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에게도 철학은 있다 - 에코의 즐거운 상상 4
움베르토 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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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챨리 슐츠Charles M. Schilz의 <피너츠Peanuts>에는 어른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찰리 브라운, 루시, 바이올렛, 패티, 프리다, 라이너스, 슈뢰더, 픽 펜, 스누피-이 등장한다. 이들은 행동을 보여주기 보다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의 일반적인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소외, 고독, 투쟁, 순종, 반항과 같은 요소들은 어린이의 입을 통해 표현되지만 그것이 통용되는 사회는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피너츠>를 읽다보면 하나의 의문이 생겨난다. 과연 이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주변의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해되지 못하는 언어는 있지만 표현되지 못하는 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실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의 병을 아이들에게까지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그 섬뜩함의 세계, 그것이 <피너츠>의 또 다른 면이기도 하다.

순진하고 고집세고 무능한 실패의 달인 찰리 브라운, 고독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고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찰리. 찰리가 이렇게 보이는 것은 루시와 패티 그리고 바이올렛이 보여주는 무감각함이다. 이들 세명은 가장 정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소외된 사회에 가장 완벽하게 적응한 인물처럼 보인다. 항상 담요를 몸에 두르고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라이너스는 담요를 빼앗기면 정서적 혼란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는 사회의 희생자가 아니다. 오히려 오타쿠의 세계에 빠져버린 것과 같이 새로 탄생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물과 유사한 인물인 것이다. 베토벤을 열광적으로 숭배하면서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 사색에 빠져있는 슈뢰더.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적 광기라는 방패를 통해 통제한다. 이런 그의 모습에 열광하는 것이 루시-소외된 세계에 가장 완벽하게 적응된-라는 사실은 의미심상하다. 하지만 슈뢰더는 결코 루시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슈뢰더의 이런 것은 어찌보면 만들어지는 허상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시는 슈뢰더의 표면을 통해 그가 고귀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슈뢰더는 현실 보다 상상의 세계를 택한 것이다. 슈뢰더의 모습에서 연예인의 모습이 비쳐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 만화에서 가장 특색있는 인물은 지저분한 픽 펜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먼지는 자신에게 쌓여있고, 역사의 흐름도 자신을 변하게 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픽 펜에게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스누피는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형이상학적인 개이지만 자신이 개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에도 개였고, 현재도 개이며 아마 미래에도 개로 존재할 것이다. 그는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생각을 하는 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개라는 사실이 그의 모든 것을 한정시킨다.

에코는 이 책에서 대중문화, 키취, 만화를 다루지만 스누피의 이야기 속에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요약해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믿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미 다음 컷을 그리면서 슐츠는 두 번만에 다 그려놓은 찰리 브라운의 얼굴에서 콘디치오 위마나-인간의 조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독자들이 떠올려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다.>

에코 역시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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