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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ㅣ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7
라츠네프스키 지음, 김호동 옮김 / 지식산업사 / 1992년 2월
평점 :
품절
서구인들에게 비춰진 징기스칸의 모습은 약탈자이며 살인자였다. 이들의 평가의 정당성을 떠나 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黃禍>를 경험한 열등감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후일 독일제국의 빌헤름 2세가 <황색인종억압론>을 주창하면서 <황화론>으로 정리되었다. 서구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유전자속에 심어준 징기스칸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가공성을 최대한 배체한 징기스칸의 전기가 이 책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몽골비사> <집사> <원사> <성무친정록> 등과 같은 역사서를 세로로 이용하는 한편 이를 연구한 유목민족역사가들의 저서를 가로로 집어넣으며 앞의 역사서들이 기록한 것의 사실과 허구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래서 3백여쪽 남짓한 책의 절반 분량이 역주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징기스칸에 대한 실체가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징기스칸의 침략은 당시 알려진 세계의 대부분이 경험한 재앙이었다. 저자는 징기스칸의 군사들이 벌인 정복전쟁의 재앙을 현재의 시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당시 기술된 역사적 사료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징기스칸이란 인물을 밝혀나가고 있다.
사실 징기스칸은 영웅으로서의 면모는 거의 없었다. 당시대 사람들이 평가한 외적인 모습은 기골이 장대하고 고양이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나폴레옹처럼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터에서 군기를 들고 앞서서 진격한 <영웅본색>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자신이 위급하게되자 결혼한지 얼마 안된 아내 뵈르테-우리는 볼테르로 익숙하다-를 적에게 넘겨주고 대신 자신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었다. 징기스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적에게 독살당한 아버지 이쉬게이를 대신하여 가족을 이끌어 나가야만 하였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곧 가족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징기스칸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인물로 변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냉정함은 집요함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즉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해서든지 획득하고야 마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징기스칸의 가장 큰 장점은 유목민적 관습을 최대한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공평한 분배를 가장 철저하게 엄수하였다. 그 공평한 분배권이 자신에게 있음 또한 철저하게 부하들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를 어길 때 그는 무자비한 인물로 변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의 이런 특성은 제국이 점점 넓어지게 되었을 때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 문제는 징기스칸 자신이 살아있을 때는 그에 의해 봉합될 수 있었지만 그가 사망한 후에 곧바로 그의 제국이 4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알렉산더의 제국이 그가 사망하자 4개의 왕국으로 분할된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그의 후손들이 차지한 제국은 1백년 이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유목민족이 가지고 있던 개방성에 의한 것이었다. 이 개방성은 몽골제국의 종교적 관용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세계 역사상 이들만큼 타 종교에 관용적인 제국은 없었다. 이들의 관용이 빛나는 또 다른 곳은 법률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초원의 법을 정복민들에게 결코 강제하지 않았다. 이들은 초원의 법은 오로지 몽골인들에게만 적용하였다. 정복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법체계 아래서 생활하도록 하였다. 이런 관용성은 그들이 정복전쟁시기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몽골제국은 유목민족 국가로서의 역할이 멈춘 그 순간부터 붕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은 결코 농경민족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의 경제구조가 자신들의 경제구조보다 우월적이라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복자인 그들은 농경민족의 삶 속에 뛰어든 한줌도 안되는 미숙한 세력이었다. 이들은 정복지의 상황에 결코 적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적응하려 하지도 않음으로서 급속하게 도태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징기스칸이 고수했던 정치적 약속을 시종일관 밀고 나갔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쩌면 초원의 민족으로서 가졌던 품성-약속은 꼭 지켜야할 규율-에 기인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들이 초원으로 다시 돌아간 뒤에도 이제는 예전처럼 소규모 단위의 부족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대한 조상의 위대한 민족-몽골-이라는 하나의 관념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민족의식, 이것이 징기스칸이 몽골인들에게 남겨준 가장 큰 자산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중.소 국경 사이에 넓다랗게 자리한 몽골이란 나라는 순전히 징기스칸으로부터 시작된 나라이며 그의 영광으로 그어진 국경선인 것이다. 한 인물이 한 민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대답은 징기스칸이라고 대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