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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리대금업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4
이화승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단 장사 왕서방>이란 말이있다. 이 말에는 여러가지가 함축적으로 내포되어있다. 중국인에 대한 우리의 멸시감, 수전노, 화교... 하지만 이 말의 핵심은 중국인이란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굳이 김동인의 <감자>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중국인은 아끼고 돈을 모으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인들처럼 재물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민족도 없다. 아마 이런 중국인들의 유전적 기질이 상업이란 제3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중국인과 경쟁할 만한 상대는 유대인밖에 없지만 유대인들은 종교라는 거름장치를 통해서 돈에 대한 집착을 순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은 절대적인 가치를 약속하는 종교가 없었다. 이들에게 현실이 아닌 내세를 약속하는 종교는 그리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는 오직 현세의 福을 보장해주는 돈만이 최고의 가치인것처럼 보인다.
이런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代金業의 효용성에 눈을 뜬 사람들이었다. 심지어는 중생을 구제하여야하는 불교의 경우도 중국에 와서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방향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보면 그저 이들의 재능에 놀라움을 느낄 뿐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금업이 위진남북조시대 이후 당을 거치면서 확립되어가는 역사를 차분하게 추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 시대별로 통용되던 용어를 자세히 설명해 줌으로서 한자문화권의 특징인 용어를 알면 반을 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얇은 쪽수의 책으로 마음만 먹으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바퀴도는 시간이면 완파할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그 적은 분량속에는 현재의 중국을 가능하게한 2천여년에 걸친 이들의 노하우가 담겨져 있다. 사실 고리대금업이란 것은 현재의 기준으로 볼때 가혹하게 보이는 수탈의 한 형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저 먼 고대에 돈이 구르면 구를수록 부피가 커진다는 사실을 체득한 이들의 혜안이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이런 가혹한 민간의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대신 지켜지지는 않았던 자세한 규정을 제정함으로서 시대를 거듭할 수록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민족 왕조인 元代에 이르러서는 정부가 직접 고리대금업에 개입함으로서 국가 재정을 보충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의 정부들이 보유힌 외화를 가지고 벌이는 사업과 유사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중국적 전통의 대금업은 근대 이후 서양의 현대적인 금융업과 맞서는 과정에서 개혁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쇠퇴하였는데 이는 대금업이 국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관계로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금업의 전통은 중국의 화교들이 진출한 도시에서는 어김없이 상호부조하는 형태로 나타나 중국인들이 현지에서 자리를 잡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중국인들끼리의 상호부조적인 대금업은 부의 축적을 쉽게하는 장점도 있다. 이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계 화교들이 경제권을 장악하였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대금업은 1949년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자본주의적 퇴폐로 규정되어 철퇴를 맞았지만 1980년대 개방화 정책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사실은 중국적 대금업의 전통은 역사가 오랜 만큼 그 뿌리 또한 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중국은 2천년대 들어와 2020년에 일본을 추월하고 그리고 2050년에는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포부를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이는 중국의 문화적 저력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문화적 다양함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적 획일성-혹은 무식함-때문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 다양성의 한면을 우리에게 조금 맛을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