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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 문고판
사이카와 마코토 지음, 조양욱 옮김 / 다락원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천황제라는 일본의 제도를 법제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일본의 법이 어떻게 변천해가느냐를 따라가면서 천황제 역시 어떻게 변모해가는가를 추적한 책이라 하겠다. 법이란 고정불변의 법칙은 아니다. 법이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모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법의 정신은 한결같지만 그 정신을 표현하는 문자는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일본의 천황제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제도를 도입하여 성립된 고대 일본은 자신들을 중국이 중심이된 동아시아의 질서체제속에 자신들을 편입시킬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만약 이때 일본이 중국의 질서체제속에 편입되었다면 천황제 역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이 중심이된 질서체제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는 당시 일본의 항해술이라든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자신들의 최대의 후원자였던 한반도의 백제가 멸망하고 자신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신라가 통일세력으로 나타남으로서 일본은 한반도를 통한 선진문물의 수입이 곤란하게 되었다. 이 결과 일본은 필사적으로 견수사와 견당사를 파견하여 중국과의 직접적인 통로를 개척하려 하였다. 하지만 역사의 사실에서 볼 때 이는 명백한 실패였다. 결국 이런 사정으로 일본은 고대 동아시아 질서속에서 고립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이미 받아들였던 중국의 제도를 끊임없이 변형시켜 나가면서 시대에 적응하였다. 이를 좀 심하게 말한다면 일본은 唐의 시대에 머물러있던 법률적으로 정체된 국가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한반도의 신라, 고려, 조선은 당률, 대명률과 같은 중국의 법률을 받아들여 결국 자신들의 법률인 경국대전을 편찬하게 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일본은 고대 국가를 형성한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국가였던 것이다. 이는 이들의 고립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일본이 선택하는 길은 가지고 있는 법령을 통해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중국의 모든 제도를 자신들의 체제에 적용시켜야만 했다. 천자의 대응으로 천황을 내세웠다. 하지만 하나 곤란한 점은 천명사상에 의한 왕조의 교체는 일본적 상황에서 너무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왕조교체사상을 거부하였다. 이는 고대국가 초기 소가蘇我씨가 전횡을 하는 과정에서도 천황의 지위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웅변해준다. 이제 일본은 정권은 바뀌어도 천황은 언제나 존재하는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에 대한 반대급부로 천황은 정치적인 질서에서 배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무가질서를 배제하고 명치유신이후 일본은 다시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율령체제로 복귀하면서 근대적 질서에서 다시 고대적 질서로 되돌아 갔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이런 율령적 정치체제는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차세계대전 패망 이후 미국에 의해 강제로 새로운 헌법을 갖게되면서 고대의 율령국가의 틀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천황제에 대하여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놓았다. <일본의 국왕은 황제에 상당하는 이름을 여러가지 쓰고 있으나 중국인들은 이를 비웃는다. 그 이유는 중국의 국왕은 중국 안팎에 왕의 칭호를 가진 자 여럿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그야말로 황제이지만, 일본의 국왕은 그와같은 왕을 거느리고 있지 않으니까 그저 국왕이지 황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본의 통치체제를 어떻게 주변의 국가들이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일본의 천황제는 고립에 의한 산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