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소련 현대사 - 쉬또젤라찌총서 5 쉬또젤라찌 총서
V.P.드미트렌코 외 지음, 이인호 외 옮김 / 열린책들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러시아인들에게 1917년은 영광스런 해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1991년은 어떻게 기억할까. 동구권의 이탈로부터 시작된 소련 연방의 붕괴는 1917년의 영광을 근본으로부터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선배들이 성공한 혁명의 본질은 어떤 것이었는가에서부터 그것은 올바로 계승되었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문과 질문을 이 책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소련의 가장 암울하면서도 영광스런 시기인 194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기억되는 대숙청의 시기였다. 그러면서 이 시기는 급격한 중공업의 성장을 통해 소련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드러낸 기간이기도 하였으며, 파시스트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위대한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영광된 시기였다. 이제까지 이 시기는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의 영도하에 소련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위대한 승리를 구현한 시기로 러시아인들에게는 기억되고 있다. 물론 그 다른 편에는 굴락의 아품이 스며있지만...

이런 자랑스런 역사는 개혁과 개방으로 상징되는 물결 앞에서 너무나 쉽게 퇴색해 버렸다. 이런 결과 소련의 인민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의문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배워왔던 체제가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었으며,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올려놓은 것이었다면 왜 이렇게 아무런 저항없이 붕괴되었을까하는데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은 저술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래의 영광과 찬양 일변도로 기술되었던 영광스런 시기를 고난도 있었으며 실수도 있었던 그리고 무고한 희생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편협한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역사의 기술보다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러시아의 영광스런 시기를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어쩌면 공산주의 소련과 민주화된 러시아 사이에 잠시 나타난 중간적인 역사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가장 먼저 기술된 러시아혁명에 관해서는 과연 러시아가 혁명에 성공한 뒤에 레닌주의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였던 기층 농민들이 급격한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10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913년 러시아의 공업생산량은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 1인당 공업생산량은 미국이 1/13에 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산업은 세계의 정상에 도달해 있었지만 농업부문은 취약하기 그지 없었다. 15만의 대지주가 5천만의 농민이 가진 땅의 거의 5배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농민은 노동자보다 혁명역량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혁명의 주체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농민들은 토지의 분배로 인해 잉여분의 자산을 축적하자 가장 혁명을 반대하는 집단으로 변모함으로서 이들은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혁명의 억압적 체제가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혁명의 성공 뒤에 곧바로 일어난 내전은 그 단순한 도식으로 인해 감정적인 역사로 변질되었다. 백군과 적군의 물러설 수 없는 투쟁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고통속에 몰아넣었던 내전은 그 후에 전개된 권력투쟁의 결과 사실의 왜곡이 이루어졌다. 대다수의 내전기의 사령관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삭제되었고 이들의 이름이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은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 있고난 후였다. 이전까지 내전의 승리는 오로지 스탈린의 몫으로 돌려졌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서방으로 망명한 백군 출신들의 자전적 역사가 있었다. 이들의 기록 또한 역사적 실체를 교묘하게 왜곡함으로서 러시아 내전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만 내전은 러시아의 문학에서 깊이있게 다루어졌을 뿐이다. 내전에 대하여 러시아 사학계는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전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26년부터 40년 사이에 이루어진 산업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주장되었던 공산주의에 의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에 러시아가 축적해 놓은 공업적 성과가 나타난 것이란 것이 대립하고 있다.  1946년 스탈린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산업화를 이룩하는데 13년의 세월(1928-1941)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하나의 진실이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공업화는 어두운 측면도 노출시켰다. 중공업을 중시하고 경공업을 소흘히한 결과 소련은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후진적인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모든 희생을 떠안게 되었다.  이것은 산업화가 경제적 질서인 상품과 화폐라는 기반 위에서 조성 된 것이 아니라 당의 일방적인 지침에 의해 시행되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부터 1945년동안 치러진 대조국전쟁은 가장 개혁과 개방의 색채가 농후한 기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사회주의 사관에 따르면  스탈린의 영도로 승리를 획득하였다는 일방적인 서술만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소련이 당시 전쟁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중공업산업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소련인민들은 전쟁 이전부터 소비재의 만성적 부족에 시달렸고 전시에는 그 정도가 더욱 극심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대략 2천7백만의 러시아인민이 희생당하였는데 이는스탈린의 독재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국가가 다시 일어서는데 있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정립하는가에 따라 그 국가의 성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현재의 러시아는 자신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성공과 좌절의 역사를 이 책에서 솔직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러시아가 아직 사회주의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시기에 저술된 책이라는 점에서 일독할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속한 시일내에 그 이후에 기술된 역사책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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