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지음, 정순근 옮김 / 전파과학사 / 1993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들은 가끔 서점에서 어떤 책을 만났을 때 매우 낮익은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헤로도투스의 <역사>란 책을 보면 반사적으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르고 거기서 이 책에 대한 더 이상의 전진을 막아 버린다.  이런 이유로 제목이 익숙한 책들은 오히려 읽기가 쉽지 않다.

<비글호 항해기> 역시 찰스 다윈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종의 기원>과 함께 언급되는 책이다. 즉 이 두 책은 원인과 결과처럼 언급되기 때문이다. 비글호의 항해가 있었기 때문에 진화의 법칙을 기록한 책이 나올 수 있었고, 종의 기원은 비글호의 항해로서 가능했다는 식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간단하게 읽어내려가는 책은 아니다.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역자가 친절하게 밝혀준 "박물학적 과학기행문" 가운데 가장 위대한 고전이라는 것을 위안 삼아 읽어갈 수 있었다.

다윈은 5년이란 긴 기간동안 항해를 통해 채집하고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20년이 지난 후에 하나의 가설-진화론-을 발표하게 된다. 그 20년이란 기간은 이 항해에 대한 기나긴 반추의 시간이었다. 이 방대한 책은 항해기라는 제목에 비해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것은 다윈이라는 인물의 관심사가 얼마나 방대한 것이었는가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윈은 각 지역을 탐사하면서 그 지역의 풍습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방대한 책에는 생물학 이외에도  지질학, 화산과 지진의 상관관계와 같이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과 인접한 분야는 물론이고 의학과 기상현상, 그리고 심지어는 항공공학적 이론까지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는곳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이 항해기를 인류학적인 보고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부분에 대한 기술 역시 단편적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깊은 지식을 토대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윈이라는 사람의 지식축적이라는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실 비글호의 임무는 생물학. 지질학적 탐사가 아니었다. 비글호의 목적은 제국주의의 확장을 위한  해군 지도의 정확한 도표를 작성하기 위하여 남아메리카 남쪽을 흐르는 조류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 지표의 위치, 해안에서 가까운 바다의 수심과 해류의 흐름방향. 세기등이 정확하고 세심하게 기록되었다. 이를 위해 정확한 경도측정용 경도기를 탑재하였다. 다만 이런 탐사선에 박물학자를 승선시킨 것은 어찌보면 함장 피츠 로이-이 사람의 이름은 피츠로이 기압계에 아직도 남아있다-의 결단이 츠바이크식의 우연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비글호의 임무는 별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 당시 비글호의 임무는 철저하게 제국주의적 성격을 띤 임무였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서구는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획득한 댓가로 1천5백년 이상 유지해왔던 창조론을 포기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4백여년전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완수하여 이차원적 지구에서 3차원적 세계로 들어가는 길을 제시하였다면, 다윈은 숙명적 창조론에서 투쟁적 진화론으로 이 세계를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흐른 시간이 1백5십년도 안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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