수리, 키클로프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힌두교의 트리무르티trimurti-이 신은 비슈누,시바, 브라만이 합체된 형태이다-등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형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형이면서도 다른 개체와 구별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이다.
고대인들이 기형을 바라보는 눈은 현대의 우리들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기형의 출산을 보고 행과 불행을 자신들에 알려주는 하나의 징표로 생각하였다. 이집트에서는 꼽추나 난장이는 재앙과 불운을 막아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인들과 스파르타인들은 기형이거나 허약한 어린 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자 죽여버렸다. 특히 스파르타의 타에토스 계곡은 이런 장소로 유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기형아는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갈레누스 역시 건강한 아이만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로마인들은 기형아의 경우 아버지가 기를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결정하였다. 로마에서는 기형아인 신생아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여성의 낙태는 법으로 금지되었다. 중세시대 기형은 신의 뜻에 따라 생겨난 존재로 인식되었다. 즉 기형의 출산을 통해 신의 섭리나 악마의 소행이 드러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기형은 신적 질서의 개념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해부학적 의학적 차원에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에 있어서 기형은 유전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죄악이나 신의 저주라는 차원보다는 예방적인 차원에서 기형을 바라보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문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형은 선천성 왜소증(난장이)이다. 왜냐하면 당시 의학의 수준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심한 기형아가 지속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히박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종류의 기형적 인물을 보았을 때 고대에도 기형의 존재는 낮선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키클로프스에서는 외눈 기형을 야누스와 쌍두독수리, 트리무르타에서는 다두체 혹은 샴쌍둥이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 기형아들은 신화속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존재로 고대인들에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로마 제정 이후부터 기형은 더 이상 신비한 힘의 상징이 아니었다. 이들은 궁중과 대중 앞으로 불려나가 오락거리로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형은 악으로 단죄되기 시작하였다. 완전하지 못한것, 불완전함은 미적 질서에서도 벗어나있는 것이며 창조 질서의 저편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미신적. 신화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객관적 학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나면서 기형은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기형은 결함이라는 주관적 틀에서 인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런 생물학적 현상으로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적극적인 기형에 대한 시선으로 인해 기형에 대한 연구는 급속히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염색체가 해독이 되었고, 기형에 대한 인간의 이해 역시 한층 발전하게 되었다. 이 결과 기형은 장애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식과 정상으로부터 벗어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인간은 기형을 좀더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