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 지혜에 이르는 길 세미나리움 총서 2
자크 아탈리 지음, 이인철 옮김 / 영림카디널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프랑스의 샤르트르 성당의 바닥에 그려져있는 미로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가운데에는 장미가 그려져 있고 둥근 원이 그 장미를 둘러 싸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이 성당에 도착하여 마지막으로 이 미로의 길을 순례함으로서 정신적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로는 고대의 신화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미로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지만 로마나 중세인들 또한 미로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집이나 성당의 바닥을 복잡한 미로로 장식함으로서 방문자들을 즐겁게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미로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입구를 동일하게 기획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의미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었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고대적인 사고방식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반면에 한때 유럽에서 유행하였던 미로 정원과 같은 것은 매번 복잡한 갈림길이 나타나고 거기서 우리는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 근대적 미로의 길은 가깝게 혹은 멀게 구성해 놓아 목표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전적인 미로가 하나의 방향을 따라 가면 목표에 도달하고 그 반대로 밟아나오면 밖으로 나오는 것과 아주 다르다. 근대적 미로는 선택에 따라 더 깊숙한 미로로 가거나 아니면 목표에 도달하거나 혹은 원위치로 되돌아 온다. 여기에는 무수한 선택이 있고 결과도 다양하다.

하지만 현대의 미로는 입구도 출구도 없는 추상화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여기서 미로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런 모습은 어떻게 보면 컴퓨터의 연산과정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질문에 예와 아니오라는 선택의 무수한 길을 찾아 헤매는 컴퓨터는 어찌보면 근대의 미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컴퓨터는 근대의 미로처럼 어떤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질문에 따라 그 여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즉 기계속에 막혀있는 미로의 존재는 어쩌면 현대문명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안도 밖도 없는 식물뿌리와 같은 미로-이를 리좀rhizome형 미로라고 한다-는 오로지 얽혀있을 뿐이다. 이 얽힘의 관계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미로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고정관념에 길들여진 인간은 미로의 내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면 세계관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미궁속에 헤매는자는 어떤 자일까. 우리는 그 미궁을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미궁은 우리에게 암흑을 벗어날 지혜를 선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미로의 모습을 통해 구원과 지혜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현대의 삶이 빠져나갈 출구도 없는 미로라면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찾기 보다는 현명하게 잃어버림으로서 오히려 진리의 길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 길은 구원의 길이며 진리의 길이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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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3-0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절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