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의 진실
빅또르 세르쥬 지음,김주한, 황동하 옮김 / 풀무질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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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혁명을 <지배권의 강제 이전>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사회구조와 행동상의 변화를 통해 어떤 미래를 갖게될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또 틸리 교수는 혁명을 개기 일식과 같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병목현상과 같은 교통지체현상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혁명이란 자연의 법칙 처럼 과학적 지식에 의해 예견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곳에서 발생할 지 모르는 병목현상과 같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 혁명은 맑스와 엥겔스가 예언한 예언서-자본론-의 내용과 하나도 닮은 점이 없는 혁명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유럽에서 혁명의 최우선 순위 국가로 독일을 꼽고 있었다. 왕성한 노동운동과 도시 근로자들의 높은 의식화로 표현되는 원동력으로 인해 최초의 공산주의적 평등혁명은 독일에서 일어날 것이고 이 선구적 혁명은 영국, 프랑스, 미국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러시아처럼 공업발전이 늦은 후진국은 혁명 발생 순위에서 뒤로 미뤄졌다. 그만큼 러시아 혁명은 맑스와 엥겔스도 예측하지 못한 세계사 속에서 갑자기 발생한 병목현상이었던 셈이다.

러시아 혁명의 순수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보통 혁명의 1년째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 시절-1918년-은 정말로 어려운 시기였다. 백군과 적군으로 갈려 내전이 시작되었고, 어제까지 인민의 어버이로 추앙받던 황제는 인민의 적으로 매도되어 감옥에 갇힌 시국이었다. 그리고 서구 열강들은 러시아에 압력을 가함으로서 모든 것이 궁핍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시절을 러시아혁명의 절정으로 보고있다. 이 시기에는 미래에 대한 모든 청사진이 제시된 시기였다. 부의 공정한 분배와 인간의 평등이란 문제는 이제 러시아에서 최초로 완성될 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은 무상으로 교육받고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여성을 위해 국가는 탁아소를 운영하고 교회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민의 의지가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고 해서 밤중에 체포되어 뒷통수에 총알이 박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러시아는 사방의 적들이 자신을 압박할 때 더욱더 일치단결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희망에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정말로 이 시기는 러시아의 무한한 가능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던 시절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러시아 혁명의 가능성이 해체되고 스탈린 주의로 흐르게 된 것을 독일혁명의 실패와 러시아 노동자들의 파멸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1919년 1월 15일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자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우익에 의해 살해됨으로서 러시아는 혁명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될뻔한 한쪽 날개를 잃게 되었다. 독일의 혁명을 진압한 연합국은 러시아의 혁명마저도 질식시키려 하였다. 이들은 러시아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봉쇄함으로서 1919년 1월부터 러시아에는 공식적인 수입품은 하나도 들어갈 수없었다. 오직 이 봉쇄를 뚫은 것은 소수의 밀수품 뿐이었다.

연합국의 이 봉쇄로 인해 러시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노동자 계급이 몰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운명의 손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연합국은 러시아의 혁명을 붕괴시키려다 오히려 더욱더 위험한 인물을 러시아의 중심부로 이동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당시 러시아는 봉쇄와 내전으로 인해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트로츠키는 움츠리기 작전으로 대항했고, 건설에 매진해야할 노동자 계급이 대량으로 군대로 차출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결과 공업과 농업부문에서 급격한 상황 악화가 초래되었고 대기근이 러시아를 휩쓸었다. 이 결과 러시아는 혁명의 민주적 절차 대신 소수의 집단지도체제로 바뀌면서 혁명의 순수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과론적이지만 이 변화는 실패작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만약...> 이 단어가 역사에도 적용이 된다면 러시아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책의 저자인 빅토르 세르쥬는 러시아가 스탈린 주의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것은 전시 공산주의체제에서 각 분야로 확산된 통제의 규율이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전통은 그후 러시아의 한 특징으로 자리잡으면서 건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창조성과 에너지를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것이 러시아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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