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방 한 치의 돌 위에 우주를 집어 넣는다해서 전각을 方寸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 우주는 아주 묘한 구석이 있다. 전각도로 새겨내려가는 우주의 깊이에 따라 혹은 그 여백의 넓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돌을 새기는 것은 어찌보면 마음을 다듬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 돌에 자신의 의지를 새김으로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선인들은 자신이 사용할 도장을 새겨 그 刀劃 하나 하나에 새겨진 마음을 음미하였다. 일본의 검사들은 본능을 숭배하였다고 한다. 검술은 요모조모 재면서 하는 術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한 사람의 목숨이  혹은 자신의 목숨이 사라지는 術이기 때문에 검술은 본능이라고 까지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야성의 본능을 순화시키기 위해 茶道와 같은 번외의 術을 배우고 심취하였던 것이다. 반면 선비는 지조를 숭배하였다. 이들에게 지조는 무사의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조는 術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조가 術로 변질되면 曲學阿世의 邪術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비들은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글씨와 전각에 심취하였던 것이다. 보통 사람의 심성을 보고자 하면 그 사람의 글씨를 보면 안다고 할 정도로  은연중 자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그 글씨의 마무리로 낙관을 하는데 그 낙관의 도장이 전각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래서 글씨를 감상할 때면 글씨 그 자체와 발문과 낙관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글을 보면 쓴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印譜를 보면 그 다양함에 기가 질릴 때가 있다. 하나의 글자가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로 표현되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듯이 전각 역시 하나의 글자를 복잡하게 혹은 과감하게 축약하여 표현하는가하면 거칠게 혹은 매끄럽게 깊게 얕게 혹은 곧게 둥글게 표현함으로서 글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충실하게 드러나게 한다. 어찌보면 전각은 그 방식에 있어서 서예보다 더 원시성을 느낄 수 있다. 즉 전각에는 서예의 세련됨보다는 원초적인 힘을 더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조그만 방촌의 세계에서 자연을 혹은 우주를 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서예에서 기교를 본다면 전각에서는 힘을 본다고 한다면 너무 편협되고 과장된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