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의 흑인 영가 He Never Said a Mubling Word 의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케테는 청소를 한다. 물통에 걸레를 빨아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하얀 회벽을 닦고 닦아도 먼지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일상의 무료함은 창문을 통해 들리는 흑인의 영가소리에 깨진다.  성체대회와 약사들의 모임이 함께 개최되는 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성과 속이 혼합된 무대이다. 전후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도시의 풍경은 상이군인들과 스쳐지나가듯 만나는 성당의 소녀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여백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도시의 상공에는 에드벌룬이 떠있고, 치약회사의 판촉물이 모형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콘돔의 광도 또한 성체대회의 풍경과 어울려 종교가 전후의 독일인들의 어떤 마음도 어루만져주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케테의 남편 프레드는 주교관의 전화교환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에게 성직자들의 암호와 같은 전화내용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오직 주말에 케테와 만나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그 기다림이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기러기족들이 양산되는 오늘의 풍경과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왜 그녀는 그렇게 기를 쓰고 청소를 하는 것일까. 케테는 먼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먼지털이개로 털어내면 이 미세한 입자들은 공중으로 솟아올라 공간을 떠돌다가 청소꾼이 사라지면 살며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솟아올랐던 장소에 다시 앉아 버린다. 그리고 이 털어버리는 행위는 내일도 모레도 반복적으로 계속되지만 먼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먼지는 무엇일까. 은총일까. 아니면 일상의 반복일까.

케테는 남편인 프레드와 주말의 만남을 통해서 이미 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임신을 한 것에 대해 불안해 한다. 그 임신은 그녀를 나른하게하면서 감상적으로 변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감상에 젖어들 시간이 없다. 두 아이와 힘든 생활이 그녀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남편을 만나는 행위는 기쁨이어야하지만 그 둘은 만나서 돈에 대한 걱정을 먼저한다. 이는 이들의 미래가 희망보다는 불안이 더 가까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라인강의 기적은 보이지 않고 동과 서로 갈라진 반쪽의 폐허위에는 절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대문이다. 그 불안의 모습에 투영된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십자가에 못박혀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분의 모습과 유사한지도 모른다.

아내와 남편의 눈을 통해 번갈아가며 보여지는 도시의 풍경은 결코 산뜻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13장으로 끝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희망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13이란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케테와 프레드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전후 독일의 모습이 암울하게 그려져 있었도 그로스나 오토 딕스의 세계와는 다른 우울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자가의 예수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해서 악에 굴복한 것이 아니듯 전후 독일인들이 삶의 고달픔속에 매달려있다하더라도 희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케테와 프레드의 침묵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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